40대 엄마와 10대 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야기
삶의 많은 일이 그렇듯, 이번 여행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우리의 삶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있음을 믿는 크리스천에게 사실 ‘우연’이라는 말은 살아가며 겪는 어떤 사건에 대한 가장 적절하지 않은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 의지’로 인해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일의 전개를 나는 ‘우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40대 엄마와 10대 딸이 함께한 17일(2주반)간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여행, 시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 오늘 걸은 그 길이 마치 며칠 전과 같고 몇달 전, 아니, 몇백년 전 같았던 짧지만 긴 생각이 함께한 시간의 이야기이다.
학점의 시작은 미약했지만...그 끝은 실행?
코로나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두 개의 미술사 개론을 마치고 작년 가을(FL, 2022) 학기 미술사 수업을 하나 더 채워야 했는데 마침 이탈리아 르네상스 심화 수업이 있었다. 르네상스에 대해서 개뿔도 모르지만 그 이름이 가진 무언가 피어나는 설렘이 좋았고 대학때부터 동경했던 고대 로마의 다른 시대의 모습을 알고 싶은 기대로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저버리는 법, 백과사전 사전 분량의 교재에 일단 식겁, 게다가 담당 교수의 수업은 매번 준비해온 원고를 줄줄 읽다 끝나는 스탈이셨고 주어진 칼럼의 용어는그 영어도 아닌 라틴어 베이스라 알아가는 지적 즐거움은 커녕, 주어진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인지 파악하며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시작한 건 마쳐야 하니 한국에서 르네상스 관련 책을 주문하고 온갖 유투브를 찾아가며(유투브가 없던 시절에 대학을 마친 구시대의 졸업자들을 존경함_이건 찐이다)
겨우겨우 학기말을 향해가는 동안, 르네상스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조금 다른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저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하지 못했던 그 아름다운 문화적 부흥은 결코 예술에 대한 지원과 부흥을 향한 열정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니,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하고 치열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그 와중에도 더 갖고 누리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탐욕, 그리고 그들의 지원에 힘입어 오늘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뛰어난 재능과 지원을 바탕으로 예술가로서 자신과 시대에 도전하고 그에 상응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화려하고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 시대의 천재들의 삶은 지금 보여지는 것처럼 영광스럽지도 칭송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낸 그들의 흔적은 지금 우리가 보는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다. 마침 그 학기, 여러가지 개인사로 엉망 진창으로 망가져 버린 삶에서 근근히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비틀거리는 가정의 기둥들을 이쪽으로 세워보고 저쪽으로 붙들어보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마쳐야 하는 수업, 학위를 위한 과정 이상의 도전이 되어주었다. 마치 주저 앉았던 몸을 일으키라고, 기대가 없는 삶을 살아내야 했던 현실에 지쳐 닳고 나약해진 마음을 다시금 다잡아 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In real life,
미국에 온지 12년, 남편의 학위를 마치고 코네티컷에 정착한 지도 만 5년째이니 미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한 곳에 머물고 있다. 이제야 학위를 끝내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그리며 견고하게 다져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시기에 우리 가정은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는 하루 아침에 찾아온 게 아니었고 그것이 극복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끝을 향해가는 시작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부부로서의 관계는 끝났을지언정 우리에게는 더이상 지킬 수 없는 약속의 결과인 아이들이 있었다. 때문에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이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런 기대 없는 오늘의 하루를 견뎌야 했기에 어떤 날은 지나가고 어떤 날은 무너졌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문득, 어차피 모를 의미에 연연하기보다 닥친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왔고 그렇게 겨우 살아낸 오늘의 하루는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내 삶의 르네상스가 될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삶이 중반을 넘어간다는 40대에도 여전히 삶을 모르겠는 엄마와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온 10대의 딸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준비해야 할 시기를 앞두고 있다. 실패한 엄마가 인생의 답을 보여줄 순 없지만 실패에도 일어설 수 있던 누군가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고등 진학을 앞둔 방학, 발룬티어 경험을 쌓고 음악, 스포츠 등 학기 중에는 어려웠던 활동에 참여하고 토론, 논술, 대학교에서 열리는 선행 수업 등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한 선배맘들의 수많은 조언이 있었지만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가장 큰 선물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었다. 미국의 고등학생은 만 16세부터는 운전이 가능한만큼 더이상 엄마품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삶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아이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넘어지는 순간에, 혹은 자신과 주변에 대한 기대에 배신당하고 실망할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고 일어날 수 있는지 배우길 원했다. 바로 우리가 만날 실패를 딛고 나아간 사람들의 삶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통해 말이다.
동상이몽: 르네상스와 젤라또의 동침
그 의도와 계획이 아무리 거창한들 그것이 그대로 아이에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디를 가는지 실려다니는 내내 자다가 일어나 눈앞에 펼쳐진 것이 무엇인지 아~무 의미도 모른채 그저 아하~다음은? 하면서 같은 자리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부모를 따라다니는 여행을 충분히 경험했다.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 하지 않던가, 함께할 시간이 날 때마다 르네상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만날 유적과 작품에 대한 유툽을 찾아봤다. 떠날 날이 다가올 즈음, 그동안 스스로 찾아보고 검색한 것의 리스트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1장 가득 채워진 엑셀 파일에는 도시별로 피자와 젤라또 맛집 리스트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곧 한숨이 새어나왔지만 그것이 우리의 우연한 르네상스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래, 엄마는 르네상스를, 딸은 1일 1젤라또를 꿈꾸는 동상이몽의 여행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