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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i Aug 23. 2024

지하철역 할머니

서러운 날. 

아침 7시 30분 4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사람 가득한 지하철 안에 임산부석에 앉아 갈 수 있다는 걸 감사해하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곧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몰려오는 어지럼증. 


이건 입덧과 다르다! 미주 신경성 실신, 그 증상이다! 


평촌역에서 내려 가까운 벤치로 향했다. 비슷한 증상을 가진 친구에게 전화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물었다. 친구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말고, 피가 잘 돌게 해야 해. 심하면 누워. 그냥. 그리고 다시 지하철 타고 갈 때는 노약자석이라도 앉아.'라고 답했다. 그러고 20분 정도 있으니 확실히 괜찮아졌다. 심호흡을 하는데, 그제야 줄지어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좀 어색해져서 시간이 지나고 타려고 했더니, 할머니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라. 배지 보니까, 임신한 거 같은데, 얼굴이 창백하네. 입덧 때문에 많이 못 먹어서 그렇죠? 어떻게? 도와줘요? 저기 구조대 불러줘?"


구부정하고 마른 할머니가 도와주시겠다며 묻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난, 할머니라면 어렵고, 어색하고, 멀리하고 싶은 존재였는데, 힘들 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할머니였다... 자꾸 묻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물이 줄줄. 어디 아픈 줄 아셨는지 놀라서 더 가까이 오신다. 


"괜찮아요. 좀 쉬었더니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말하며 또 울컥. 

"아이고.. 여자들 힘들어 정말... 힘들면 꼭 구조 요청해요..." 듣고 왈칵. 


엄마도,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눈 감으셨던 친할머니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그 할머니의 주름과, 구부정하고 마른 몸을 보고, 직접 구조 요청을 하러 가는 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감사해서일까. 안타까움일까. 죄송스러움 그런 걸까. 


지하철 타고 다시 가는 길, 임산부석에 앉아 다시 눈물이 콸콸. 감사하고 죄송하고 서러운 마음 비슷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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