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맛집 네팔 포카라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회사를 꾸준히 오래 다녔다고 처음으로 '장기근속휴가'라는 걸 받게 되었다. 눈치 보는 거 없이 무려 2주간 휴가를 쓸 수 있는 기회. 신혼여행을 위한 휴가 외엔 다시 없을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다. 이 기회를 헛되게 쓸 수 없으니, 어디를 가야 할까, 어디를 다녀와야 아깝지 않을까, 참 많이도 고민했었다. 그렇게 장고 끝에 아내와 결정한 휴가지는 네팔 포카라였다.
히말라야 트래킹은 오래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는 가장 대중적인 코스도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리다 보니, 짧은 휴가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늘 그렇듯이 시간이 많았던 학창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문제였고, 회사를 다니며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을 때는 시간이 없어 문제였다. 그러니 2주 간의 휴가를 마음껏 다녀올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여유 있는 일정으로 히말라야 트래킹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또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매년 불어나는 뱃살을 보고 있자니 더 나이 들면 가보고 싶어도 못 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갈수록 살이 찌고 체력은 약해져가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한 번 가보자' 하는 마음도 컸다. 다행히 아내는 내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그렇게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항공기 지연으로 시작부터 일정이 꼬이고, 난생처음 타보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에서 솜뭉치로 귀를 막아가며 원치 않았던 스릴도 느끼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여행자들의 낙원이자 트래킹의 성지인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멋진 도시였다. 특히 포카라에서 처음 맞이했던 병풍처럼 드리워진 히말라야 산맥과, 그 위로 해가 떠오르던 고요한 아침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비현실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액티비티와 저렴한 물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까지.. 뭐 하나 부족할 게 없었다. 매연과 소음으로 정신없었던 카트만두와 너무 대비되는, 말 그대로 지상 낙원이었다.
지금은 또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포카라의 음식값은 매우 저렴했었는데,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 같은 음식은 한 끼에 천 원도 안 했으니, 잘 챙겨 먹는다고 해도 외식비가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특히 외국 나가서 한식당을 찾게 되면 음식 수준에 비해 국내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기 일쑤였는데, 포카라는 오히려 우리나라 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김치찌개 같은 한식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한식러버인 아내를 위해 괜찮은 한식당들도 여러 곳 추천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오래 일하셨던 네팔 사장님이 한국인보다 더 맛있게 하신다는 닭볶음탕 집이라던지, 한인 게스트 하우스의 자극적인 제육볶음이라던지, 소주(소주는 바싸고 귀했다)를 네팔 보드카와 섞어 마시는 대학가 주점 느낌의 술집이라던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렇게 물가가 저렴하고, 먹고사는데 큰 부담이 없다 보니, 당시 포카라에는 장기간 머물고 있던 한국인 여행객들도 많았다. 첫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아저씨 한 분은 몇 달간 머무는 중이시라고 했는데, 식사를 마치자마자 평상에 드러누워 쌓아 놓은 만화책을 집어드는 모습이 한량 그 자체였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곳까지 와서, 원래 살던 세상으로부터 숨어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 했다. 그렇게 사연이 궁금했던 또 다른 분들은 지금까지 외국에서 만났던 한식당 중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기억되는 <보물섬>의 사장님 내외였다.
현저히 떨어진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겨우겨우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보상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다녔는데, 그중에 한 곳이 포카라의 유명했던 한식당 <보물섬>이었다. 단순히 오랜만에 한식을 먹을 생각에 들떠있던 우리는 가게에 들어서고 깜짝 놀랐는데, 갑자기 공간 이동을 해서 네팔이 아니라 어디 대학로나 홍대에 있는 트렌디한 술집이나 카페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물섬>은 태극기나 한복, 부채 등이 걸려있는 '한국식당'이 아니라, 인테리어 느낌마저 홍대스러운 진짜 한식당이었다. 범상치 않은 외모의 사장님 내외분은 원래 공연을 하시던 분들로 기억하는데, 바람처럼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시다 잠깐 포카라에 자리를 잡고 살고 계신다고 했다. 직접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시고, 너무도 친절하게 맞아주시다 보니, 이름 그대로 세상 끝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섬>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사장님이 서비스로 내어주신 반찬이 '갓김치'였다.
"한국에서 어제 도착한 갓김치예요, 한 번 드셔보세요"
한식이라고 해도, 김치찌개나 삼겹살 같은 거나 먹을 줄 알았지, 포카라에서 갓김치를 먹게 될 거라곤 상상도도 못했다. 포카라에서 먹은 음식들이 대체로 다 맛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딘가 느끼하고, 게슴츠레한 느낌들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먹게 된 갓김치는 너무 개운하고, 상큼하게 맛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갓김치를 먹으며,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부부의 공연을 보고 있자니, 현실로부터 한참을 떠나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전화도 잘 안 터지는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세상의 지붕을 보려고 한참을 걸었던 것도, 당시에는 그렇게나 현실로부터 멀찍이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아직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다', '내 안에는 여전히 다른 삶을 동경하는 무언가가 남아있다'와 같은 생각들을 증빙하고 싶고,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원하던, 나의 세상으로부터 한참을 떠나 온 것 같은 거리감을, 트래킹 코스가 아닌 <보물섬>이라는 어느 한식당에서 갓김치를 먹으며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만족스럽게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포카라 마지막 날이었던 그다음 날도 <보물섬>을 찾았다. 하지만 가게 문이 닫혀 있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대안으로 찾았던 다른 한식당에서 사장님 내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집에서 포카라에 살고 계시는 한인 사장님들의 일종의 '번개'가 벌어졌던 것. 동석을 하진 않았지만,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 한인들 모임 옆자리에서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반찬으로 갓김치를 만날 때면, 포카라에서의 기억과 그때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언젠가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싶었던 동경의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때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내 나이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거치며 나는 그들처럼 현실을 드라마틱하게 전환시켜가며 살아가기보다는 그냥저냥 상식적인 선택을 하며 '일반적인 삶'의 모습에 더 가까워져 가는 선택들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냥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당시 사람들에 대한 기억에도 뭔가 다른 느낌의 필터가 덧씌워지는 것 같다. 외롭진 않았는지, 불안하지는 않았는지, 선택이 두렵진 않았는지,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는지.. 이따금 그런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특히 '당시에는 나보다 선배들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 정도 되었겠네'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도 지금 모든 걸 훌쩍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떠나게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나?' 같은 깊은 질문들을 마주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마냥 별천지 같았던 그들의 삶도 결코 쉽지 않았겠다, 남모를 고충들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