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창극
아주 오랜만에 공연을 보러 갔다.
사실은 예매를 해놓고도 취소를 할까 말까, 자꾸 망서렸다.
우선 밤 외출이 싫어진 것이다.
전에는 집안 일 얼추 해놓고 살짝 어두워지는 시간에 집을 나서면 그렇게 마음이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깜깜함이 싫다. 추위도 싫고, 늦은 밤 지하철 타는것도 귀찮고,
그래서 먼 거리는 아예 안 가는데 국립 극장은 그런대로 갈만하다.
3호선을 타고 동국대 역에서 내리면 셔틀도 있고,
무엇보다 나는 국립 극장의 마당이 좋다.
둥그런 마당, 사실 둥글지는 않지만 하여간 둥근 테를 해놓아서 둥글다는 느낌이 강하다.
도시에 갇혀 사니 별도 잘 안 보이고 하늘도 건물 사이로 아주 좁은 하늘만 보고 살게 되는데
극장을 등 뒤에 두고 서면 제법 하늘이 넓다.
광활한 하늘이 보인다.
이러다가는 이제 정말 공연도 안다니는 사람이 되겠네. 싶어서 용기를 냈다.
창극으로 경극인 패왕별희를 공연하는데
경극도 잘 모르고 창극도 잘 모르지만 그 둘의 화합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와 가끔 손을 잡고 극장엘 가서 여성 국극을 보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 하나가 있는데
엷은 레이스가 쳐진 방안, 그곳에서 나온 남자가 바지를 추켜 입었다.
아니 왜 화장실도 아닌데 바지를 벗었을까?
어린 아이는 그 일이 무척 궁금햇는지 지금도 그 대목을 기억하고 있다.
굳이 이론을 첨부해본다면 성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하긴 이런 상상이 정말 팩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기억이란 존재가 스스로 각색을 아주 잘하는 스토리텔러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몇 년 전 재개봉한 영화 패왕별희를 보면서 경극의 매력을 담뿍 느꼈었다.
아쟁소리 같은 이상한 노래와 가면 같은 분장과 짙은 화장,
거기다 항우는 얼마나 씩씩하고 박진감 넘치던지
그러면서도 경극을 흐르고 있는 아련한 서정,
<인간의 삶은 무상하여 봄날의 꿈과 같고>
경극을 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하는지,
경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경극을 사랑하는지,
무엇보다 경극은 아주 서정적이었다.
패왕별희를 다 외우고 있던 원대인은 항우의 역할을 하며
눈물 짓는 우희의 볼을 만지며 말한다.
<한 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 번 흐느끼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니>
경국은 특이한 분장부터 깃발의 개수, 배우의 걸음걸이, 손끝의 미세한 떨림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 예술이라고 한다. 시각적이면서도 고도로 양식화 되어 있는 극이다.
경극은 은유와 상징이 많아 원래 귀족들의 극이었다고 한다.
패왕별희에서 원대인 역시 경극을 사랑하는 인텔리겐챠였는데
실제로 항우의 걸음이 일곱 걸음인데 다섯 걸음을 걸었다고 지적을 한다.
판소리의 창은 양식보다는 연기하는(노래하는)사람의 자유로움이 극대화 되어 있는 장르이다.
경극이 시각적이라면 국악기의 합주로 이루어지는 창극은 청각적이다.
2막 7장의 극 양쪽 화면에는 제목과 대사가 나와 이해를 돕는다.
창극의 해설자면서 관람자 예언자의 역할도 하는 맹인 노파의 절절한 창ㅡ 권력과 욕망 그리고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통찰과 전쟁에 대한 무상함을 담은 서사ㅡ으로 패왕별희는 시작된다.
항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어린이가 말 한마디 없이 뿜어내는 연극적 아우라가 있었다.
우희역을 맡은 김준수의 요염한 몸짓과 손의 연기, 고난도의 검무도 볼만했다.
패왕이면서 결국 그 생을 자살로 마감한 항우,
그러면서도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한 항우역의 정보권도 많이 연습하고 애쓴 모습 때문에
항우에 어울렸다.
말을 작은 막대기로 형상화한 것도 연극적으로 보여 괜찮았다.
글을 쓰면서 반추해보니 많은 미덕이 있었는데 왜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이천년 전 고대 중국의 세계가 너무 멀었던 것일까?
다양한 스토리를 담았던 영화 패왕별희를 통째 패왕별희로 인식한 탓일까,
서로 다른 장르가 결합될 때 오는 일종의 괴리감을 선명히 느낀 탓이었을까,
담대하고 우직한 거짓을 모르는 항우의 성정과
알고 거침없이 자결하는 것 때문에 제왕의 면모를 지녔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제왕다운 격일까,
그것도 궁금하긴 하다. 왜 항우는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올 때
아 우리 초가 승리를 해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구나. 생각하지 않고
우리 초가 모두 항복을 햇꾸나 생각한걸가,
중국에서는 항복하면 자신의 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국립극장 셔틀벼스의 기사님은 친절해서 인사도 너무 잘하고 그 짧은 시간에
농담도 몇 마디 했다.
돌아오는길 버스에 타니 숭객들에게 묻는다.
오늘 패왕별희 좋으셨습니까?
내가 듣기로는 사람들의 대답이 시원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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