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에 대한 시선
빨래를 개다 문득 수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아마 전역하고 복학하며 가져온 수건이니 몇 년은 됐을 거다. 노란색 분홍색, 형형색색의 수건은 이제 조금 까끌해졌다. 흠… 그러고 보니 흡수력도 떨어진 것 같던데. 두께도 얇아진 것 같고. 이리저리 흠집 낼 곳을 찾아보니, 새 수건을 꺼낼 때가 한참 지난 것 같아 집에서 챙겨 왔던 수건 대여섯 장을 꺼냈다. 보드라운 게 촉감이 좋았다. 이걸 왜 굳이 아껴 왔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래도 새 수건이니 한 번 빨고 써야 한다는 생각에 세탁기에 넣다가 양 쪽 가득 적힌 돌잔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맞네, 나는 항상 돌잔치 혹은 어떤 행사의 답례품 수건을 쓰고 있었다. 신경이 쓰여 개어 놓았던 수건을 다시 봤다. 역시나 거기도 종친회, 기업행사 등등 많은 사건들이 적혀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수건들.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아니 요새도 답례품으로 수건을 돌리는구나.
딱히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지만 가끔씩 꿈꿨던 로망이 있지 않나? 나는 욕실장 가득 도톰한 회색 수건을 채우는 게 그런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이왕이면 조금 큰 대형수건으로? 가끔씩, 일이나 여행 때문에 호텔에 갈 때 사용하는 타월의 느낌이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방금 꺼낸 새 수건도 맘에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아니다. 그 로망은 대학을 다니는 내가 아직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근데 그런 거 있잖아. 수건 한 장에도 내 취향을 넣을 수 없다니.
돌아보니 생필품들을 말 그대로 ‘생필품’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이 정도로 여유가 없진 않을 텐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그냥 제일 싼 휴지를, 제일 싼 생수를 사용해야 하는 내 처지와 본가를 넘어 내 자취방까지 점령한 돌잔치 수건을 향한 투정? 아 몰라, 그냥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다.
이런 배부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비참해졌다. 어딘가에서 본 화이트 톤의 이부자리와 내 매트리스 위 꽃무늬 극세사 이불이 겹쳤고, 언제 생겼는지 모를 얼룩이 생긴 카펫을 보니 저번 인스타그램에서 본 새파란 러그가 생각났다. 물욕이란 이렇게 한 번에 찾아오는 법이지. 능숙하게 이 숭숭한 마음을 받아치려 했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쉽지 않았다.
난 그저 수건을 바꾸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센치해지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투정을 마무리할 때쯤 수건에 적힌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작년,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에 돌잔치를 했을 아가의 이름이 적혀있는 수건. 그 옆에는 종친회 청년 회장의 이름이, 그 옆엔 17회 김만덕 상 수상자의 이름이.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과 추억들이 적혀있는 수건들. 누군지는 모르지만(엄마 아빠가 아는 분들이겠지)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은 분들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이 적힌 수건을 쓸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보며 나를 기억하고 있으려나. 또 누군가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이름이 적힌 수건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렇게 바라보니 수건이 소중해졌다. 여기에 적힌 날짜들과 이름들이 다 기억되고 싶은 글자들이구나. 이 수건 한 장 한 장이 다 감사한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걸 그냥 갖다 버리려고 했다니. 그럴 수야 없지!
빨래를 다 개고, 세탁기를 돌리고, 오래된 수건을 정리했다. 호텔 수건 로망이야 나중에 이뤄도 상관없으니, 당분간 감사한 마음 담긴 수건을 애용해야겠다.
당신의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나 잘 사용한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