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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Feb 22. 2024

이승만 다큐멘터리와 안경호 감독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0.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여러모로 화제이다. 설연휴가 지난 어느 날 노마만리의 단골이신 어느 교회 장로분이 오셔서 이 영화를 보라고 한참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법도 있다고 했다. 평소에 정치 이야기를 하실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들었는데 그날은 “제가 그 영화에 활용된 필름을 촬영하신 안경호 선생도 만난 적이 있다.”며 아는 척을 좀 했다. 그러고 보니 안경호 선생이 만든 <민족의 절규>로 논문도 쓴 적이 있구나.     

 

2007년 2월 해방기 영화운동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논문을 쓰면서 해방 공간의 역사적 기록영상들을 누가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무턱대고 KBS에 연락을 해 <영상실록>을 연출한 PD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영상 출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영상자료를 정리한 영상리서처 김정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렇게 김정아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고 석사과정생이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는지 KBS에서 수집 보관하고 있는 해방기 영상물과 그 출처를 친절히 확인해주었다. 그중에는 <민족의 절규>를 만든 안경호 컬렉션도 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도 해방기 영상물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느 날 이화장에 <민족의 절규> 필름이 있다는 (아마도 김정아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들러 관리하시는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필름 이야기를 물으니 안경호 선생이 이화장에 필름을 기증해 주었는데 누군가 가져가서 지금은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경호 선생이 생존해 계시니 만나보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민족의 절규>를 연출한 안경호 감독


안경호 선생께 연락을 드리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워낙 고령이신지라 따님이 사는 대구에 계신다고 했다. 2007년 10월 어느 날, 지금은 sbs미디어넷에 근무하고 있는 이석영과 함께 대구로 안경호 감독님을 뵈러 갔다. 1917년 생인 안 감독님은 당시 91세의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했고 치매도 앓고 있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일들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셨다.      


안경호 선생은 원래는 카메라맨이 되고 싶었지만 이명우 사단이 틀어쥐고 있던 일제말기 유일한 영화회사인 (사)조선영화사 촬영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지인의 소개로 진행부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사 후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최인규 감독이 연출한 <태양의 아이들>(1944)이었다. 이 영화에는 당시 최고 스타인 주인규, 강홍식, 김일해, 김신재 등이 출연했으며 평안도 어느 섬에서 촬영했다. 안경호 선생은 방음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당시 녹음을 위해 방음에 필요한 가마니 500장을 구하러 수원 등지의 가마니 공장으로 돌아다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해방 후 아이모 카메라를 구해 문화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이승만의 측근인 강일매가 이승만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접근하여 그때부터 이승만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승만은 자신을 잘 찍으라며 당시 최고급 미첼카메라를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승만 다큐멘터리의 기획자 강일매는 이승만의 비서로 알려진 인물로 친일경찰 노덕술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반민특위법 위반으로 적산관리인에서 해고된 이두철을 대신하여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인 동화백화점의 적산관리인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조선방직의 적산관리인이 되어 이승만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안경호 선생의 말로는 김두한, 이정재, 임화수 등을 거느린 깡패두목이었다고 한다.(조방사건 참조해 보시라) 


안경호 선생이 강일매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주려고 할 때 그 당시만 해도 강일매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 다음에 공부를 좀 하고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으나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서북청년단에 의한 국민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테러가 극심하던 시기 있었던 일이다. 이 당시 서북청년단에서는 그날 밤 습격할 사람의 집 대문에 표시를 해두었는데 어느 날 영화배우 김일해가 서북청년단원들이 자기 집 대문에 표시를 해두었다고 숨겨달라며 덜덜 떨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안경호 선생은 김일해를 자신의 집 다락에 한동안 숨겨주었고 김일해는 그때 자신을 숨겨준 일을 평생 고마워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가 백색테러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안경호 선생과 헤어지면서 다음에 뵙기로 했지만 몇 달 후 전화를 드렸지만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때 강일매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인터뷰했던 테입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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