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풀에서는 피 냄새가

차례와 제사 그리고 벌초에 대한 시선

by 산도롱

일 년에 치러지는 제사를 세다 보면 손가락이 모자랐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머니가 혼자서 방이 세 개나 되는 빌라에 사셨는데, 방 하나는 제사만 지내는 방이었고, 부엌 옆에 붙은 방은 제사 음식을 하는 방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할머니가 쓰셨다. 지금 이사를 가신 곳도 마찬가지. 명절 즈음 기사에 나오는 사진들이 매달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별로 신기한 게 아닌가?


어머니는 전을 부쳤고 아버지는 약밥을 만드셨다, 종종 작은할아버지가 낚아 오시는 자리돔이 내 별미였다. 제사상을 차리기 전 내리 몇 장씩 지방문을 쓰시던 아버지의 고고한 모습이 가끔 머리에 맴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붓 펜을 잡을 수 있을까 하던 어린 나의 모습. 웬걸, 아직도 연필 하나 바르게 못 잡는데.


제는 자정에 다다를 때쯤 지내야 해서 꾸벅꾸벅 졸며 절을 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고 집에 오던 작은 자동차. 비닐봉다리에 담은 미역국과 알루미늄 호일에 쌓인 산적들, 옷에 살짝 밴 향냄새. 난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다.

설이나 추석에는 상이 모자라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내린 뒤 새로운 음식으로 다시 차례를 지냈다. 작은 집에 북적북적 많이도 모였다. 그렇게 비효율적인 행위를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결국 해야 한다는 의무가 마음에 자리 잡았다. 하긴 몇십 년을 유교 보이로 자랐는데. 우리 가족에겐 그 문화가 당연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


대학을 타지로 가게 되고, 군대에 가게 되고 현생이 바빠지면서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빈도수는 낮아졌다. 그래도 명절에는 꼬박꼬박 내려가 함께하려 하는데 그것도 코로나 19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었다. 그나마 종손이란 타이틀 덕분에 일종의 책임과 의무를 느끼며 연락을 취하게 된다. 그게 아니었음 어땠으려나.




제사고, 차례고, 종친회고.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벌초다. 제사를 많이 지내는 만큼 관리를 해야 하는 묘지도 많았다. 몇 번을 찾아갔어도, 어떻게 가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묘지들. 그저 어머니 아버지 뒷모습을 따라 걸어갔던 숲 길들. 언젠가 지도를 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예상이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힘차게 예초기 시동을 걸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사이 자란 풀들이 흐트러졌다. 그럼 동생과 나는 갈퀴를 들고 쓱쓱 땅을 긁었다. 긁을 때마다 갈퀴 사이사이에는 머리카락 같은 풀들이 뭉쳤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등을 긁듯 구석구석 갈퀴질을 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땀이 송글 맺힐 때까지 갈퀴질을 했다. 내가 힘들면 아빠가, 아빠가 힘들면 내가. 엄마는 뭉친 풀들을 담벼락 너머로 옮겼다. 그러는 동안 또 누군가는 담벼락의 잡초를 걷어내고, 또 누군가는 민들레를 뽑아내고. 그렇게 제주를 돌며, 숲 속 깊이 찾아가며.


글을 쓰다 보니 코에 피 냄새가 스친다. 알싸한 풀 베인 냄새가 나는 늘 피 냄새처럼 느껴졌다. 이게 파란색의 냄새인가, 초록색의 냄새인가. 기억을 들여다보니 멍청한 표정으로 묘를 바라보던 어린 내 모습도 보인다.

몇 년 벌초에 참여하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웃으며 다음에 간다 말은 했지만, 내가 빠지며 누군가 내 몫의 노동을 했다는 생각이 마음에 걸렸다. 감사함으로 그 마음을 채우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여 이렇게 글로도 남긴다. 아직 벌초를 하려면 많이 남았다. 이번엔 참여할 수 있으려나. 아님 또 감사함의 허울로 빈틈을 채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