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와 나
러시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추운 나라 러시아는 나에게는 따뜻한 나라이다. 음악공부를 위해 내가 택한 유학지는 모스크바였다. 힘든 유학생활. 음악에 대한 고민.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을 위로해 준 것 역시 음악이었다. 학교 렛슨이 끝나고 강의실 복도를 나서면 언제나 옆 강의실에서 울려퍼지던 악기 소리들. 낯선 이들과 섞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역에서 만나는 거리의 악사들. 요리를 하는 기숙사 부엌에서도 음악이 들렸다. 어느날 러시아어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물으셨다. 나는 얼떨결에 차이코프스키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
그 날부터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된 차이코프스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40년에 태어나 1893년에 생을 마감한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러시아의 작곡가. 그의 음악이 나오는 음악회를 찾아다녔다. 러시아에서 직접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의 느낌은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3대 발레명작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을 보기위해 용돈을 아꼈다. 그의 러시아 가곡에서 느껴지는 정감이 풍부한 선율이나 음악적 깊이는 충분히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 당시 나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100년도 더 전에 차이코프스키가 밟고 다녔을 학교계단을 열심히 밟는 것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한때 모스크바음악원(차이코프스키 음악원으로도 불림)의 교수로 재직했었다. 그 생각을 하며 학교를 오갈때면 그 낡은 계단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음악속에 흐르는 러시아적인 요소들이 어렸을 적 벽지에서 자라면서 아름다운 민요를 많이 들은 영향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을 러시아어로 설명할 수 있을 때쯤, 나는 이미 차이코프스키를 사랑하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시달렸던 시간들을 딛고, 내면의 원숙미를 표현해낸 교향곡들. 1891년에 카네기홀 개장 연주회에 초대되어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기도 했던 그의 모습에 나는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했던 폰 메크 부인에게는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전했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 밤. 나는 차이코프스키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두꺼운 외투와 모자, 장갑에 부츠까지, 겨울밤 그를 만나려면 이 정도의 준비는 늘 해야한다. 전철역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까지는 한참이다. 눈길을 헤치며 극장안을 들어서면 언제나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백조의 호수’를 몇 번이나 본 걸까?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음악이 흐른다. 아! 얼었던 몸이 녹는 순간이다. 그렇지! 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 그 추운 겨울, 따뜻한 방안에 있지 않고 외투를 껴 입고서 공연장을 향하게 하는 그 힘!…. 음악이었다. 백조의 호수 선율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레리나의 발걸음이 되었다. 물론 두꺼운 외투의 무게도 느끼지 못한다. 이미 체감온도는 10도가 더 올라가 있는 상태다. 그렇게 차이코프스키의 나라, 러시아는 내게 따뜻한 나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