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시오

트루먼 쇼 (1998, 피터 위어)

by 산도롱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운 영화 리뷰입니다.

과몰입하며 주저리 적다 보니,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어요.




트루먼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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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쇼는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라는 남자의 삶을 방송하는 TV 쇼의 이름이다. 주인공이 태어날 때부터 걸음마, 초등학교 입학, 대학 진학, 연애, 결혼 등 모두 방송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라이브로 하루 24시간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심지어 잠자는 것까지 모두 찍어서 방송한다. 영화는 그 프로그램 속 트루먼의 삶과, 방송국의 모습, 그리고 채널을 보는 시청자들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러던 어느 날,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고 탈출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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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에 봤을 때는 분노했던 기억이다. 미디어의 이면에 공포를 느꼈다. 단어로 정의하자면 두려움. 처음 영화를 봤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마지막 시청자의 대사에서 밀려오는 소름까지. 근데 그때는 페이스북도 없었고, 내 휴대전화도 코비 F 였거든.

하지만 이젠 자발적 트루먼들이 즐비한 시대. 모두가 관음증 환자인 듯 관찰 예능이 제일 잘 나가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그때와 다른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뒤 나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문을 여는 트루먼을 보며 느낀 두려움. 과거와 결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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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처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의 나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겠지. 답답한 생활에 억울함을 십분 느끼며 행복 찾아 나갈 것이다. 근데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있으려나. 나 하나만 바뀌어 모두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만 모른척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거대한 세트장 ‘씨헤이븐’의 삶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혼란이 내가 트루먼의 탈출을 응원하면서도 걱정했던 이유였다. 저 밖의 세상엔 탈출이 가져다주는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을 거란 생각에.




제주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게 나의 어릴 적 목표 중 하나였고 영원한 나의 숙제라고 생각했다. 제주의 꼬리표가 싫은 게 아니었다. 한정된 지역에 갇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아마 그 마음의 기원은 여기저기 나를 실어 나르며 세상을 구경시켜준 엄마 아빠일 것이다. 나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은 무대였다. 어딜 가든 새로움이 즐비했고 그걸 마주하는 내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살기 위해 준비했다. 점차 머리가 커지며 서울에 사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고 타협도 많이 했다. 나의 대학, 진로, 학업능력 등 많은 요소를 분석하며 서울에 살기 위해 계산했다. 결국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어차피 그 계산 속에 제주도의 삶은 없었다. 성인이 되고 제주를 떠날 때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내가 너무나 대견했고 세상이 꽃밭으로 보였다.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남들과의 비교를 거부한 채 비참해지는 순간을 목숨 걸고 피해왔었다. 내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 내 딴에는 노력했지만, 그 꽃밭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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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트루먼 보다 트루먼 쇼의 PD 크리스토퍼가 더 눈에 들어왔다. 쇼 비즈니스를 넘어 트루먼을 아들처럼 바라보는 그. 트루먼은 크리스토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거다. 트루먼이 스튜디오를 나가기 직전 그를 바라보던 표정도. 부모의 표정이 생각났다. 자식이 떠나는 걸 지켜보는 부모의 모습.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제주를 떠날 때 엄마의 표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저 제주를 떠난다는 설렘에 빠져 급하게 게이트를 지나쳤을 뿐. 나는 떠나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남아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몇 년 뒤 자취방을 옮기며 올라온 엄마를 바래다 드릴 때야 알았다. 엄마는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뒤돌아보고 있었다. 문은 닫히고, 나는 공항에 혼자 남았다. 헛헛한 마음으로 집을 왔던 기억이다.


참 재밌지. 현재의 나는 다시 제주를 그리워하고 있다. 가족이 주는 파워를 온몸으로 느끼며, 고향의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겁 많은 샌님이라 야망이 아닌 현재의 안정감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아니 내가 그런 나의 욕망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경우의 수를 가늠해본다.


트루먼의 용기와 사랑을 향한 투쟁이 경이롭다. 그러니 트루먼은 행복했길 바라본다.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비참함을 피하려는 나의 발버둥일지도 모르지. 매스 미디어의 폐해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며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떠올리는 내가 웃기다. 감독이 원한 건 아니겠지만 뭐. 다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또다시 최면을 걸어보며.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 두죠.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 트루먼 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