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이캬비크에서 헤매다.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까지는 공항에서 45분 정도 걸린다. 한참 고민한 끝에 골라든 면세점 맥주 6캔을 들고서 공항버스에 올랐다. 여행 전날의 피로감과 긴장감 때문에 갈증이 났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니 약간 나른한 기분이 든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공항 버스를 타고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창밖으로 황량한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흐린 날씨를 보니 앞으로의 여행이 괜히 걱정된다. 아이슬란드의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며 섬을 둘러보는 11일 동안의 링로드 일주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의 여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막상 버스 터미널에 내리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꼬이기 시작했다. 먼저 버스 패스를 사면서 숙소가 터미널에서 3km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소가 시내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두 번째, 사용하고자 하는 통신사를 당연히 바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지도 한 장을 들고선 시내를 뒤졌지만 찾고 있던 통신사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결국 사용하고 싶었던 통신사의 심카드가 아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판매하는 심카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심카드는 여행 내내 나를 골치 아프게 했다.) 레이캬비크를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지친 나는 터미널로 다시 돌아와 저녁 7시 반에 떠나는 무료 셔틀을 기다리기로 했다.
책자 뒷면에 어렴풋이 적혀 있던 셔틀버스 안내말이 불안했던 터라 매표소 직원에게 버스가 출발하는 것이 맞는지 물었다. 버스회사의 당일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승객들을 태우는 버스라고 한다. 캐리어 하나만 들고선 낯선 땅에 서 있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 듯 직원이 버스 기사에게 말해놓겠다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승객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아이슬란드 남부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승객들 같았다. 큰 배낭과 등산용품으로 무장한 즐거운 표정의 여행가들을 보고 있으니, 겨우 20인치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끌고 와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 몇 시간 헤맨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어쩐지 여행을 시작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돈을 아끼겠다고 가게에서 사온 과자로 저녁을 때우며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글을 쓰고 있으니 불현듯 회의감이 밀려든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여행을 오기로 한 것이 과연 잘한 결정이었냐고 말이다. 무엇을 위해서 이 많은 돈을 들여가며 여행을 왔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하려니 어렵게 느껴진다. 아직 둘러보기도 전에 이런 감정에 휩싸이다니, 친구의 한 마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어렵게 온 여행의 기회를 여행 첫 날부터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머릿속 계산기만 두드려가며 머리가 터지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니, 혼자 하는 여행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그저 돈과 시간을 땅에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 혼자서 무엇인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너무 나약하고 서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피곤하니 나쁜 생각만 드는 것 같다. 한 때 큰 로망을 갖고 있었던 이 나라에 한 발짝 내디딘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을 시작한 것이라는 위로를 해본다. 앞으로 11일 동안 느끼고 볼 아이슬란드를 통해 무엇으로 나를 채워갈지 고민을 해보자. 고민을 한다면 좀 더 진지하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오늘은 충분히 쉬자.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