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 속 빈틈

더 랍스터 (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by 산도롱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운 영화 리뷰입니다.

과몰입하며 주저리 적다 보니,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어요.




그 사람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었을까.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내 마음이 가짜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사랑에 빠져라.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마라. 영화는 내 사랑의 역사를 가늠하게 했다.


더 랍스터

영화 속, 사랑을 하려면 서로 간의 공통점이 필요하다. 주인공 데이비드가 아내에게 버림받은 이유도 눈이 좋다는 공통점이 사라져 서고, 절름발이 남자가 일부러 코피를 내는 이유도 코피 나는 여자와 커플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러지 않으면 동물이 되니까. 그러기에 커플 호텔에서 데이비드는 사이코패스 여자와 만나기 위해 냉혈한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 연기가 들켜 동물이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결국 데이비드는 호텔을 떠난다.

도망쳐 나온 숲 속은 호텔과 반대다. 절대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 간사하지.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통점이 사라진다.




<더 랍스터>는 한 편의 우화다. 비유가 가득하고 그 단서들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영화 속 사회의 룰을 알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 파악은 쉬워진다. 덕분에 영화를 보며 감독이 비워 놓은 틈마다 나의 기억을 끼워 넣었다.


무조건 서로 간의 사랑을 요구하는 호텔. 호텔에는 중간이 없다.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를 묻지만 양성애자는 선택지에 없고, 신발 크기도 반 사이즈는 없다. 나에 대한 배려를 기대해선 안되고 차라리 나를 그 호텔에 맞추는 게 편할 정도. 과연 우린 양자택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래서인지 영화의 도입부가 독특했다. 내가 저런 식으로 난도질을 당하며 살아왔구나. 피식하면서 찝찝한 기분.


가끔씩 작두 마냥 날 재단하는 질문들이 있지. “사랑과 우정 중 뭘 선택할래.”, “너랑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야?”, “고향이 좋아 서울이 좋아?”.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바로 답을 할 수가 없다. 보통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주는 편인데(어차피 저런 질문을 진지하게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답을 했다고 내 머릿속에서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그 질문에 대해 곱씹으며 다음에 같은 질문을 들었을 때 답할 위트 있는 멘트를 찾아다닌다. 다들 그러잖아, 나를 가볍게 판단하는 걸 원하지는 않는데 말이 길어지면 쿨 하지 못한 것 같고.




45일 내로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단 설정도 너무나 이분법적이다.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준도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굉장히 강압적이다.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코피까지 흘리는 인물과 사이코패스와의 성사를 위해 형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참는 주인공. 간절함을 느꼈다. 자연스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기억해봤다.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졌나.’ 하는 자조는 덤. 그럼 나는 그들을 왜 만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나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이 사랑에 빠진 이유를 고르라면 꽤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이유가 없으니.

분명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자꾸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요상한 기분이다.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거란 생각이. 또 순간, 내가 기억을 안 하려 한다는 생각이, 쩝.





데이비드는 결국 호텔을 도망쳐 솔로들의 숲으로 숨는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을 찾는다. 이런 븅X. 역시 인생은 랜덤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찰나의 순간으로 왔다 갔다.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근시를 갖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공통점이 있는 상대를 드디어 만난 거지. 그리고 그들은 솔로의 감시를 피해 달아나려 하지만, 잡히게 되고. 여자는 결국 눈을 빼앗긴다. 또다시 공통점이 부재된 거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녀를 더욱 잘 챙기고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눈을 칼로 찌르려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난 그 마지막 장면에 사로잡혔다. 데이비드가 칼로 눈을 찌르려 머뭇거리는 그 장면. 영화의 엔딩은 그런 데이비드를 기다리는 눈먼 여인의 모습인데 데이비드가 눈을 찌르고 나왔을지, 도망을 갔을지, 눈먼 척 함께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머뭇거림의 이유가 뭘까. 물론 눈을 찌르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예상은 데이비드가 눈먼 여인을 남긴 채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식당 홀에 남겨진 여자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럼 난 왜 엔딩을 비극으로 판단할까. 데이비드의 머뭇거림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을 거다. 그중 하나는 “사랑하기 위해 이렇게 까지”라는 생각이었을 지도. 생각의 이유가 너무 개인적이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내 사랑의 역사도 비슷한 머뭇거림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아니 머뭇거림의 연속이었다. 나 역시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과정 속에서 옳고 그름을 계산했다. 그러기에 말미는 선택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은 행동에 대한 아쉬움들.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당시의 내 모습을 기억해보니 부끄러웠을 뿐. 머뭇거린 데이비드의 사랑이 가짜였을까? 내 사랑은 가짜였을 것 같은데. 하긴 난 데이비드처럼 극한까지 간 적도 없었지.


데이비드와 눈먼 여인에게 차례로 내가 대입되었다. 나는 떠난 사람인가 남겨진 사람일까. 뭐… 둘 다 일지도. 여러 명의 얼굴이 스쳐갔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얼굴도 몇 있었다. 너무 몰입을 했는지 초라해진 기분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그는 깨달았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힘들다는 걸
- 더 랍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