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re Aug 27. 2022

여름날의 장어구이

뇌리에 남은 첫 맛, 첫 기억

비가 내리는 날, 운전을 하다 보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난다.

계절은 좀 여름이어야 하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보다는 좀 시원하게 내려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장어구이 먹으러 가야 하는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실, 여름날 비 오는 날씨와 장어구이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음식이다.

여름이라고 장어가 특히 더 맛있는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날 생선을 먹는다는 건 자칫 비릿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뭐, 경우에 따라서는 여름날에 즐겨 찾는 보양식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내 경우에 비 오는 날 장어구이가 생각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세한 기억은 이제 희미해져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순간적인 장면과 느낌들이 드문드문 사진처럼 남아있다. 아마도 처음 장어구이를 먹으러 갔던 날이었던 것 같다. 비 오는 여름날, 아버지는 운전 중이셨고, 우리 가족은 뭔가 나들이 같은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대청댐 근처에 장어구이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가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차를 타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계절은 푸릇푸릇한 여름이었고, 비가 내려 공기는 상쾌하고, 시원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식을 먹으러 나선 길이었지만, 그날의 푸르고 상쾌한 기분이 마냥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차를 타고 달려 숲 속에 위치한 산장 또는 'OO가든'이라고 불릴 법한 식당에 도착했다. 불판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검붉은 양념을 칠한 장어가 올려졌고, 그렇게 처음으로 장어구이의 맛을 보게 되었다. 유난히 기름지고 달콤한 걸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로서는 그야말로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 때문에, 그 이 후로 장어구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외식 메뉴 중에 하나가 되었다. 비싸고 맛있는 거 사주신다면, 언제나 장어구이를 제안했고, 군대에 가있는 동안에는 휴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장어구이를 사주시곤 하였다.


지금은 예전처럼 장어구이를 자주 먹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같이 사는 와이프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이다 보니, 굳이 찾아서 먹으러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임진강에 맛있는 집이 있대, 고창에 가면 정말 맛있는 장어를 먹을 수 있대, 이야기하곤 하지만 정작 찾아가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비 오는 여름날 뭔가 푸릇푸릇한 곳을 지나 운전을 하고 있자면, 운전하시는 아버지 옆에 타서 새로운 걸 먹으러 가던 그날의 설렘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은 비오는 여름날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으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장어구이를 먹으러 나섰다. 임진강 근처에 사는데, 유명한 장어구이집 한 번 가봐야하지 않겠냐며 나선 길은 와이프에게 인생 장어맛을 선사했고, 나에게는 인생 메기매운탕의 기억을 남겨주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물날 거 같은, 사연 많아 보이는 눈부신 늦여름의 하늘 속에서, 장어와 얽힌 한가득의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고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전재산 스테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