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시 삼백수를 꺼내들었다. 풍류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지금쯤 한시 한 번 감상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예전에 한 수씩 진지하게 읊조리며 감상하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왜 별 감흥이 없지? 그런 의아한 생각으로 하나씩 짚어가다가 내 마음에 들어온 한시가 있었으니! 바로 황진이의 「반달」이다.
황진이, 그녀의 시는 참 재치가 있다. 얼레빗 같은 노란 반달이 반공중에 걸려 있다. 누가 쓰던 걸까. 누군가 곤륜산의 좋은 옥을 캐어다가 마르고 깎아 직녀에게 선물했겠지. 그 빗으로 매일 곱게 단장하며 견우와 사랑을 속삭였겠다. 하지만 견우가 내 곁을 떠나 은하수 저편으로 건너가 날마다 함께 있던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뒤로 얼레빗은 이제 쓸모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굴 위해 머리 빗을 일이 없다. 곱게 단장할 일이 없다. 속이 상해서 푸른 허공에 냅다 던져버린 그녀의 빗은 지금도 허공에 걸려 저렇게 빛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같이.
(출처: 우리한시 삼백수 5언절구편 /정민평역/ 김영사, 247쪽)
오랜만에 황진이의 시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다. 역시나 창의적인 표현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낸다는 표현에 신기해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반달이 직녀의 빗이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품은 반달이다. 반달이 신비롭게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