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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Morning Sep 12. 2021

입사 보너스1억 원을 따냈지만…

국내 대기업과의 연봉 및 처우 협상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네, 지금은 머리카락이 많이 비어 있지만 내년에 입사할 때는 단단하고 풍성한 머릿결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입사 면접의 마지막 멘트를 유머로 마치고, 아니면 이 멘트 때문이었는지, 나는 모 국내 기업으로부터 입사 보너스 1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 인재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하고 채용 후에는 전략기획 또는 내부 컨설팅 부서에 배치에 핵심인재로 키워나가려는 취지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모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이던 나는 해외취업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서 몇 곳의 국내 기업에도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모 금융기업의 서류심사를 통과해 뉴욕에서 진행하는 면접에 참가할 수 있었다. 프레젠테이션도 잘 마쳤고 컨디션도 좋았기에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 해당 기업에서는 합격통보와 함께 인사담당자와의 술자리를 마련했다. 어느 일식집에서 만난 인사담당자는 내가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으며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확인한 처우에 대한 서류에는 연봉 1억 원 및 입사 보너스 4천만 원이 제시되어 있었다. 


 당시 최종 연봉이 5천만 원 후반 남짓했던 나에게 무척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해외취업이 1차 목표였고 이미 해외의 다른 기업들과도 채용절차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국내 기업이 최초로 제시한 처우 조건에 바로 응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조금 시간을 두고 며칠 후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예상대로 다시 인사담당자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입사 보너스 금액을 6천만으로 상향하는 조건이었다. 연봉의 경우 연차에 따른 형평성 및 기업 내규로 인해 큰 폭의 조정이 어려우므로 입사 보너스 금액을 상향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는 해외 취업이었다. 기본적으로 해외 취업에 뜻을 품은 나에게는 해당 국내 기업이 플랜 B에 해당했을 뿐 아니라, 이미 해당 기업의 인재영입에 대한 강한 의지와 나의 높은 면접 성적을 확인한 바 있어, 연봉 협상에 있어 매우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기본급을 포함한 연봉 조정이 어려운 것은 기존 직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으므로 나는 협상의 초점을 입사 보너스 금액 상향에 맞추었다. 나는 나의 상대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을 담당자에게 다시금 강조하며 협상을 이어 갔고 이후 몇 차례 대화를 통해 회사가 제시한 최종 입사 보너스 금액은 1억 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특별히 대단한 협상 기술을 발휘한 것은 없었다. 다만 처우 협상에서 나의 위치와 상대방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상대방에게 확인시켜 줌으로써 원하는 목표치까지 차근차근 다가간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파격적이었던 처우 제안에 대한 기쁜 마음도 잠시, 이대로 해외취업을 포기해야 할지 결심을 내리지 못하던 어느 날 걸려온 국제전화 한 통이 있었다. Hello? Is this 가을 아침? I’m pleased to make an offer to you! 내가 바라던 해외기업의 인사담당자와의 통화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확인한 이메일에는 1억 원을 상회하는 연봉과 약 2천5백만 원의 입사 보너스가 제시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해외취업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꿈꾸어 왔던 해외취업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모든 게 익숙한 국내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쉬움과 어려움, 익숙함과 불편함, 안주와 도전으로 비유될 만큼 어려운 선택이었다. 또한 보수적으로 알려진 모 국내 기업이 채용과정에서 보여준 정성과 파격적인 조건 또한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깊은 고민 끝에 결국 나는 국내 기업의 인사담당자에게 해외로 나갈 뜻과 함께 정중한 최종 거절 의사를 전달하였다. 


 결과적으로 해외로의 이직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때 스스로 포기한 입사 보너스 1억 원이라는 금액은 아직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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