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wan Jul 11. 2024

광고

1. 좋은 광고

대행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광고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제일기획, 이노션, 대홍기획, HS애드, TBWA 등 종합광고대행사가 날고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광고주는 늘 멍청했고, 우리의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라면 브랜드 인지는 배가 되고 상품의 매출은 치솟았을 텐데, 광고주의 입김과 수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우리의 전략을 뒷받침하지 못한 광고주의 제품, 영업력, 지원 역량을 탓했던 목소리는 늘 넘쳐납니다. 갑질 때문에도 힘이 드니 우리는 지식 노동자인 동시에 감정 노동자인데, 크리에이티브하기까지 해서 온갖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이성과 감성이 결합된 솔루션을 찾아내고야 마는 헤라클레스이자 나르시스트들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광고는 제품 하나 바꾸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전략 한 장, 카피 한 줄, 레퍼런스 하나에 그치기도 하며, 결국 최종적인 의사결정과정에서는 배제된, 일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한계와 신세에 대한 한탄. 그럼에도 새로운 경쟁PT 과제를 받게 되면 다시금 나르시스트가 되어 의욕이 고취되고 헤라클레스의 열정과 힘으로 무던히 역경을 헤쳐나가는 광고인들은 그래서 대단하고, 치열하고, 소심합니다.


그런 광고인은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나뉩니다. 기획과 제작. AE와 Creative입니다.

Planer, Media, BTL, Digital 등 각자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직책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그 중심엔 기획과 제작이 있습니다. 이 둘은 많이 다르죠. 기획은 영업이기에 광고주를 상대하며, 돈을 쥐고 있기에 실적을 챙기며(투입 리소스와 이익), 전략가이기도 해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뼈대를 세웁니다. 스태핑을 하고 그 스태프를 이끄는 프로젝트의 오너로서 리더이기도 합니다.

제작은 다릅니다. 카피라이터건 아트디렉터건 가슴을 울리는 카피, 보지 못했던 비주얼을 꿈꾸며, 광고 크리에이티브 결과물의 주인임을 스스로 자평합니다. 비용은 잘 모르겠고, 기획들이 가져온 전략은 말이 안 되기에, 결국 내가 세상에 없던 크리에이티브로 광고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실제로 때론 그러하기도 해서 크리에이티브는 광고회사의 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싸웁니다. 기획은 제작에게 '광고주의 돈으로 지가 좋아하는 아트질을 하고 있다'고 하고, 제작은 기획에게 '엣지도 없는 전략으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일갈합니다. 기획은 광고주를 팔아 제작에 호소하고, 제작은 피곤과 창의의 고갈을 무기로 기획을 협박하죠. 티격태격, 티키타카와 같은 시간으로 광고물이 탄생합니다. 제작이 좋아하는 안 하나, 기획이 미는 안 하나, 임원이 고른 안 하나가 섞여 A,B,C안이 됩니다. 광고주가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기에 안을 복수로 펼칩니다.


시안을 받아보는 (광고인이 보기에) '멍청한 광고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일이 본인의 일임을 잘 압니다. 실무 담당자는 빠진 것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제품의 소구 포인트와 특장점, 편리성, 모양 등 상품을 가장 잘 알기에 그 모든 사실을 담고 싶습니다. 중간 관리자는 그 간의 경험으로 비평을 시작합니다. 모델과 배경을 평가하고 적절한 컷인지, 매력적인 카피인지 의견을 답니다. 상급 관리자는 생각이 많습니다. 사장님이 좋아하실지, 광고의 Tone & Manner가 우리 회사와 어울리는지, 저 광고가 나가면 매출이 오를지, 요즘 트랜드에 맞는 건지. 그러한 생각들에 치여 명확한 디렉션을 주기가 어려워집니다. 이쯤 되면 우리 직원들의 의견을 고려해 주고, 회사의 분위기와 맞춰주면서도, A안의 a와 B안의 b가 좋으니 합쳐볼 순 없을지도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 영업부서에도 의견을 한 번 들어보겠다며 자리를 마무리합니다. 광고인은 회의의 '결론이 뭐지' 자문하고 광고주는 '딱 이거다 걸리는 게 없다'며 답답해합니다.


광고 기획을 하고 크리에이티브를 뽑아내는 전문가들과 차별적 제품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탄탄히 사업을 영위하는 전문가들이지만, 그들이 모여 하나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놓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좋은 광고란 무엇일까요. 아이디어가 기발한,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광고주가 만족한, 제품을 팔리게 하는, 기억에 남는, 비용대비 효과가 좋은.

각자의 처지와 취향에 따라 판단은 달라집니다. '좋음'은 주관적 영역입니다.  그저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이 광고인의, 광고주의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광고는 목적성이 근간이 됩니다. 광고를 해야 하는 이유와 그를 통해 달성코자 하는 목적. 이제 '좋음'에 객관적 기준을 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광고, 마케팅, 브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