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Jul 16. 2023

다친 몸을 통해 바라보는 것들

매거진 나이이즘 기고

언제부턴가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물리적으로 작아졌다기 보다 몸이 해낼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줄어든다. 줄어든 가짓수만큼 몸이 구현할 수 있었던 어떤 가능성들도 쪼그라든 느낌이다. 코로나 이후 줄어든 운동량 때문에 몸의 부피는 되려 늘었으니까.. 


20대 초반부터 검도라는 격투기를 수련해왔다. 수련의 연차가 쌓일수록 구현해내는 기술이 점점 원숙해졌고, 더 잘하고 싶은 실력의 정도도 높아졌다. 공격 별로 알게 된 적정 타이밍, 동작을 반복하며 근육에 붙기 시작한 힘. 몸의 능력이 높아질수록 자아 효능감도 올라갔다. 꾸준히 연습하면 계속 강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이 늘 강해지기만 할 수는 없었나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걸 몸으로 실감한 적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몸이 마음에게 자꾸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제 좀 열심히 해볼까?”하고 마음이 말하면 “그만해 못 견뎌.”하고 몸이 막는 느낌. 멀리 뛰어가고 싶은 마음과 걸을 수 밖에 없는 몸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살살 다뤄주세요, 하고 서른 다섯의 내 몸이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현재의 몸 상태를 살펴보면 왼쪽 어깨 부분이 찌릿하다. 신경통인가 싶은데 이 부분은 운동강도로 조절하고 있다. 왼쪽 아킬레스건은 어느 날 “뚝" 소리를 내며 미세파열이 왔다. 7개월이 넘었지만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충격파 치료 등 병원에서 진행되는 치료요법이 있지만 위약효과 정도의 수준이라고, 혈액이 잘 순환하지 않는 발목 부위는 원체 회복이 더딘 데다가 재활운동을 통한 회복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덕분에 요즘은 고장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기본동작 연습 위주로 집중하는 나날이다. 재활운동의 동작은 무척 단순하고 맨밥을 꼭꼭 씹어먹는 마냥 지루했다. 차츰 재활동작 하는 횟수가 뜸해졌다. “운동 안 하고 쉬면 낫겠지” 그런 마음으로 운동보다 일상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업무에 치이고 관계에 치이고, 그렇게 몸에 무심한 하루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최근 부상의 근원을 짐작하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주 1회 가는 요가원에서 몸을 삼각 지붕 모양으로 만드는 다운독 동작을 하던 순간. 내 동작을 교정하는 요가 선생님의 멘트가 귀에 꼿혔던 것이다. “발을 좀더 안쪽으로" 선생님 말에 따라 발을 안쪽으로 좀더 넣었더니 그 약간의 조정으로 몸의 정렬이 잘 맞아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내 발, 그동안 바깥쪽으로 힘을 줘왔던가. 


평소 신고 다니던 신발을 봤다. 발의 안쪽보다 바깥쪽이 확연하게 닳아 있었다. 얼마 전에 본, 인스타툰 작가 키드님의 만화 내용이 떠올랐다. 운동과 관련해 발의 기능에 대해 언급한 에피소드였다. 발의 안쪽을 주로 내딛는 걸 내전, 바깥쪽을 내딛는 건 외전이라고 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외전의 경우 발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아킬레스건 부상이 올 수 있단다. 내 발이 딱 외전이었다. 아니 내가 외전이었다니. 검도의 기본 발동작을 하면서 그렇게 올바른 발의 각도를 강조했던 내가.


“내가 예전부터 너의 걸음이 팔자라고 했는걸.” 나의 오랜 검도친구인 애인에게 발 상태를 말하자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잠시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지 싶었다. 말로 들으면 잘 와닿지 않는걸. 잘못된 과정도 그에 대한 결과도 몸으로 겪어야 더 와닿는 나. 깨닫는 순간이 와서 다행이다. 잘못된 자세를 하고 있었던 내 몸. 아마 계속 운동 강도를 높였으면 어느 시점이던 다쳤겠지 싶다. 


내 몸의 상태를 좌표 면의 곡선이라 상상한다면, 그 곡선은 위를 향해 갈 때도 있고 때로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성장 곡선일 때의 성과를 기준으로 내 몸을 평가하고 다그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상승기던 쇠퇴기이던 뭔가를 해내는 것은 언제나 지금의 몸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내 한계 같기도 혹은 내가 가진 작은 가능성같기도 한 몸. 결국 그때 그때 내 몸 상태에 맞게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몸에게 예전에 바라던 것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몸의 한계를 짓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몸 상태를 감안하지 않는 것도 몹쓸 짓 같아서다. 강도 높게 운동하지 못하니 몸도 예전처럼 다부지지 않을 것이고, 아킬레스건에 온전히 체중을 싫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내가 만들어내는 타격의 강도와 탄력도 줄어들 것이다. 일단 지금을 인정해야 한다. 이전보다 천천히 걷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 또 고꾸라질지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이 서로 보조를 잘 맞추어가는 단짝이 되길 바란다. 이제까지 이 몸으로 어떤 성과를 내기만을 바랐다면, 지금은 다른 목표가 추가됐다. 이 몸과 좀더 오래 가고 싶다고. 어쩌면 지금 겪는 과정은 앞으로 더 자주 찾아올 지 모를 몸의 하강기를 맞는 예행연습이지 싶다. 


더 잘 지치게 되는 몸, 뼈가 닳아가는 몸, (확신할 순 없지만) 혹시 임신을 하게 될지도, 출산 후 회복기에 들어가면서 몸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지도 모를 몸. 그렇다면 앞으로 몸의 이슈를 맞이할 때마다 그에 걸맞는 대처를 알았으면 좋겠다. 대처법을 잘 찾아내지 못 하더라도 마음만큼은 무너지고 싶지 않다. 그 순간의 몸과 마음이 해낼 수 있는 일마저 놓치지 않았으면, 언제나 각각의 순간 가능한 만큼 움직여주는 내 몸을 고마워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 이 글은 매거진 나이이즘 3호: 몸에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가리는 생활무예인의 프랑스 검도도장 방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