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좋아하는 마음

반려동물에 대한 시선

by 산도롱

어릴 적 개를 참 무서워했다. 초등학교를 가다 개가 있으면 길을 돌아 집에 와버릴 정도였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반려동물 문화가 자리잡지 않을 때여서 목줄 없이 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그리고 꼭 그런 개들은 덩치가 컸다. 어디 가서 덩치로 꿀리지 않던 나도 항상 겁을 먹고 다녔으니.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나 동생이나 단 한 번도 개 키우고 싶다고 말해 본 적도 없는 기억이다.




종종 학교 운동장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누가 버리고 간 건지 어디서 도망친 건지, 관리 안된 개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던 초등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그 이름 모를 동물과 시간을 보냈다. 그중 나도 있었나? 아님 그냥 앉아서 보고 있었나. 아무튼 나도 그렇게 놀고 싶은데 놀 수 없었다. 왜냐면 난 개를 무서워하니까. 그러나 나중에야 용기를 내서 다가갔다. 복실 했던 갈색 털과 시커먼 눈동자. 그 강아지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숨바꼭질을 할 때 그 강아지 때문에 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떠나지 않고 헥헥 대던 혓바닥. 나와 친구들은 그 강아지를 참 귀여워했다. 그 강아지는 어떤 날엔 학교에 또 어떤 날엔 옆 아파트 놀이터에 있었다. 동네 친구처럼 약속 없이 만나던 강아지였다.


그러던 어떤 날 내가 집에 갈 때였다. 그 당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강아지가 졸졸 날 따라왔다. 나를 따르는 누군가가 처음이었다. 신이나 학교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강아지는 또 헥헥대며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정말 집에 가야 할 때가 되었을 때, 강아지는 우리 집 앞까지 따라왔다. 이제 우리의 놀이 시간은 끝났는데, 강아지는 자전거를 주차해도 집 계단을 몇 칸 올라가도 현관을 떠나지 않았다. 내 계산에는 없던 일이었다. 강아지는 나에게 그저 장난감이었지 이렇게 집까지 찾아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무언가 단단히 잘 못 생각했다는 걸. 그렇게 나는 집에 들어갔고, 강아지가 계속 날 기다릴까 봐 두려웠다. 이름도 모르고 출신도 모르는 그 개가 나를 계속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 갈색 털과 검정 눈동자는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학교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강아지를 볼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아마도 나의 잔인한 모습일 것이다. 어린 나이었지만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익히 알았다. 그때 결심했다. 절대 나는 개를 키우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 다짐은 아직도 지키고 있다. 이젠 그 다짐이 더 발전해 절대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이건 동물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다. 나는 그럴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자주 놀러 가는 집이 있다. ‘원두’라는 유기견 한 마리를 키운 지 몇 년 됐는데 이 친구가 처음엔 낯을 가리다가 이제 나를 꽤 잘 따른다. 눈이 커서 눈동자에 내 얼굴이 잘 비친다. 어디 가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를 데려오라 하면 기꺼이 친구에게 부탁할 정도로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이 친구 때문에 내가 털 알레르기 있는 걸 알게 되었는데, 원두를 볼 수 있다면 눈이 벌게지고 콧물이 나와도 상관없다.


가끔 어두운 곳을 입고 가면 안 되는 걸 잊어 검은 바지 한 가득 털이 뭍을 때가 있다. 집에 오면 꼭 옷에 뭍은 털을 떼어내는데 그럴 때마다 머릿속엔 잊고 지내던 갈색 강아지가 뛰어다닌다. 바지를 털어내며 언제쯤 내 머릿속을 떠나려나 해본다. 내 머릿속을 떠나면 그땐 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까. 아마 어렵겠지.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엇비슷한 마음을 가져본다. 그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