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아이슬란드야.

2. (링로드 1일 차) 골든 서클에서 아큐레이리까지

by 전상현
610번 버스를 타고 아큐레이리로 향하는 여정


링로드 여행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아침이 밝았다. 아이슬란드를 시계방향으로 돌아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오늘의 목적지, 아이슬란드 제 2의 도시 아큐레이리(Akureyri)에서 하루를 묵는다. 오늘 버스는 골든 서클의 일부분인 게이시르(Geysir;간헐천)와 굴포스(Gullfoss;Golden Fall)에 잠시 머무르고, 지열지대인 Hveravellir와 산악지대를 지나 아큐레이리에 도착한다. 흐렸던 어제와 다르게 아침부터 맑은 날씨에 한결 마음이 가볍고 설렌다. 어떤 풍경들이 나를 맞이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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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도시를 떠나자 차 안으로 유황 냄새가 베어 든다. 땅 위에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지열 발전소의 파이프들이 이 땅이 얼마나 뜨거운 곳인지 보여준다. 한 시간쯤 달리자 버스가 첫 번째 목적지인 게이시르에 도착했다. 땅에서 뜨거운 물이 5분에 한 번 꼴로 솟아오른다는 간헐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어떤 모습일지 쉬이 상상하기가 어렵다. 가장 유명한 게이시르를 향해 걸어가는 길, 땅 위로 하얀 연기들이 피어오르고, 뜨거우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문구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앞에 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방금 뭘 본 걸까? 눈을 의심하는 풍경에 사람들이 환호하며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쉬없이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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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땅 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물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저절로 흥분된다. "방금 내가 뭘 본 줄 알아?"하며 다른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5분간의 기다림 끝에 1-2초 간의 아주 짧은 광경이 못내 아쉬워 5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떠날 시간이다. 나름대로 시간을 맞추며 내려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찍으며 내려오는 그 순간 저만치서 버스가 움직인다. 아뿔싸! 손을 흔들며 전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저씨가 나를 보고는 놀라서 차를 세우셨다. 하마터면 시작부터 여행이 꼬일 뻔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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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버스가 멈추어 섰다. 굴포스에 도착한 것이다. 굴포스는 아이슬란드어로 황금 폭포라는 뜻이다. 폭포가 두 번 굽어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풍경이 놀라운 곳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탐방로를 따라가는 순간, 광활한 풍경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과 탄성이 터져나온다. 폭포의 물방울들이 바람을 타고 차갑고 꼼꼼하게 내 얼굴에 붙는다. 차가 멈추어 서기 전엔 이 곳에 이렇게 거대한 자연의 작품이 숨어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 했는데, 아무래도 아이슬란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곳곳에 그림을 걸어놓았나 보다. 그저 감탄사만 내뱉으며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 폭포 옆에서 뒤돌아 서니 영화 '아바타'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가슴이 탁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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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산길을 따라 점점 올라간다. 도로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흙먼지가 창문에 엉겨붙는다. 아침에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흐려지더니 결국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창 밖은 황톳빛으로 변해간다. 창문의 흙먼지들이 비와 만나더니 금세 창문이 얼룩지기 시작한다. 문득, 차 안에 함께 탄 승객들이 저마다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저마다의 사연들이 궁금해진다. 혼자 온 배낭여행객들이 눈에 띈다. 말을 걸어보고 싶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첫 날이라 떨려서 그런 것일까. 여행이 끝나고서 돌아보니 이 날 용기를 내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했다면 여행이 좀 더 많은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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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Kerlingarfjoll 캠핑장에 승객을 내려주고선 10분간 쉬어간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내려서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 풍경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잠시 내릴 수 있을 때, 열심히 걸어보는 것만이 이 곳을 마음속에 좀 더 담아갈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걸어본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니 운치가 있다. 누군가 걸어놓은 혼자 남겨진 수건이 고요한 풍경 위에 얹어진다. 피어있는 꽃과 풀, 아래로 흐르는 개울을 보고 있으니,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 보았던 시규어 로스의 공연 기록 영상인 'Heima' 속 한 장면이 음악과 함께 다시 한 번 연주된다. 저 멀리 양들도 나를 보고 있다. 조용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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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점점 더 높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양 옆으로 멀리 아이슬란드의 빙하가 보인다. 비가 조금 더 거세진다. 버스가 지열 지대인 Hveravellir에 멈추어 섰다. 이 곳에서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땅 속에서 흘러나오는 유황 연기들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아침의 맑은 날씨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와 하얀 연기가 만나 만들어내는 희뿌연 풍경을 보니 비가 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앞으로 파란 등산복을 입은 한 부부가 밝은 표정으로 걸어간다. 눈인사를 살짝 나누었다. 두 분의 인상이 참 좋다. 한참을 걸어 식당으로 돌아오니 몸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걸으면서 보았던 노천 온천을 즐기는 투숙객들이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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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선 다시 차에 올라타니 몸은 추운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다. 비가와 옷이 다 젖고, 신발이 축축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차 안에 들어와 패딩을 벗어 이불처럼 무릎에 덮어놓은 이 느낌도 좋고, 이 포근한 공기도 좋다. 함께 탄 승객들이 젖은 옷을 널어놓고선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방금 마신 커피가 몸을 완전히 녹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그리고 그 아늑한 느낌에 취해 잠시 눈을 붙인다. 산에서 벗어나 다시 링로드로 돌아오는 지점에서 차가 잠시 멈추어간다. 그 곳에서 본 도로 위 풍경은, 이 곳이 어디일까 내게 궁금증을 남긴다. 길 옆에 세워진 때 묻은 표지판이 잠시 내 마음을 붙들어 세운다. 언젠가 꼭 한번 들르고 싶게 만들 만큼.




아큐레이리에 버스가 도착했다. 저녁 6시.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여행 전부터 불안했던 휴대폰이 차 안에서 통신 불량과 배터리 수명 때문에 꺼져버렸다. 나는 터미널 직원에게 숙소의 위치를 물었다. 이번에도 숙소는 도시 중심부가 아닌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비도 오는데 조금 막막하지만, 직원에게 지도를 얻어 숙소로 향한다. 입고 온 패딩을 단단히 고쳐 입고선 캐리어를 끌고 걸어간다. 비가 아큐레이리로 오면서 점점 거세지더니 어쩐지 내일도 맑게 갤 것 같지가 않다. 오늘은 맑아서 모든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홀딱 젖은 채로 걷고 있으니 영 서글프다. 숙소에 도착해 가지고 온 라면 하나를 후다닥 끓여먹고선 씻고 내일 갈 곳을 잠시 공부하며 오늘 보고 느낀 것들을 돌이켜보니, 아무래도 비가 와도 괜찮아. 아이슬란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