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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22. 2020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넉넉히 재미나게 살 수 있기를

취나물 하고, 밭일도 하며 자연과 함께한 오늘 하루

비탈지고 우거진 산자락을

오르고 미끄러지며 취나물을 했다. 

곳곳에 취가 훌쩍 자라 있다.

나물하기엔 때가 많이 늦었다.


올봄 들어 산에 오른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시간도 없었고, 왜 그런지 갈 마음이 잘 내키지도 않았고 

그랬다, 그냥 그랬다. 

예전 같으면 벌써 대여섯 번도 넘게

이 산 저 산 다녔을 텐데……. 


양지바른 자리를 지나 그늘 자락에 다다르니,  아직은 한껏 자라지 않은 취나물이 군데군데 보인다.


취나물 말리는 일을 건너뛰고서 

이 봄을 지나쳐 버리면

귀촌살이에 뭔가 구멍이 날 것만 같은 걱정에

애써 마음을 내고 몸을 움직였다. 


연둣빛 나뭇잎들이 한껏 반기는 산, 

온갖 풀들이 좌르륵 맞이해 주는 산, 

산은 역시 좋긴 좋구나. 


양지바른 자리를 지나 그늘 자락에 다다르니,

아직은 한껏 자라지 않은 취가 군데군데 보인다.  

어찌나 다행스럽고 반갑던지!


고마운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고 또 굽히고. 

덕분에 가시에 찔리고 긁히면서

산에 다녀온 흔적을 팔다리 곳곳에 훈장처럼 남겼다.


우거진 산비탈을 타다 보니 가시에 찔리고 긁히기 일쑤여서 팔다리 곳곳에 훈장처럼 상처가 남았다.


한동안은 먹고사는 일 해낸답시고

책상머리 일에만 매달려 있다가

오늘은 간만에 바깥일이 많았다.


밭일을 조금 했고,

김매는 김에 슬렁슬렁 뽑아낸

왕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갔고,

취나물 뜯고 씻고 데쳐서 널기도 했고,

산에서 만난 산야초로 효소도 만들었다.  


딱 이맘때 자연이 주는 선물들과

애써 만나고 몸 부대끼며  

그렇게 하루해가 흘렀다.


텃밭에서 저절로 자란 왕고들빼기. 김매는 김에 슬렁슬렁 같이 뽑아서 김치를 만들었다.
향긋한 취나물. 저 이파리들을 데치고 말리면 묵취나물이 된다.


봄을 앞둔 어느 날, 어느 늦은 밤

어느 글 하나를 문득 바라보다가

그만 펑펑 울어 버린 적이 있다. 


이현주 목사님이 쓴 

<사랑 아닌 것이 없다>에 나온 이 글.


“누구한테 쓰임을 받으려고,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안달하지 말게. 창 밖에 내리는 비한테 물어보라고. 너는 지금 누구한테 무슨 쓸모가 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냐고. 부디 자네한테 지금 있는 것으로 오늘 하루만 사시게. 지금 자네가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히 재미있게 살 수 있어. 그렇게 날마다 그날 하루만 살게나.” _<사랑 아닌 것이 없다>에서


밭에서 산에서 꾸역꾸역 몸 부린, 

오늘 하루가 내게 준 것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조금도 울지 않고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저 글을 되새겨 본다. 


어느 날, 어는 늦은 밤 나를 펑펑 울게 했던 책.


팔다리, 허리가 간만에 놀랐는지 슬금슬금 쑤시는데,

이모저모로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들이켜면 딱 좋을 밤인데 

우짠다냐, 맥주가 똑 떨어졌다. 

(가게가 하염없이 멀기만 한 산골살이의 비애ㅠㅜ)


별수 있나. 

지난해 담가 둔 매실주에라도 

얼음 동동 띄워 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도 내일 하루도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넉넉히 재미나게 살 수 있기를 

시원하고 알딸딸하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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