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맥락 속에서 발견한 영혼

by 이민


사실 지난 2년 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 졸업을 마무리 짓는다거나 운동이나 투자와 같은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물리적으로 하긴 했지만 분명 난 살아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다만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일어나서 무언가를 먹고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듣고 무언가를 하는, 반복되고 또 이어지는 무료한 나날동안 솔직히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일 다른 방식으로 자문했다. 하루는 챗지피티와 다른 날은 어떤 철학 책을 읽으며, 또는 꿈속에서, 가끔은 어쩌다 만난 하룻밤 상대 옆에 누워서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또 물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생산성 없는 주제는 내 주위를 떠돌며 순수한 생물체인 나 외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직업, 연인, 돈, 미래계획, 추억, 가족, 친구, 도덕, 가치, 희망, 느낌 등 실질와 추상을 가리지 않고 무효화 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이르게 된 걸까. 추정해보면 시작점은 어떤 석연찮은, 미세한 균열을 발견했던 때로부터 였던 듯 하다. 나와 함께 지내며 무언가를 느끼지만 그걸 말하지 않는 직장동료들과 당시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던 전 여자친구들, 내 눈치가 보여 쉽게 전화도 걸지 못하는 부모에게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감지했다. 그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있다는 의구심 보다는 더 근원적인, 과연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길래 주변인들은 이토록 나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고, 모호하고, 더러는 경멸하고, 거리감을 느끼고, 어색해 하는걸까라는 막연하지만 총체적인 어설픔을 체감했다. 잘못 풀어낸 수학 계산식을 되짚어보듯 나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통틀어 과연 문제는 무엇이었을지 돌아봤고 때로는 내 존재 자체가, 또는 내 부모가, 한편으론 어떤 이 국가와 사회와 우주 속에 우연한 나의 선택과 운에 결점이 있어 지금의 나라는 알 수 없는 혹은 규정되기 어렵거나 무가치한 그래서 나를 거쳐간 모든 다른 사람들이 다소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배려와 격려를 애써 해주다보니 나라는 실체가 사실은 뚜렷하지 않아 얼기설기한 상태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생각과 공부들, 해소되지 않는 의아함 속에서 그리고 지금도 치열하게 각자가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내고 빗어내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다 우연찮게 나는 결코 예외없는 패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이야기 혹은 맥락. 역사와 종교, 각종 학문들 그리고 현재 세상을 주도하는 리더들과 그들을 선망하며 따라가는 팔로워들 또는 그들을 욕하는 자들, 죽고 살리고 꿈꾸고 포기하는 모든 이들은 일관되게 어떤 이야기와 맥락에 도취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영혼일 것이고 어떤 집단에게 그것은 정체성이겠으며, 국가에게 그것은 역사이고 종교에겐 섭리이자 계시였다. 역사 속에 남아있던 선구자들과 현재를 일궈가고있는 자들, 또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가다보니 이야기와 맥락이 생겨 그 맥락과 이야기를 이어가기위해 살아가고자하는, 심지어 죽으면서까지 다음 생과 후손에게 그 몫을 넘기고 있었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내가 내 이야기와 맥락을 무시했던 것이다. 과거의 어설픈 경험들, 못난 모습들, 나에 대한 혐오는 현재와 과거의 나를 단절시켰다. 과거의 내가 싫으니 현재의 나는 달라야했고 또한 미래의 나는 과거와 겹치는 점이 없어야했다. 이야기가 분절된 상태를 오히려 나는 반겼고 어쩌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 속에서 언제나 또 다른 이야기와 맥락이 만들어지길 바랬다. 어떠한 기준도 잣대도 없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든 뭐라도 되기위해 분주히 탈선과 정착을 반복했다. 원점과 이어지는 경유점이 없으니 예상되는 도달점이 있을리 만무하고 따라서 나는 만나는 모든 이 마다 딱히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파편화된 무언가였을 것이다. 비어있는 맥락을 가상으로 꾸며내기 위해 매순간 더 힘들고 더 괴로웠고, 아마도 그러다 보니 인생이 고달프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면 혹은 기회가 있다면 현재 삶에 당도해있는 누구나 자신의 혹은 세상의 이야기에 간섭할 자격이 주어진다. 비록 선택할 수 있는 다음 범위는 맥락에 따라 지독히 한정되어있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유일한 것은자신만이 관찰하고 겪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일 때 나 라는 실존과 나아갈 방향이 확정되어 앞으로 살아가는 버팀목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 또한 선택이다. 끊임없이 이야기와 맥락을 거부하며 정의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다시 그 흐름에 몸을 맡길지 말이다.


어쩌면 삶이란 새로운 이야기를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이야기를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의미는 밖에서 주워 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끝내 버리지 못한 맥락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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