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직업에 대한 시선
아버지의 직업은 특이했다. 모두가 아는 직업이지만 모두가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직업이셨다. 아버지의 직업을 설명하려면 사람들의 기억 속 장면을 끄집어내야 한다.
“비행기 탈 때 활주로에서 일하시는 분들 있죠?”
“아 그 손 흔들어주시는?”
“네네 그게 제 아버지 직업이에요.”
그렇다. 아버지는 공항에서 근무하고, 대형 항공사 소속의 직원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수고를 책임지는 역할이었지만, 어린 나에겐 그저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지상조업사였다.
영어학원을 다닐 때 원어민 수업이 있었다. ‘하우 알 유’,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이런 간단한 안부와 자기소개 등을 했었다. 어느 날은 원어민 선생님이 우리에게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셨다. 다들 간단한 단어로 설명을 할 때 나는 말 문이 막혔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아버지의 직업을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 아빠는요… 어…. 공항에서 일해요”
“오 파일럿이니?”
“아니요 비행기 말고 공항이요”
“승무원이시구나”
“아니요 그게…”
“공항 직원?”
“네…”
그 사이 내 등에서는 땀이 흥건했고, 얼굴이 붉어졌다. 누군가를 부러워한 게 아니다. 아버지 직업조차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아버지가 처음부터 지상조업을 하신 건 아니다. 아버지는 자사 비행기 납품용 생수 공장에 다니셨다.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셨고, 나의 유년시절 사진들도 그 공장에서 찍은 사진이 참 많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아버지 직장동료분들의 얼굴들도 다 그 공장에서 익혔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는 공항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공항은 문을 닫는 날이 없었다. 비행기는 하루에도 수십 대 씩 항공을 누볐고 새벽부터 밤까지 항상 불이 켜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달 한 장씩 가져오는 종이 쪼가리를 붙들고 스케줄을 확인했다.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은 매일 바뀌었고, 아버지의 주말도 매달 바뀌었다. 어린 나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멍청하긴, 이제 나는 주말도 없는 삶을 사는데) 어떤 날에는 학교에 가기 전에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또 어떤 날에는 내 하교시간보다 먼저 퇴근을 하셨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야 가족끼리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상황에 불만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매년 최악의 여름과 최악의 겨울을 보내셨다. 그늘막 밑에 있어도 더워 죽을 것 같은 여름을 아버지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보내셔야 했다.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소리와 커다란 자동차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여름을 보내셨다. 퇴근을 하시면 얼굴이 벌게지고, 아버지의 작업복엔 허연 소금 자국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에게 미안해했다. 그래서 우린 에어컨도 잘 못 켰다. 더운 날 밖에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는데, 우리만 편하게 있는 게 너무 죄송했다.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에서 몇 년 만의 폭설이란 문구가 나오면 우린 모두 아버지를 걱정했다. 그 허허벌판의 눈을 쓸고 있을 아버지가, 바람막이 하나 없이 칼바람을 맞아야 하는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아버지 피부는 다 텄고 여름보다 더 까맣게 피부가 타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아버지도 천천히 지쳐가셨다.
아버지 직장동료분이 제주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또 어떤 분은 김해공항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고, 또 어떤 분은 가족이 함께 이사를 갔다고. 두 분 다 내가 아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두 분 다 아버지와 생수 공장에서 함께 일하시던 분들이셨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생수 공장에서 공항으로 가신 이유가, 그리고 동료분이 인천공항에 가신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셨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하셨다. 자기가 그만두면 곧 해고되는 계약직 세명이 정규직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걱정하셨지만 금세 안정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날 이후 마음껏 에어컨을 틀었다.
엊그제 설을 쇠고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성격이 급해 보통 복도 자리에 앉는데 그냥 그날은 창문 밖을 보고 싶었다. 화창한 제주와 달리 서울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지상조업사 분들이 보였다. 쌓인 눈을 치우시고 내가 탄 비행기에 계단을 연결하고 있는 감사한 분들. 모두가 나의 아버지였다. 갑자기 추워져서인가, 코 끝이 시큰했다.
한 시간 전 제주공항에서 헤어져 놓고는, 다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 맘을 알았는지 아버지께 잘 도착했냐는 연락이 왔다. 아버지 덕분에 잘 도착했다 말씀드리고 통화를 마쳤다. 다음에 제주에 내려가면 아버지를 꼭 안아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