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by 산도롱


퇴사를 했다. 같은 직장의 두 번째 퇴사. 지난 시간이 아까우면서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아직도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데. 난 사실 원하는 것도 없고, 아니 원하는 게 뭔 줄도 몰라서 행복한 줄도 모르나 보다. 귀에 딱지 앉도록 성장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도 포기를 하는 건 인생의 원죄를 만드는 것 같았다.


이제 마음을 정했다.


저는 말합니다. 그 원죄, 달게 받겠습니다.

나태하고 한심하며 고여있고 멈춰있는 고지식한 한 인간이 되겠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삶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펑펑 낭비나 해대는 누구나 손가락질할만한 작자가 되겠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판단하며 무리의 눈치만 보고 도전을 주저하는 무식한 겁보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저와 함께하지 마세요. 저를 제발 잊어주세요. 과거의 초롱했던 전 죽었습니다. 이 꺼져가는 불씨를 뒤꿈치로 짓밟아 완전히 꺼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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