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책 리뷰
지난 화요일, 검찰이 타다를 기소한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논란이 일었다. 타다가 기소되기 정확히 일주일 전 있었던 국회 시정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20차례나 ‘혁신’을 언급하며 강조했다고 한다. 정치권의 말들 중 대다수가 지켜지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타다의 기소는 우리 정부와 검찰이 가진 ‘혁신’에 대한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변화의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라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겉으로는 혁신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스마트폰이 야기한 시대적 변혁을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다의 기소처럼 기업가 정신을 짓밟는 일들이 일어날 리 없다. 역설적이게도 올해 출판계에서는 스마트폰 혁명을 다룬 책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다.
저자는 대중의 마음을 읽고 설득하는 데 꽤나 소질이 있는 학자인 것 같다. 스마트폰이 삶을 변화시키고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 인류를 만들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포노 사피엔스 또한 실제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기사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오히려 그가 새롭게 발견한 건,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스마트폰에 여전히 의구심과 두려움을 가진 기성세대의 속마음이다. "우리 어른들의 스마트폰 문명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로 시작되는 책의 첫 문장은, 기성세대를 '어른'으로 치켜세우는 동시에 그들의 보수적 태도를 부드럽게 지적한다. 이처럼 <포노 사피엔스>는 오롯이 한국의 기성세대를 겨냥해 기획된, 일종의 스마트폰 시대 선언문이다.
만약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처럼 독창적이고 치밀한 인문 서적을 기대하며 이 책을 구매한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 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거창한 전제와 달리 이에 대한 인류학적, 진화론적 근거는 불충분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무책임의 소산이라기보다 기성세대를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스마트폰을 적극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의 주도권을 쥐려는 미중의 대륙 세력’과 ‘시대를 읽지 못한 채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을 적극 대비하며, 우리가 이대로 가면 과거 조선처럼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에 밀려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처럼 사피엔스와 진화의 역사를 적절히 활용하며 ‘위기’라는 테마를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환기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선언이 아직도 회자되듯이, 위기의식 조성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잘 먹히는 레토릭이다.
개인적으로 <포노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땐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카메라가 3개 달린 아이폰과 화면이 접히는 갤럭시가 나오는 와중에 스마트폰 시대를 주장하는 건 언뜻 뒷북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포노 사피엔스>의 인기는 4차 산업혁명과 AI가 대두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과 혁신에 회의적인 사람이 많다는 점을 반증한다. 타다의 기소 사례는 그런 사람들이 심지어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번뜩이는 통찰력은 없을 지 모르지만 대신 독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부드러운 호소력이 담겨 있다. 시대 변화에 보수적인 리더들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역사적 사례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목격해왔다. 그래서 난 저자와 <포노 사피엔스>의 성공을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 정치권이 변하길 바라는 것만큼 헛된 희망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