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시선
우리 엄마가 말했지,
“내 나이 오십 될 줄 몰랐다.”
그 문장이 참 자조적으로 들렸다. 해가 지나면 나이야 차는 것이기에. 그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당시 어린 생각으로는 알 수 없었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마치 나이를 잊은 것처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삶에서 나 또한 조금씩 그 감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번 부모님과 동네 산을 올랐다. 이른 아침, 눈이 잘 떠지지 않았지만, 추어탕을 사준다는 말에 혹해 겨우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방에서 나오니 두 분 모두 준비를 다 하고는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이렇게 주말이 다를 수 있다니.
대학을 다닐 때 내 주말은 잠의 연속이었다. 일어나면 혼이라도 난다는 듯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의 아침이 참 오랜만이었다. 또 방학을 맞아 내려온 본가 날씨는 그간 우중충했기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따듯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에 우리 셋은 힘차게 등산을 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본 제주의 맑음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았다. 분명 동시에 출발했지만, 엄마와 나는 이번 작업실 이야기를 하며 앞서 나가고 아빠는 천천히 뒤를 따라오셨다. 적당한 바람에 걸음이 가벼웠다. 지금 기억을 되새겨도 모든 장면이 이상할 만큼 행복했다. 입구에서 커피 믹스 한 잔을 뽑아 마실 때도, 숨이 차 잠깐 경치를 볼 때도. 우리 셋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시간이 멈춰도 좋을 만큼 즐거운 순간이었다.
등산로의 막바지를 걸을 때쯤 일과 관련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들이 아니었지만, 토요일 아침부터 답장을 기다릴 거란 생각에 잠시멈췄다. 그렇게 간단히 상황을 마치고 앞을 보니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빨강과 파란 등산복을 입은 둘. 무슨 재밌는 얘기를 하는지 어깨가 들썩였다. 가만히 둘의 뒷모습을 보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코가 시큰해졌다.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당시 마음이 아주 뒤숭숭했다. 대학생 막바지에 도착은 했는데 앞을 보니 너무 막막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룬 건 없는 것 같고. 나는 중고등학교 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느새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감은 너무 커져 버렸다. 더는 합리화도 통하지 않는다. 출발 총성은 들은 지 오랜데 나는 아직 출발선에 멈춰있는 느낌. 누군가는 나에게 어리다 하고 누군가는 나에게 어른이라 하고. 그 틈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둘을 보다 문득 엄마의 문장이 생각났다. 맞다 나도 성인이 될 줄 몰랐고, 대학교 4학년이 될 줄 몰랐다. 이제 엄마처럼 매해가 새롭게 느껴지겠지.
나는 그다음의 태도를 배워야 할 텐데. 흘러버린 시간에 놀라는 건 잠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할 텐데. 그렇게 지내다 보면 사회초년생이, 서른이, 또 어느새 그다음이 되겠지.
그들의 힘찬 발걸음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의 역사도 나와 비슷했을 거다. 아니 나보다 더 힘들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십을 지났겠지. 둘의 무던함이 부러워 얼른 발걸음을 맞췄다. 언제 따라왔냐는 듯 놀라는 두 명의 표정에서 반가움을 느끼고 다시 행복을 느꼈다.
그래 시간의 흐름에 무던해지는 게 어른이 되는 거겠지.
나도 세월의 무던함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를 가득 채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