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결혼 이야기>, <비포 미드나잇>
<인 디 에어>의 주인공 라이언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겁쟁이 사장들 대신(그의 표현이다) 직원들을 해고 해주는 해고전문가이다. 직업만큼이나 시니컬한 성격의 그는 깊은 관계를 믿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끔찍해하며 언제든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그의 일을 사랑한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이렇게 출장을 다니면서 비행기 마일리지를 모아 '천만 마일리지' 클럽에 드는 것이다. 하지만 화상 채팅을 통한 원격해고 시스템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든 신입사원 나탈리가 등장하자 합법적 떠돌이가 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될 위기에 처한다. 라이언은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품위 없는' 것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나탈리와 동반 출장에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출장 여행을 다니는 알렉스를 만나게 된다. 나를 '여자 버전의 너'로 생각하라고 할 만큼 라이언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그녀와 라이언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캐쥬얼한 관계를 지속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라이언의 마음 한켠에서는 알렉스에 대한 사랑과 정착에 대한 갈망이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인 디 에어>를 보면서 라이언이 느끼는 그 부유하는 감각, 혼자됨을 즐기는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에 대한 갈망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미정의 상태에 공감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모든 이야기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넘으니 본격적으로 나이에 따른 압박이 들어온다.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 "가족을 이루어야지"하는. 사실 새로운 가족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굳이 이 말을 꺼내 뒤따르는 질문을 가장한 질책을 받고 싶지 않기에 본심을 숨기고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넘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가끔은 연인 관계나 가족 관계라는 것이 너무나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는 층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친구 사이의 사랑이 있으며 그 위에 연인과의 사랑이 있고 그 위에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주로 모성)이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단계는 누구나 인생에서 차례차례 넘겨야 할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친구 만들었니? 그럼 애인 만들어. 애인 만들었니? 그럼 결혼해. 결혼했니? 그럼 아이 낳아!
<비포 미드나잇>은 '바로 그 사람The one'이라고 믿었던 상대에 대한 로맨스의 환상이 벗져지고 난 뒤의 관계를 다룬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둘만의 산책과 대화만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환상적인 청춘의 연인은 <비포 선셋>에서 얼굴에 각자의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른이 되어 다시 재회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포 미드나잇>에서 이들은 관계의 현실을 마주 한다. 셀린과 제시의 정처 없는 산책과 끊임없는 대화는 뒷좌석에 태운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달래며 목적지로 향하는 드라이브로 바뀐다. 첫 만남에서 섹스만큼이나 짜릿한 교감이었던 둘의 대화는 이제 서로에 대한 비난과 불만으로 가득 찬다. 인생의 잃어버린 조각 같았던 상대의 존재가 이제는 내 인생을 망친 잘못된 선택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파국의 거울 앞에 서서 어떻게든 번져나가는 금을 지워보려 애를 쓴다.
<비포 미드나잇>이 이렇게 위기에 처한 관계의 결말을 유예시킨 채로 멈추는 반면, <결혼 이야기>는 한 가족 관계의 끝맺음과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며 잔인한 과정인지를 보여 준다. 찰리와 니콜은 양육권과 재산 분배 그리고 각종 권리 청구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이용한다. 그들의 추억과 함께한 세월은 유능한 변호사의 입을 통해 오로지 상대에게 지불할 금액을 판단하는 데 유리하거나 불리한 증거가 될 뿐이다.
<인 디 에어>, <결혼 이야기>, <비포 미드나잇>이 공유하는 한 가지는 이야기의 한 축에 ‘연인 관계’가 더 나아가서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세 편의 영화 모두 사랑과 가족에 대해 대책 없는 낭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해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결혼 이야기>가 사실상 '이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의 언어로 영화를 시작하고 끝을 맺은 것처럼, '가족을 이루는 일'은 그래도 살면서 꼭 한 번쯤은 해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세상은 연인을 만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것이 ‘옳은 욕망’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계를 이루는 과정을 겪어보야만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다거나, 인생을 알 수 있다거나 하는 거들먹거리는 말로 그것에 거창한 서사를 입힌다. 그러나 사실 혈연 중심의 가족 만들기는 인구를 재생산하여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중요했던 구시대로부터 은밀히 강요된 관념일 뿐이다. 게다가 이성 결혼과 가부장제가 얼마나 환상적인 짝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마 삼일 밤낮을 말해도 모자를 것이다. ‘결혼 제도’가 아닌 ‘결혼 생활’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성의 특권이다. 그래서 나는 <인 디 에어>의 라이언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을 결심 한 순간 한달음에 여자에게로 뛰어가는 단순함에서 너무나 다른 삶의 층위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비포 미드나잇>에서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뒤로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려 제시를 위한 백치가 되는 셀린의 모습이 슬펐다.
나는 비혼이라는 말이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결혼한 나를 상상하거나 결혼 생활을 욕망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아이를 낳거나 키우는 것도 바라본 적이 없다. ‘결혼 적령기’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내가 살면서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의 리스트에 있다.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에 누군가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자신도 없다. 사랑에 제도가 끼어드는 순간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사랑은 해 볼만 하지만 결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을, 특히 보편적인 정상 가족으로 향하는 사랑 이야기들에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대신 나에게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공통의 이상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고, 이들과 함께 느슨한 연대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나에게 이상적인 가족이란,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생각을 공유하고 힘들 때 도움을 주고 기쁠 때 즐거움을 함께 하지만 하루의 끝에는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혼자됨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관계다. 어째서 가족이 꼭 성적 관심을 동반한 두 이성과 그들의 유전자를 나눈 혈족이라는 편협한 기준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정상가족'을 이루지 않겠다는 사람이 한 번쯤은 꼭 들어보는 말이 '나중에 늙어서 외롭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이 들면 울타리가 필요하다'라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정상가족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외로움의 해소와 보살핌의 영역은 다른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인 디 에어>의 라이언이 "우리 할머니들은 다 양로원에서 돌아가셨어. 사람은 누구나 다 혼자 죽어."라고 말했듯이 가족이 반드시 보살핌이 필요한 늙은 육신에 대한 보험상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좀 더 시니컬하게 말해보자면, 그 수많은 독거노인들이 자식이 없어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가? 물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유지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그만큼 많다. 이렇게 사회가 불리한 증거는 지워버리고 노화와 외로움이라는 인간적 불안을 볼모 삼아 '정상 가족'을 이루라는 협박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비겁한 행동이다.
아마 누군가는 나의 대안적 관계에 관한 이런 생각이 철이 없고 허황되었다고 말하겠지만 어차피 인생에는 완벽한 관계도, 완전한 완성도 없다고 이 영화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인 디 에어>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이 치러지던 날에 누군가는 별거를 시작하던 것처럼. <비포 선셋>에서 완벽했던 하룻밤의 연인을 되찾지만 <비포 미드나잇>에서 사랑에 대한 환상이 아득히 깨져버리는 것처럼. <결혼 이야기>에서 불 같이 타오르던 사랑이 서류더미와 법정 싸움의 장작더미가 되었던 것처럼. 천만 마일 클럽에 드는 목표를 수도 없이 생각했던 라이언이 막상 그 순간이 오자 할 말을 떠올릴 수 없었듯이,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목표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나의 욕망과 나의 목표가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들을 "철이 없다"라는 간단한 말로 묵살시키는 것은 참으로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에 대한 편협한 상상력과 좁은 정의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정상 가족 안에 구겨 넣어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