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ax MX 4일간의 사용 후기
홈버튼 위 동그란 버튼을 누른다. 찰칵. 이제 많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따로 구입하지 않는다. 그냥 스마트폰으로만 찍어도 사진이 꽤 잘 나온다. 나도 아이폰을 산 뒤로는 며칠씩 여행 갈 때가 아니면 카메라를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카메라 성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고, 선두 주자인 애플과 삼성은 자신들의 제품으로 찍은 사진을 공모해 전시까지 열고 있다. 이렇게 몇 년 후면 우리가 알고 있는 카메라, 사각형 몸체에 렌즈가 튀어나와 있고, 셔터가 따로 달려 있는 그런 카메라는 거리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지난 12월 우연찮게 사진 모임에서 필름 카메라를 써 볼 기회를 얻었다. 때 마침 일본 여행 계획이 잡혀있던 터라 잽싸게 빌려왔다. 70년대에 생산됐다던 펜탁스 MX. 막상 빌려놓고 집에 와서 보니 막막했다. 이 녀석은 '진짜 카메라'였다. 노출을 직접 맞춰야 한다는 것 정도는 생각했지만, 초점까지 초점 링을 돌려 가며 맞춰야 하는 줄은 몰랐다. 그뿐일까. 필름을 넣고 맞게 끼우는 법부터, 한 셔터마다 필름을 다시 감아줘야 하는 것 까지. 그간 내가 써왔던 디지털카메라에는 생략된 과정들이었다. 나름대로 카메라를 좀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사진을 찍은 지 여러 해지만 필름 카메라를 써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은 많지 않았다. 가끔씩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필름 감성이 진하게 묻어 난 사진들을 보면 뽐뿌가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감성을 얻고자 숱한 불편함ㅡ필름 구매와 인화에 드는 시간과 돈, 특히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 등 ㅡ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카메라가 가진 그런 불편함 들을 제거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슬프게도 세상 어딜 가나 약한 녀석은 보다 강한 녀석에게 잡아 먹히기 마련이다. CD와 MP3에 밀려 사라진 LP판처럼, 필름 카메라도 그렇게 도태되었다.
후쿠오카를 여행한 4일간 Pentax MX를 쓰면서 느낀 점은 역시 불편함이었다. 필름이 잘 안 끼워져서 유튜브 동영상을 부랴부랴 찾아봤고, 초점이 안 맞아서 필름 몇 장을 날려 먹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되려 재밌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 중점 측광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외곽에 있는 피사체의 노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고, 초점을 맞추기 위해 수없이 초점 링을 앞 뒤로 돌렸다. 프레임을 잡기 위해 발도 이전보다 많이 움직였다. 찍기 전에 고민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망설였다. 찰칵, 셔터음이 울리기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선 첫 컷을 찍고 확인한 후,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이를 조금만 수정해 다시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하기에 도리어 촬영자를 카메라에 종속시킨다. 자동 초점에 자동 노출. 기껏해야 촬영자가 하는 것은 프레임을 대강 잡아 셔터를 누르는 것뿐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과연 내가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름 카메라를 찍어 보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그간 내가 사진을 찍었던 행위는, 사실 사진이라는 공정의 분업화된 수많은 일들 중 극히 소수의 것들이었다는 것을. 그 외 모든 것들은 자동화된 공정이었다.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보다 낫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성능 면에서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를 압도한다. 다만, 디지털카메라만 써본 사람에게 필름 카메라를 꼭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진은 예술이지만, 그 도구인 카메라는 기계다. 기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 좋은 사진이 나오기 어렵다. 그리고 그 기계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필름 카메라를 써 보는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사진 책들을 읽어보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PS1 : 필름을 넣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참고했다. <펜탁스 MX 필름 넣기>, https://www.youtube.com/watch?v=25dmuQrlil8
PS2 : 아래부터는 Pentax MX, 아그파 비스타 200으로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