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짱구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엄청 맛있어! B급 음식 서바이벌! (2013)

by 산도롱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운 영화 리뷰입니다.

과몰입하며 주저리 적다 보니,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어요.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먹지 말라면 먹고 싶은 게 인생인 것을. 그걸 누가 말린다고 지켜지나? 아무 생각 없이 심심해 튼 짱구 극장판을 보며 눈물을 훔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엄청 맛있어! B급 음식 서바이벌!


어릴 적 변명이 짱구였다. 왜냐면 머리가 짱구였거든. 엄마가 임신 중에 한쪽으로 만 누워서 그런 것 같다고 아쉽단 얘기를 많이 했었다. 지금도 뒤통수를 만져보면 한쪽이 툭 튀어나와있다. 엄마는 그런 내 뒤통수를 보며 반성했고, 동생을 가졌을 땐 양쪽을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고 한다. 또 별명의 이유 중 하나는 시커먼 눈썹이다. 나도 눈썹만큼은 송승헌 저리 가라라고. 지금도 내 주변 친구들은 눈썹 문신을 하며 나를 부러워한다. 움 하하하.




짱구 스토리는 보통 일상생활 이야기인데, 극장판은 스케일이 커진다. 가족 혹은 친구랑 모험을 떠나거나 독특한 악당들이 지구를 침략하거나 따위의 내용이다. 이번 <B급 음식 서바이벌!>에서는 A급 음식 신봉자가 지구를 점령하려고 한다. 이에 짱구를 포함한 떡잎 마을 방범대는 B급 음식을 사수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야기는 영웅 서사와 같다. 짱구가 사는 동네에 B급 음식 페스티벌이 열리고 떡잎 마을 방범대(짱구, 철수, 유리, 맹구, 훈이)는 정말 맛있다는 볶음국수를 먹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 사이 A급 음식 악당 로얄 황태자가 B급 음식을 없애기 위해 공격하고 짱구 일행은 그런 악당을 막기 위해 볶음국수 소스를 챙기고 여행을 떠난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지루할 만도 하지만 짱구 극장판은 상상도 못 한 콘셉트로 관객을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헨더 랜드 대모험>도, <어른 제국의 역습>도 나에게 참 좋은 영화였다. 누군가는 날 비웃겠지만.


내가 짱구 극장판을 즐겨보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아마 악당 때문일 것이다. 짱구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은 언제나 설정이 똑같지만 악당들은 다르다. 각자 저마다의 독특한 이유들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게 빌런의 매력이랄까. 누군가는 목욕탕 자리가 맘에 안 들어서, 또 누군가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서. 원인만 들으면 비웃을 만한 목소리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마음 쓰이는 이야기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로얄 황태자는 기술 가정 시간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음식을 먹는 에티튜드부터, 좋은 음식의 기준까지 따지는 게 많은 사람이다. 난 왜 레스토랑에서 포크를 여러 개 쓰는지, 수프를 먹을 때 수저를 반대로 저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암튼 황태자라서 그런지 엄청 중요시한다. 그래서 눈엣 가시인 B급 음식, 그러니까 길거리 음식들을 없애버리러고 한다. 이쯤 되면 나도 화난다. 길 가다 먹는 김떡순과 붕어빵이 얼마나 별미인데! 타코야키 누군가 다 없애 버린다고 하면 나도 길바닥 나가서 따질 거다. 아무튼 그런 일련의 과정이 나온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진짜 이유. 길거리 음식을 먹고 싶은데 부모님이 혼내서.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B급 음식을 없애려 했단다. 아. 눈물이 나왔다.


자신의 계획이 망하는 걸 보며 볶음 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말하는 그의 외침이 참 슬펐다. 솔직해지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그간 얼마나 부모님의 눈치를 봤을까. 로얄 황태자의 얼굴에 여러 얼굴이 겹쳐 코를 훌쩍였다. 길거리 음식이 모조리 사라지길 원하는 아버지 밑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족이 싫어할 때의 혼란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음식이 아니라 직업이었다면, 혹은 결혼을 생각하는 애인이었다면, 더 나아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무언가였다면. 다 커버린 나로서는 그렇게 확장되어갔다. 잠시 일시정지를 누르고 곰곰이 평소 나의 행동들을 돌아봤다. 내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이유들을. 딱히 기억나는 건 없었다.




만약 이게 내 삶에 진짜 있었다면 황태자를 이해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만화영화니까 한 번쯤은 봐줘야지. 영화 속에는 악당 말고도 신형만(짱구 아빠)의 명대사와 즐거운 노래도 가득하다. 부디 B급 음식의 매력처럼 가볍게 봐주시길.

누군가는 짱구를 보며 같은 패턴의 어린이 만화영화라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의견에 반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