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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Mar 05. 2023

언니, 이것 사자

"만칠천팔백원"


7살쯤으로 보이는 동생은 언니에게 "이거 우리 사자"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 있는 것은 누군지 모를(여기에서 세대 차이가 나는 건가) 어느 한 아이돌 가수의 CD가 두 장 놓여 있었다. 동생보다 많아봐야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언니는 동전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두 번 접고 세 번 접혀 있는 천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 그리고 백 원짜리를 꺼내어 나머지 돈을 맞추고 있다. "다시 세어 보자,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 그러고는 "만칠천팔백 원" 다행이다 돈이 딱 맞아.


오랜만에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 출장(작가가 서점에 가는 건 뭐 일 때문이니까) 나갔다.  '알라딘'은 중고 책을 매입해서 재 판매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래도 작가로서 책 읽기는 또 다른 업무 중에 하니이기에 늘 책을 끼고 살고 또 시장 조사를 나가기도 한다. 나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몇 권하고 무명작가의 새로운 책 몇 권을 더 사려고 책 검색대에서 책 이름을 입력하고 있었다. 나 나름대로 집중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두 아이의 이야기는 평온했던 서점에서도 유독 나의 귀를 종끗 세우게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잘 몰랐다. 고사리 손이라는 걸 말이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외출한 중고 서점에서 책은 아니지만 그네들 안에서 유행하는 가수의 CD를 고르면서 설레는 마음이 상상이 갔다. 사고 싶었던 물건이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비쌌는지 그래도 동전지갑 안에 있는 먼지까지 툭툭 털어내면서까지 함께 숫자를 세면서 마지막에 어떻게든 끼워 맞췄나 보다. "우리 이거 살 수 있는 것 같아 언니"라고 말하는 동생에 말에 오히려 내가 잘 되었구나'라고 말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아이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듯 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성공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해져 있는 성공의 길을 재탕하고 강요하며 살고 있는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나뿐일까. 잘 사는 게 정답이라고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강요하는 건 우리 어른들이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성공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또 한편으로는 돈 많이 벌고 호의호식하면서 봄에는 지중해, 여름에는 칸쿤에 여행계획을 세우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 나를 보면 '역시 돈이 최고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역시 속물이다.


책을 사랑하는 여러분(그렇게 믿겠습니다)들도 잘 아는 인문학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한때 글을 쓰는 나도 인문학에 심취해서 책을 나름 여러 권(?)을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아서 반 이상을 읽은 책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제목이 잘 생각나지도 않다. 그래도 딱 하나의 책은 기억나는데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웰든'이라는 책이다. 웰든은 책 저자인 소로우(이름을 줄여서 말해보겠음)가 미국의 어느 한 호수인 웰든이라는 곳에서 도시를 떠나 문명의 도움을 줄이고 살면서 쓴 책이다.


웰든은 호수이름이고, 책의 내용은 그냥 호수에서 살아가는 하루의 일과 내용이나 낚시를 했던 에피소드를 그냥 덤덤하게 써 내려간 미국판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느껴지는 그런 책(?)이다. 왜 이런 그저 그런 일상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이런 책이 세계 문학에서 빠짐없이 오르내리는 책이 되었는지,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은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장인이야,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자신을 탓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탓할 것은 자신뿐이다"


그렇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길을 찾아 나서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행복해지고 싶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알아나갈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나도 처음에는 성공을 위한 길을 안내하는 내 경험과 인생을 반쯤(전부는 아닌 반쯤)을 갈아 넣은 자기계발서인 첫 번째 책에는 행복에 관한 공식을 나름 적어놓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책상을 떠나 자연적 환경에서 여유를 찾으라는 말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소로우의 소설 월든에서 말하는 자연석에서 찾은 인문학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회사에서 외부 심리상담 기관에 의뢰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게 왠 거야라고 호재를 외치며 바로 상담 신청을 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직장이라는 조직 내에서 옮았을 심리적 질병을 치료해 보고자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날짜를 잡고 퇴근 후 7시쯤에 상담기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를 기다리다 목이 빠졌는지 눈이 붉그스럼 한 원장님이라는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나를 미소로 맞아주었다.


"오시는 길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참 사려 깊고 내가 이곳까지 오는 걸 걱정해 주는 듯하는 한 마디도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1시간 정도의 상담은 이러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불편한 게 무엇이었는지, 그럴 때는 어떤 마음이 드는지 정도 일상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말하게 되었다. 사실 상담 내용을 말하기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내용은 잠시 접어둔다. 그저 두 마디가 머리에 깊이 남아서 여러분이 나누고 싶다. "저는 상권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는 상권님이 뭐라고 말하더라도 괜찮아요. 그러니 저에게 다 털어놓으세요", "그게 제가 몫이에요"


나는 오랜만에 말에 포장하지 않고 저 아래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때 느껴졌던 감정들 '분노, 화남, 서운함' 같은 감정들을 느끼며 쌓여있는 먼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라하며 놀랬다. 그렇게 후딱 지나간 한 시간, 마지막에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상권님 그런 감정 가지시는 게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러니 지금 말한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언제부터인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어렸을 때 좋으면 활짝 웃고 싫으면 찡그리던 얼굴이 어쩌면 가장 편안했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물론 내 기분대로 태도를 보이는 사회생활은 배려심 없는 이기적인 나로 보일 수 있으니 감정 조절을 해야 하겠지.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감정의 찌꺼기가 쌓이는 마음속 쓰레기통이 이미 다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냥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데, 언니와 함께 두 손을 잡고 CD를 사러 나온 재매가 꺼내논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 동전이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동전을 안 쓴 지 참 오래되었다. 어렸을 때는 백 원이면 많은 걸 하기는 했는데, 동전 쓸 일 없는 요즘이 조금은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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