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직장인들이 사내강사로
얼마 전 종영된 Mnet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내 또래에겐 향수를 부르는 방송이었다. 주석, 허니패밀리, 배치기, 얀키, 원썬, IF, 45rpm등 과거 내게 영웅이었던 1세대 래퍼들이 총출동했다. (타이거 JK, 다듀, 가리온, 바비킴, 스나이퍼 등은 아마 섭외가 안 된 것 같다. 그들 빼고 한국힙합을 논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코로나19도 겹치고, 기획도 영 내 맘에 안 들고.. 비록 시청률은 신통찮았지만 덕분에 아내와 함께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냈다.
(사족. 나는 고2때 9개월간 기획사를 다녔다. 예당 엔테테인먼트에 아주 잠깐 있었고, 그 후 우퍼 엔터에 있었는데 당시 내 랩 선생이 방송에 잠깐 출연했던 허니패밀리의 리더 박명호였다. 한편, 거의 못 봤지만 동아리 선배가 Primary라 그분 비트에 랩 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한국 힙합 대중화는 랩 경연 방송인 <쇼미더머니> 덕분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강연의 대중화는 무슨 영향이 컸을까? 나 개인적으로는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과 2006년부터 무료로 공개된 TED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2009년경 우리나라에 강연기획사들이 대거 생겼고 나 역시 2011년 시작한 후발주자이다. 오늘은 업계 9년차로서 ‘강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려고 한다.
강연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혼용하고 있지만 강의와 강연은 다르다. 여러 해석 중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의 의견에 공감한다.
“일반적으로 강의가 똑같은 대상들을 놓고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학문의 방법을 일정 기간 체계를 잡아 전하는 것이라면, 강연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어떤 주제에 대한 지식 또는 경험과 함께 적절한 통찰을 나누는 자리다.”
< 출처: 매일경제 [책과 미래]강연과 강의, 2019.3.23>
가령 내가 15주 동안 대학에서 가르친 <공감프레젠테이션> 수업은 “강의”에 속하는 반면 내가 쓴 <강연의 시대>에 대해 일회성 특강을 하였다면 그것은 “강연”인 셈이다.
강연 포맷의 다양화
강연이 인기를 끌면서 강연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다. (방금도 EBS에서 새로운 강연 프로그램 전화를 받았다.) 그에 따라 포맷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다음은 어느 논문에서 5가지 강연 프로그램들의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명견만리 : (강사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상 활용
세바시 : 짧은 시간의 옴니버스식 강연 (TED식 강연 )
어쩌다어른 : 연예인 패널의 방청객화, 장르의 차별화(예능)
차이나는 클래스 : 강연자와 패널의 토론형식, 연예인 패널의 케릭터화
말하는대로 : 버스킹 형식의 강연, VCR을 활용한 게릴라 형식의 관객 동원
<출처 : “TV강연프로그램 포맷분석 연구”, 박순임>
논문에 따르면, 향후 강연프로그램은 렉쳐멘터리(강의+다큐멘터리), 토론, 버스킹(야외, 길거리), 인포테인먼트쇼(정보+오락) 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연구자는 보았다. 최근 오디오북이 인기 많은데 앞으로 사람들의 체류 시간을 잡기 위한 '시간디자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강연 콘텐트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이후, 강연 시장
코로나로 앞당겨졌을 뿐 사실 언택트 시대는 정해진 미래였다. 트렌드 연구자들은‘언택트는 고립이 아닌 새로운 연결’이라고 분석하였는데 이에 따라 기업교육 패러다임도 진화 중이다.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실시간 스트리밍(랜선 강연)으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데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한 공간에 모일 필요가 없다는‘편리’를 경험하고 있다. 나도 zoom(웨비나)으로 실시간 강연과 컨설팅을 하였는데 전국 각지의 참여자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접속하여 시간과 비용을 대폭 아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SM의 슈퍼엠이 랜선 공연을 했는데 전 세계 7만 5천명이 동시 접속하였고 24억 이상 매출을 올렸다. 통상 오프라인 공연 수용인원이 1만명인데 인터넷으로 7만 5천명이 동시 관람한 셈이고, 추후 공개되는 VOD도 판매 예정이니까.. 수익이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강연도 이러한 식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앤디 그로브가 말한“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이 강연 비즈니스에도 찾아온 것이다. (출처, 일간스포츠 2020.4.28.)
이제는 직장인들이 사내강사로
과거 강연은 저명인사의 몫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고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다. 수년 전, 테마파크 현직자들의 강연 콘텐츠를 제작했다. 테마파크를 방문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강연이었는데 롤러코스터 설계자, 공연기획자, 공연엔지니어, 축제기획자, 조경전문가, VR전문가, 사육사, 수의사, 카레이서 등등 여러 현직자들이 자신의 직업과 경험을 강연했다. 강연이란 전문가의 특권 아닐까? 조직에서 강사로 발탁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이기도 하다. (구글 I/O나 Think 때 단골로 강연하는 구글러들은 탁월한 커뮤니케이터들이 많다.)
이것은 엔지니어나 전문직도 해당된다. 왜 삼성 임원들이 스피치 전문가들에게 발표력,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을까? 왜냐하면 기술 개발은 기본이고, 의사전달능력이 강한 엔지니어가 조직 내 경쟁 우위를 갖기 때문이다. ‘나는 개발만 하면 되지, 발표는 내 일 아니다.’란 사고가 가장 위험하다. (세상에, 요즘은 재벌 총수, CEO도 직접 제품 설명하는데..? 이러한 분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책이 있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나이키 등과 일하는 화술 전문가 카민 갤로의 <말의 원칙>을 읽어보길 권한다. 왜 글로벌 기업에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한지를 잘 다루고 있다.) 의사나 금융회사 대표들이 외부강연 활발히 하는 이유도, 강연료가 목적이 아니라 본인 PR과 더불어 회사 영업이 엄청 되기 때문이다.
(여담: 이러한 배경에서 나는 16년차 프레젠테이션 디자이너 디팩토리 최인호 대표와 ‘사내강사 강연콘텐츠'라는 콘텐트를 내놓기도 하였다.)
강연으로 미래를 대비하라
TED의 대표 크리스앤더슨은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소수가 선택적으로 갖추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21세기의 핵심 능력이다.”라고 하였다.
이제는 한 사람이 수십, 수만명에게 지식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시대다. 직장 내 발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살리면 된다.‘은퇴 후 그때 준비하지’라고 생각하는 당신. 후회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대기업 팀장은 이미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집필했고, 개인 홈페이지, 네이버 카페, 유튜브, 스마트스토어 등 다 만들어두었다. 2년 후 퇴사가 목표라고 하였다. (KT 상무로 은퇴한 내 장인어른의 가장 큰 후회가‘회사 다닐 때 대학원이나 여러 코스 들으면서 강연 준비할 걸.’이다. 은퇴 후 강연하고 다니는 동기들이 가장 부럽다.)
지식 강연이 인기를 끌고, 투자 유치 및 제품을 강연으로 알리는 문화로의 변화는 대통령이 직접 프레젠테이션 하고, 대기업 회장이 청바지를 입고 강연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내가 무슨 강연이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부터 대비한다면 불투명한 미래에 하나의 강력한 대안이 될 것이다.
글쓴이 : 오상익 (오간지프로덕션 대표)
저서 : <강연의 시대>, 제3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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