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 삐걱거림의 시작.
오래된 인연이 함께해 온 많은 방식을,
어느 한쪽은 익숙해져 안온해하는 반면,
어느 한쪽은 지루해져서
변화와 모험을 욕망할 수도 있다는 것.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中
여자친구는 한여름이었던 24년 7월 19일에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피츠버그로. 우리가 사귄지 1년 10개월 만이었다. 여자친구의 성공적인 유학 생활 시작을 위해 나도 휴가를 쓰고 함께 피츠버그로 향했다. 우여곡절(항공사 전산이 마비돼서 경유지였던 보스턴에 예기치 않게 2박 3일간 숙박해야만 했다) 끝에 도착한 피츠버그의 아파트에서. 함께 청소를 하고 택배 온 가구를 조립하고 IKEA도 다녀오고 피츠버그 식당과 카페를 누볐다. 여자친구의 학교도 탐방했다. 학교 로고와 랜드마크 앞에서 여자친구 사진을 찍어주며, 여자친구의 부모님이나 느낄법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을 느꼈다. 여자친구가 미국에서 좋은 체력을 유지하길 바라며 피츠버그 동네를 돌며 Zone2 운동도 같이 했다.
짧은 11일이라는 시간 동안 할 일들이 많아 정신없긴 했지만. 새로운 곳에서 함께 공유할 추억을 쌓을 수 있음에 행복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뒤로하고 헤어지는 우리는, 탑승 수속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된 인사도 못 하고 갑작스런 이별을 했다. 여자친구도 나도 사귄 뒤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서로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많이 울었다.
그 뒤로 우리는 본격적인 롱디라는 걸 시작했다. 얼굴을 못 보는 건 당연한 거였고, 주말에 한 번 통화할 때면 한 사람은 일어난지 얼마 안 된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다른 한 사람은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서울 시간 빼기 열 시간 = 피츠버그 시간'이라는 시차의 공식은 쉬웠지만 그 차이로 발생하는 우리의 대화와 감정 변화는 복잡했다.
여자친구의 일정이 바쁜 날에는 2주에 한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일 통화하는 것도 아니고 1주, 2주에 한 번 통화하는 게 참 쉽지 않았을텐데. 나는 그때 우리 관계에 대해 어찌나 확고했던지. 사랑의 힘이었던건지 아니면 36살이었음에도 현실감각 없는 철부지였던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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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다시 여자친구를 만난 건 5개월 만인 24년 12월 19일이었다. 다행히도 새로 취업한 회사에서 3개월도 채 안 되어 해고를 당한 덕분에 미국 여행을 길게 다녀올 수 있었다. 5주 동안이나 여자친구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아파트라 넓고 깨끗했다. 커뮤니티 시설도 잘 되어있었다. 같이 있을 때는 근처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하거나 산책을 했고, Trader Joe's나 Target에서 장을 봐와서 나름 밥을 알차게 해먹었다. 식사를 다 하고 난 뒤 벤엔제리스 아이스크림을 포크로 퍼먹는 게 소소했으나 확실한 행복이었다. 크리스마스 기념 데이트도 하고 케이크도 하고. 피츠버그에는 눈이 많이 내려 눈오리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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