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인턴을 봤습니다.
꼭 이 영화를 봐야 했던 건 아닙니다만 딱히 무엇인가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던 건 아니라서 ‘로버트 드 니로’라는 좋은 배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를 봤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환상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영화를 간단히 줄여보면 아내와 사별하고, 연금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는 70대의 남자가 시니어 인턴십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으로 옷을 파는 잘 나가는 start-up 회사에 들어가 지내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start-up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미 venture capital들이 외부 경영인을 데려오는 걸 제안하는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회사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해할 때 3 가지 정도 알고 보시면 좋은 게 있습니다. 먼저 ‘시니어 인턴십’이라는 것과 ‘Start-up’, ‘홈 대디’라는 것들이죠.
먼저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이란 현직에서 은퇴한 미국의 노인 분들이 인턴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시는 거죠. 미국에 가면 맥도널드나 KFC에서 노인 분들이 일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말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내고 연금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의 지루함을 떨쳐 보려 지원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시니어 인턴십은 주인공 하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잘 나가는 IT 기업에서 임원을 했다면 아마 파트타임으로 자문위원을 하던지 아니면 이사회에서 자리를 차지할 지도 모르니까요. 영화에도 그 외 비슷한 맥락의 대사가 나옵니다.
“Actually, you are overqualified” 이 대사를 보면 이 인턴십은 주인공인 Ben보다 low-profile인 분들이 지원하는 자리였고요.
다음으로는 start-up입니다.
2000년 초반 닷컴 버블이 오기 전 미국은 닷컴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버블이 터지고 버블이 꺼진 후 다시 두 번째 start-up 열풍이 이미 불었고 현재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실리콘 벨리를 벤치 마킹하려 합니다. So-called-소위- 예전 닷컴업체들이라 불리던 업체와 유사한 업체들이 더 확실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나와서 잘 꾸려가고 있습니다. Netflix, Facebook 등 우리가 이름을 많이 들어본 회사죠.
이 업체들은 캐주얼한 기업문화와 수평적 의사소통 방식, 그리고 모던한 인테리어와 맥북 들이 있겠죠. 주인공인 벤이 처음에 맥북을 어떻게 켜야 하는 가를 보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40년간 회사 생활하면서 컴퓨터를 안 써봤을 리는 없습니다. 대신 맥북을 접해볼 확률은 그에 비해 낮을 수도 있겠죠.
이런 회사는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네요. 실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회사…. 물론 CEO만 타고 있습니다. CEO니까 가능한 거겠지요.
마지막으로 홈대디입니다
홈 대디는 실리콘 벨리에서 잘 나가는 여성 CEO나 고위 임원진들과 관련 있는 키워드입니다.
페이스 북의 COO이며 'Lean-in'을 쓴 세릴 샌디버그도 홈대디에 대해서 언급했었죠. 배우자 중 더 커리어 적으로 경쟁력 있는 사람을 위해 한 명이 집에서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는데 그게 남편들이 이제 하고 있는 거죠. 단지 이 홈대디 들도 좋은 교육도 받고 좋은 회사에서 다닌 인재들이었지만 가족의 결정으로 남편이 집에서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면서 발생하는 홈대디들의 상황이 영화에서 설명되고 후반부에 영화에서 꽤 중요한 조각으로 나옵니다. 과연 홈대디가 좋은 건지 아닌 지는 아직 여러 의견의 분분합니다. 그에 관해 FT도 이런 기사를 낸 적이 있고요. 홈대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영화에 잘 반영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보입니다.
이제 배우와 영화 이야기입니다.
남 녀 주인공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입니다.
이 영화에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일까요? 아마 70% 정도 되지 않을까요?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가 다시 생각 났습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마크 러팔로도 영화의 톤을 결정한 배우였거든요. 이 영화에서도 계속 느껴지는 이 따뜻함은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앤 해서웨이와 주고받는 화학작용도 꽤 좋지만 영화 내내 보여주는 미국 중산층의 여유, 따뜻함, 재치는 드 니로라는 배우가 결국 이 영화의 tone을 결정했던 거죠.
중산층의 가치를 대변하는 배우 자체가 드 니로였을 테니까요. 미국의 좋았던 시절과 같이 성장한 배우인 드 니로가 그 시절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 안정, 어른스러움의 가치를 대변하는 건 수긍이 가는 순간이고 그걸 감독은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사실 지금 미국의 노년층은 드 니로처럼 여행을 자주 다닐 만큼 풍족한 연금을 가지고 있지는 않거든요. 잊지 마세요. 벤은 Northwestern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의 VP(Vice President)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 외 다른 배우와 인물들은 각자의 역할에서 임무를 다 하며 크게 튀어나오는 부분 없이 영화에 묻혀집니다. 굳이 얘기를 해보자면 르네 루소 정도겠죠. 아직도 영화의 여자 주인공 정도로 나와도 손색없을 배우인데 좀 아쉽다고 할까요. 부담 없는 역할이라고 해도 존재감 있는 배우는 다릅니다. 르네 루소와 드 니로가 나오는 씬을 보면 영화의 씬들을 빼고 더 뭔가 보여줄 거 같았거든요.
예전엔 감독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공동작업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그래도 하나의 구성요소를 뽑자면 감독이겠죠. 영화는 편집의 예술로 시공간을 뒤틀 수 있는 장르인데 그걸 담당하는 게 감독이니까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영화라는 건 결국 공동창작물이라는 명제에 더 동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안전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가정은 파국으로 이끌어지지 않았고 노년의 로맨스도 이보다 더 귀엽게 잘 흘러갈 수 없습니다. 사업도 잘 흘러갈 거 같고 당분간 모든 사람이 크게 슬픔에 빠질 거 같지는 않습니다. 크게 선을 넘은 적도 없는 뻔한 예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이 영화를 남다르게 보이는 건 역시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라고 보입니다. 그가 영화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옆에 충분히 있을 거 같은 멋진 할아버지의 도전기도 설득력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앞으로도 로버트 드 니로라는 좋은 배우를 더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