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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Sep 17. 2020

이름은 진짜 제품은 가짜

라이선스 브랜드 이야기

우리가 브랜드라고 부르는 이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오랜 기간 제품을 만들어온 가문의 이름, 또는 장인의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전통적인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선진국의 브랜드가 채웠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선진화된 서양 제품은 우리의 전통보다 높은 수준의 제품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브랜드를 국내 브랜드보다 고급 제품으로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사용하는 ‘수입품’, ‘외제(外製)’라는 단어에는 ‘선진국 브랜드’ 또는 ‘고가의 훌륭한 제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중국, 베트남 제품도 같은 ‘수입품’인데 말이다.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온 우리가 서양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양 문화가 만들어진 역사를 가져올 수 없듯이 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브랜드를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까?

초기의 우리나라의 패션 브랜드들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서양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세월이 흘러 서양 문화에 더욱 익숙해지면서 어색한 서양식 이름은 사라지고 익숙한 서양 단어를 브랜드 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랜드명으로 사용할 만한 보통명사의 상표등록이 어려워지면서 브랜드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단어 결합형 브랜드명이 등장했다. 물론 외국어가 절대적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작명자들은 이 브랜드가 ‘외제’처럼 보이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수많은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내 브랜드는 브랜드명을 외국어로 지어봐야 ‘외제’처럼 보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라이선스 브랜드가 대거 등장한다. 

해외 브랜드가 들어오자 국내 브랜드는 해외 브랜드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까지 국내 브랜드는 일반인들이 접하지 못한 해외 브랜드의 제품을 카피해서 팔았다. 이들이 카피하던 오리지널 브랜드가 국내에 직접 들어왔으니 카피 브랜드가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국내 패션기업이 정의로운 판단을 했다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품의 수준을 높이고 오리지널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해외 브랜드와 경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이겼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패션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돈벌이였다.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이념 따위는 없었다. 그들이 오리지널 브랜드와 승산 없는 싸움을 피하고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합법적인 카피’를 선택했다. 라이선스는 오리지널 브랜드가 정해진 범위 안에서 브랜드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권한이다. 패션 브랜드의 라이선스 관리는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제품 디자인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결과물을 컨펌한다. 따라서 완성된 제품을 직수입하는 것보다는 자유롭지만 라이선스 제공자의 콘셉트를 벗어난 디자인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 패션기업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국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해외 브랜드를 본국에 가서 직접 보면 국내에서 진행되는 스타일과 다른 경우가 많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일부 제품을 변형하거나 특별한 상품을 출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브랜드 전체의 콘셉트를 다르게 전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해외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받아 굳이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맞도록 브랜드를 전개하는 것은 이런 방식이 국내에서 단기간에 돈을 벌기 가장 쉽기 때문이다. 이런 라이선스 브랜드의 디자인 전개 방식도 어이가 없는데 요즘은 이것보다 더 이상한 라이선스 브랜드가 나타나고 있다. 의류 제품을 전개하지 않는 브랜드명의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서 의류 브랜드로 론칭하는 일이다. 

2000년 대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던 일이 우리나라 패션계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아웃도어 열풍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해외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우리나라 아재들은 온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등골 브레이커를 사 대느라 허덕였다. 덕분에 우리나라 아웃도어 시장은 세계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내 패션 시장규모에서 단일 브랜드의 매출은 500억 정도가 최고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웃도어 브랜드 한 개가 5천 억대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기존에 열개의 브랜드가 만든 매출을 한 개의 브랜드가 해내는 상황을 봤으니 장사치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웬만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이미 국내에 들어왔고, 진짜 훌륭한 브랜드는 우리나라 패션기업의 입맛에 맞게 라이선스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아웃도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명을 찾아, 있지도 않던 의류 라이선스를 받아 아웃도어 브랜드를 론칭했다. 라이선스 제공 브랜드가 의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지 않으니 디자인에 대한 제한도 없고,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니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리고 이 브랜드들은 대박이 났다. 

우리나라의 ‘외제’ 선호는 뿌리 깊은 문화 사대주의와 금전 만능주의, 과시욕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2019년 현재, 유명한 이름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는 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현대는 너무 많은 정보가 개인 모바일을 통해 매 순간 전달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인식의 틀(도식, schema)을 만든다. 새로운 이름이 이런 인식의 틀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새로운 이름의 이미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보다는 이미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서 요즘은 소비자가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브랜드와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 디자이너가 콜라보하는 경우가 많다. 콜라보를 통해서 기존 브랜드는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하고 새로운 브랜드는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미지와 결합하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소비자들에게 빨리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는 정보의 시대이기도 하다. 정보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고, 사람들은 진짜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한다. 그리고 거짓을 확인하는 순간 사람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대박이 터졌으니 우리나라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 계속 이런 브랜드가 나타날 것이고 일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또한 늘 그렇듯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오리지널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버리겠지만 이런 일을 벌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

“돈 벌었잖아!!”

창업자나 디자이너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유명인의 이름이나 지역의 이름을 사용한 브랜드 중에도 훌륭한 브랜드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브랜드는 브랜드가 전개하는 제품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와 브랜드만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쌓아서 만들어졌다. 이런 브랜드는 입는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과 자부심, 추억을 남겨준다. 패션 브랜드가 브랜드 자체의 정체성이 아니라 다른 이미지나 브랜드를 광고하는 연예인의 효과만으로 만들어진다면 과연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까? 브랜드 사업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라면 내 말은 헛소리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려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몇 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리지널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우리나라 훌륭한 패션인들에게, 엄청난 라이선스 비용을 해외에 지급하며 밑도 끝도 없는 브랜드로 국내 시장에서만 돈벌이를 하고 있는 패션기업은 허탈감을 넘어 혐오를 준다. 우리나라 패션기업의 성공 스토리가 오리지널 브랜드의 탄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멋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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