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을 정복하기까지의 50일
치질은 때에 따라서 대변을 보다 피를 볼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더불어 하루 혹은 이틀에 한번 꼭 변을 봐야하기에 병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 원점타격 하지 않는 이상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지독한 병이기도 하다.
이 글은 내가 변기를 처음 피로 물들인 후 치열한 원인 탐구, 수술이 아닌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을 고쳐 완치해낸 50일 간의 기록이다.
비록 피, 똥, 눈물의 세련되지 못한 글 주제이나 여러분의 응꼬를 위해 속는 셈 치고 한번 정독해주기 바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질의 주요 원인은 긴장이다. 흔히 원인이라 일컫는 좌식습관이나 치료법인 좌욕은 항문에 긴장을 가하는 습관이자 긴장을 푸는 해법이기도 하다.
달리말하면 아무리 오래 앉아있는다 하더라도 항문에 긴장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치질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한 청결을 유지하면서 좌욕을 백날 해봐야 항문이 긴장해 있다면 치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50일 동안 병원, 좌욕, 운동, 식단을 하며 깨달은 치질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약 3년 전, 회사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면 간혹 부욱 찢어지는 느낌과 휴지에 좁쌀만큼 피가 묻어 나올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와 오늘 내 똥 좀 굵었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퇴사 후 장시간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언제부턴가 그 소름돋는 느낌과 함께 휴지에 피가 보이는 횟수는 늘어갔다.
그러던 중 약 두 달 전 나는 변기 물에 피가 낭자해있는것을 목격한다. 이것이 내가 치질, 그 중에서도 항문 부근이 찢어지는 치열을 인지한 첫 순간이다.
술 담배 일절 하지않고 무산소와 유산소를 균형있게 해온 내가 치질이라니.. 병원 두 곳에서 검사를 받아봤으나 단순히 항문 안쪽이 찢어져 있을 뿐 수술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었기에 약 처방 외에 상담을 잘 해주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병원에선 수술을 해야 이득이기에 굳이 관심 기울여 주지 않았던 듯 하다.
어쩔 수 없이 각종 유튜브, 인터넷 글을 찾아보며 대변 보는 자세도 바꿔보고 유산소 운동도 늘려보고 좌욕도 해봤다. 하지만 변을 물렁하게 해주는 완화제를 끊는 순간 다시금 치열 증세가 도졌고, 오히려 치열을 신경쓰여 항문에 과도한 힘을 주거나 힘을 풀어 더 심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악순환에 갇힌 것이었다. 놀랍게도 각종 커뮤니티 등지에 치질로 고통받는 이들이 모두 나와 비슷했다. 처음 치질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치질을 신경쓰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수술에 이르는 사례가 흔했다.
그때서야 나는 지금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삶의 모든 습관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설령 그것이 일반적으로 좋아보이는 습관이라 할지라도.
나의 구세주는 구글 제미나이였다.
무엇을, 얼마만큼 물어봐도 해결법을 제시 해주기에 나는 내 앉아있는 자세, 의자 세팅, 식단, 운동, 습관 등을 모조리 털어놨다. 그 결과 지금까지 건강을 위해 해온 거의 모든 습관이 치질을 불러오는데 일조했다.
첫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건강식단이었다.
흥미롭게도 처음 증세를 보였던 3년 전, 그리고 두달 전 나는 극단적인 1일 1식 혹은 정제 탄수화물을 보리, 현미로 대체하되 육류를 주로 섭취하는 식단을 강행했었다.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졌지만 그런 인위적인 식단은 반대로 딱딱한 변을 만들었고 이는 항문에 상처를 내기 딱 좋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성분들이 다이어트 때문에 치질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 가장 좋은 건 수분이 많이 함유된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요구르트다!)
둘째, 평소 앉아있는 자세와 의자 세팅에 문제가 있었다.
허리를 곧추세우지 않고 척추에 힘을 풀은 편안한 자세가 반대로 항문 쪽을 직접 압박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무릎보다 엉덩이가 더 낮은, 그러닌까 전체적인 자세가 살짝 누워있는 듯한 의자세팅이 이 압박을 배가했다. 항문에 발생한 상처는 이 압박되는 자세와 세팅으로 인해 더욱 심해졌음이 틀림없었다.
마지막 이 둘을 아우르는 핵심 원인은 바로 몸과 마음의 긴장이었다.
몸에 과한 긴장을 일으키는 행위(헬스, 과도한 운동, 업무)나 마음가짐(식단, 경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항문에 힘을 주게 만든다. 항문 쪽이 긴장되면 자연스레 혈액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가 낫지 않는다. 심지어 이 긴장의 영향이 대변을 볼 때 고스란히 이어져 다시금 더 큰 상처를 만든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단 하나, 그것은 내려놓는 마음이었다. 과도한 식단도, 고중량의 헬스도, 장시간 의자에 앉아 고민하던 일도, 카페인을 때려넣으며 집중과 생각하는 것도 아닌 긴장을 푸는 것 그게 핵심이었다.
그래서 올바른 자세와 의자에서 집중할 만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스트레칭을 하며 명상 했다. 상처가 심할땐 누워서 안보던 만화책이나 영화를 찾아봤는데 오랜만에 아무 걱정없이 놀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고 그게 상처가 아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후 곰곰히 나와 주변을 바라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어쩌면 나는 식단과 헬스를 하며 은연중에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좀 무시했던것 같다. 동시에 그 날카롭고 비판적인 잣대를 나에게 갖다댔다. "하면 좋은데 왜 안하지? 건강하고 이득인데 바보~"라며 말이다. 만화나 드라마 같은 허구의 창작물을 보며 즐기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절제했다.
한마디로 실질 이득이 되지 않는 모든 행위나 생각을 '환상'으로 치부해 무시했다. 오로지 몸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식단이나 운동 공부 고민 노력만이 '진짜'라고 생각해 그 날카로운 칼을 나와 세상에게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치열을 극복하며 남긴 습관은 올바른 자세, 스트레칭 습관, 내려놓는 자세.
그리고 내가 무시하거나 환상이라고 치부했던 모든 것들 그것들이 어쩌면 다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하는 깨달음이다. 식단 때문에 입에도 대지 않던 떡볶이, 지하철 광고판에 걸려있는 아이돌 생일축하 메세지, 조금은 바보같아 보이는 유치한 만화나 피규어들 등등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팍팍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 수 있는 필수 불가결한 환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