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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16. 2023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한 반복 연습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기고2


“상대방 머리를 칠 때 자꾸 엇박자로만 치려고 하면 안돼.” 

“손목을 칠 때 몸이 옆으로 기울어. 틈이 생기면 상대에게 공격 당할거야.” 


검도라는 무예를 시작한 지 십 수년 차. 매일 비슷한 내용으로 수련하는 듯해도 몸이 내는 수련의 아웃풋은  그날의 컨디션 따라 들쑥날쑥 달라집니다. 


다른 종목의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도 비슷하실까요? 어느 날은 잘 되는데 다른 날에는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그런 날에는 선배들에게 자세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자기 움직임을 살피는 감각이 둔해지면 몸이 저절로 편한 길을 찾는건지 나쁜 자세가 쑥쑥 나옵니다. 좋은 자세는 누군가가 알려줘도 몸에 잘 익질 않는데, 나쁜 습관은 알려주는 이 없이도 몸이 알아서 만들어내더라고요. 신기한 일입니다. 


“어제의 내가 해낸 걸 오늘의 내가 못하다니!” 


자신의 움직임에 혼자 어이없어 하는 순간도 생깁니다. 애써서 간신히 가능해진 기술이라던가, 기초 발동작이나 들어 치는 죽도의 왼손 위치 같은 게 어그러지면 꽤 속상해요. 그렇다고 제가 수련을 뺀질거리며 빠지는 편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거든요(저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왠만한 일이 없으면 매일 수련하려는 입장에선 살짝 억울하단 말이지요. 어찌됐건 지적받은 결점이 많아지면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여러 피드백을 한꺼번에 기억하려고 머릿속은 분주해지죠. 


뒤로 빠진 엉덩이는 앞으로 끌어와야 하는데, 살짝 비툴어진 왼발 각도는 다시 일직선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뒤로 빠진 엉덩이를 생각하다가 왼발이 꼬이고, 왼발을 신경 쓰면 엉덩이가 다시 뒤로 빠집니다. 그렇게 단번에 여러가지 수정사항을 몸에 기억시키는 건 보기 좋게 실패. 그럴 때는 고칠 점들을 어딘가에 적어두고 하나씩 해나가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다른 아마추어 검도인들도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검도 관련 계정에 수련한 날의 고칠 점을 깨알같이 적혀 놓곤 하는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저는 손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해서 종이 공책에 손으로 끄적끄적 낙서와 함께 적어두는 편이에요.  


스스로 적어놓은 고칠 점들을 쭉 살펴봅니다. 고치는 데 오래 걸리는 것과 바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나뉘어요. 먼저 살피는 건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고쳐지는 것들. 예를 들어 ‘죽도를 쥐고 있어야 할 오른손을 습관적으로 놓는다' 하는 부분은 ‘오른손을 안 놓기로' 생각하면 마음먹은 그 순간 바로 고쳐지죠. 의도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만큼 익숙해지는 것 자체에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요. 


반면 ‘왼발이 빨리 따라붙는다’ 같은 부분은 왼발의 힘이나 속도를 높이도록 꾸준히 연습해야 가능한 부분이에요. 어떤 공격을 하던 검도의 기본자세는 오른발을 앞에 두고 왼발을 뒤에 둔 자세. 이때 왼발이 뒤에서 몸을 앞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특히 중요하거든요. 왼발이 뒤에서 몸을 밀어준 다음 신속하게 오른발 뒤로 따라붙을 것. 그래야 한번 공격에 실패해도 재빠르게 그 다음 동작을 이어갈 수 있어요. 검도하는 사람들끼리는 “검도의 왠만한 기술은 왼발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합니다. 그만큼 중요해서 왼발로 몸을 미는 연습은 오래 걸려도 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기억해서 왼발에 힘 주는 연습을 하더라도 종종 까먹곤 합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단번에 성장하는 종류의 성취감은 아니예요. 화려함으로 따지자면 검도 유튜브 영상에서 본 멋진 기술을 따라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 거거든요. 그래도 고쳐야 할 자세를 가다듬으며 반복, 반복, 반복. 스스로 하는 노력과 사범님들과의 하드 트레이닝 사이를 오가고, 지루함과 번거로움을 거듭하다 보면 몸이 만들려던 자세를 정확히 해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는 시합에서 상대와의 결정적인 승부를 보는 때입니다. 긴장으로 머릿속이 하얀데 평소 연습하던 기술이나 고쳐진 자세가 몸에서 툭 튀어나오는 순간. 몸이 알아서 움직임을 해내곤 해요. 아주 가끔 찾아오는 순간임에도 그런 때를 맞이하면 얼마나 기쁘던지요! 적절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딱 필요한 움직임을 해낸 내 몸이 무척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무심(無心)의 일격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면 이런 걸까 싶어요. 힘이 붙은 왼발만큼 단단해진 자세. 그 자세를 만들려던 노력이 레고 조각처럼 모여 만들어낸, 조용하고 묵묵한 아름다움이 폭발하는 순간이에요. 


이러다 보니 수련의 과정을 겪으며 일상에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구하는 건 하루하루의 꾸준함. 그 꾸준함이 필요한 순간에 마음을 일으켜 몸을 던지게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교과서로 기본을 다졌다는 모범생 이야기만큼이나 반전이 없는 부분일까요? 각종 무협영화에서 나온 주인공들의 필살기를 구경하는 것보다도 훨씬 지루할 것 같지만, 오랜 세월 은근한 노력 끝에 조금은 납득하게 된 꾸준함의 무서움이랍니다. 


의지와 실행력을 갖췄다면 사람마다 언제 가능한지의 차이일 뿐. 해내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걸 믿어보고 싶어요. 다만 이 건설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도, 반복연습을 할 때는 영 지루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고 마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왼발 힘을 키워보려 도장 한켠에서 런지 동작을 응용해 몸을 앞으로 밀어보지만 오늘도 역시. 


사실은 기본기가 지루해서 슬쩍 뺀질거리게 됩니다. 도장 사범님들에게 들키면 혼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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