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땡이할머니

by 이민


우리 외할머니의 별명은 뚱땡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평생 셋방살이를 했지만 손주들이 오면 푸짐하게 음식을 내오셨는데,

왁자지껄 식사가 끝나면 할머니는 금세 잠에 들기 마련이었다. 개구쟁이 사촌은 꾸벅이며 졸고있는 할머니의 배를 두드리며 뚱땡이라 놀렸고 그녀는 인상 좋게 허허 웃기만 할 뿐이었다.


허름한 벽지, 푸짐한 상과 할머니의 산만한 배는 무척 넓고 안락해서 지친 이들의 쉼터로 제격이었다. 그곳은 때로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삼촌들이 머무르는 안식처이자 어머니가 싸운 뒤 나를 데리고 기거했던 대피소기도 했다.


이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 때쯤 그녀는 갑작스레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자식들의 벌이가 변변치 않아 동네에서 목욕탕 청소를 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은 것이다. 항상 넉넉한 웃음을 짓던 할머니의 표정과 달리 심장은 꽉 막혀있었고 이것이 그녀가 항상 꾸벅꾸벅 졸았던 이유였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할머니는 그 뒤로도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자식들의 집을 떠돌고 눈치 보며 살았다. 한번은 잠시동안 우리집에 머무르던 어느 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를 보며 "너 덕분에 내 딸이 마음편해 고맙다"고 말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봐도 못본 척 평생 표현하지 않고 웃기만 하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내게 진심을 보였다는것을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후 삼촌 중 한 분이 사업으로 성공하고 우리 집안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너도나도 할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을 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사랑의 원형에 대해 의심이 들 때면 나는 언제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모두가 그녀를 만만하고 편하고 쉽게 생각했지만 그럼으로써 모두를 품었고 결국 키워냈다. 단 한번의 잔소리도 훈계도 없었지만 눈가의 주름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때 뒷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하는 분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녀를 머리속으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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