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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Dec 07. 2019

행동주의 심리학과 디자인 2/2

서비스 디자인

몇년 전 '수박 바 문제' 라는 재미있는 사회 현상이 퍼진 적이 있다. 수박바는 삼각형의 수박색으로 된 아이스크림인데 수박 내용물을 먹은 후 껍데기 부분을 마지막으로 먹게 되어 있다. 특히 껍데기 부분이 맛이 있 제작 회사에 이 부분의 양을 더 늘려달라는 문의가 쇄도했고, 결국 회사는 전격적으로 '거꾸로 수박바'라는 이름으로 껍데기가 더 큰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짜잔~

https://news.v.daum.net/v/20170712010151335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오죽하면 출시 직후 제작사가 인터뷰에서 "바뀐 건 하나도 없어요, 빨간 부분은 메론맛, 초록 부분은 딸기맛" 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기존 수박바에서 색소만 바뀐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래 제품에서도 (사람들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던) 초록 부분은 딸기맛이었고 거꾸로 수박바에서 이 부분을 키운 것인데, 워낙 기대에 못 미치다보니 오리지널에다 색깔만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나보다.


막상 쟁취하고 나면 기대만큼 못한 것이 인생에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한 언론사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을 심리학, 특히 카네만의 "초점 오류"에서 설명을 찾았다. 초점 오류란 한 마디로 "지금 삶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다"이다. 카네만은 날씨를 예로 들었는데 프린스턴 지역의 춥고 우울한 날씨에 있는 사람들과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비교해본다 치자. 상상만으로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데에는 프린스턴 사람이든 캘리포니아 사람이든 이의가 없다. 그러나 막상 거주자들의 행복한 정도를 따져보면 그리 큰 차이가 없고 어떨 때는 그 순위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유는 바로 날씨를 행복의 척도와 연관시키는 순간 그것이 행복에 주는 영향을 과대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소개된 국내 연구 사례는 서울과 춘천 거주자의 행복도 차이인데, 역시 예측할 때에는 서울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나온 반면 실제 거주자들의 행복도는 오히려 춘천이 더 높게 나왔다. 기자는 더 나아가 "그래, 명문대를 간 사람을 보더라도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저평가 한다." 라면서 안분지족의 삶을 강조하였다.


필자의 (진심으로) 일천한 심리학에 대한 의견은, 그 이론이 많은 만큼 적용에 조심스러워야 한다. 즉,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파악하는 데에는 카네만의  끝간 데 없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자기 검열에 있어서는 츠베르스키의 가혹한 냉철함이 필요하다. 초점 오류를 적용했을 때 수박바 사례에서 과장된 것은 "빨간 부분의 맛"이 아니라 "맛있는 부분의 크기가 전체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다시 말해 거꾸로 수박바가 맛이 별로 없었던 이유는 "빨간 부분이 생각보다 초록색 부분만큼 맛있다"가 아니라, 초록 부분이 더 맛있다는 변치 않는 가정 하에 "무언가 다른 이유에서 더 맛있는 부분이 더 커져도 행복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이 가능성이 매우 낮아보이는 건 사실이다. 도대체 더 좋은 걸 더 많이 준다는 데에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로 다시 카네만의 이론을 하나 소개한다. 다음 사진은 대장 내시경을 하는 중에 경험하는 고통의 시간별 변화이다. 연구자들은 두 가지 처치를 하였는데 한 그룹에게는 내시경이 끝나자마자 바로 종료하였다. 매우 응당한 처치로 보이며 그래프를 보면 종료와 동시에 상당한 고통이 즉시 0에 다다른다. 다른 그룹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내시경이 끝난 후에도 서서히 종료하였다. 그래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고통의 감소가 훨씬 더 완만하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한데 (1)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의 고통의 총량이 더 큰가와 (2) 만일 두 가지 처치를 받은 사람이 또 한번의 처치를 위해 방법을 고른다면 과연 어떤 처치를 선택하겠냐이다. (1)의 답은 당연히 두번째 처치이다. 문제는 (2)이다. 사람들은 고통의 총량이 큼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처치를 받기를 더 원했다. 카네만이 여기서 발견한 것은, 사람들의 기억은 "총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점"과 "마지막" 경험의 평균값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기억은 지속 시간은 거의 문제삼지 않으며 peak 그리고 end가 어땠냐에 훨씬 더 좌우된다 (peak-end rule). 참으로 놀라운 사실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여러 다양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된다. 대장 내시경이 아니라 차가운 물로 고통을 겪게 하였을 때, 휴가 여행의 즐거움을 판단하게 하였을 때, 생쥐에게 고통과 쾌락을 주었을 때 모두, 어떤 경험의 기억은 자극의 지속도보다 세기에 크게 좌우되었다. (생쥐의 예는 우리가 이렇게 기억을 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 p510


일상생활에서 한 번 그 예를 살펴보자. 한 커플이 이혼으로 그 관계가 마감되었다고 할 때 그 경험은 결혼 생활 전반의 만족도를 압도한다. 행복한 기간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상관없다. (이런 저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이혼한 연예인의 과거사가 참으로 잔인할만치 자주 언급된다) 얼마 전에는 과연 어떤 사람의 생애를 두고 독립투사인가 아니면 일제의 앞잡이인가를 판단하는 논쟁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머리에 번쩍 떠오른 것은 인생의 90%를 투사로 살았어도 끝에 변절했다면 변절자이지만, 인생의 90%를 앞잡이로 살았어도 끝에 회심했다면 그는 투사로 기억된다는 (참으로 불편한) 깨달음이다. 훈련소의 추억도 생각난다. 아무리 개** 같은 조교라 할지라도 퇴소할 때 살짝 감동적 연설 하나로 갑자기 "사회에 나가서 마주치기만 해봐라"가 "역시 나쁜 인간은 아니었어"로 돌변한다. 개인적으로는 알 길이 없지만, 임산부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잊어버린다고 한다. 디즈니 영화들은 hook-hold-climax-payoff라는 절대적인 스토리 공식을 가진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마지막이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헤어질 때의 조그마한 성의는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수박바의 문제로 한번 돌아가보자. peak-end rule과 지속시간 무시 법칙에 의하면 수박바와 거꾸로 수박바의 기억은 확연히 다르다. 마지막에 느끼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초록색 부분의 맛이 더 좋다고 가정하면, 빨간색으로 시작해서 초록색으로 마무리 되는 수박바의 기억은 초록색 부분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초록색이 더 맛있고 (peak) 또한 마지막 맛이기도 해서 (end) 그 평균값은 초록색 맛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거꾸로 수박바는 초록색 (peak) 으로 시작해서 빨간색 (end) 으로 마무리되는데, 기억하는 맛은 이의 평균인 (초록색+빨간색)/2 이다. 다시 말해, 심심하게 시작하다가 멋진 클라이막스로 끝나는 곡과, 시종일관 쾅쾅대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곡을 들었을 때의 차이이다. 인간의 만족도가 이렇게 칼같이 정량화가 가능할까 의문이 들긴 하는데, 어쨌든 거꾸로 수박바의 실패는 한 증거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맞는지 알기 위해선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 하릴없이 빵빠레라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 상큼한 샤베트의 양을 늘렸을 때, 혹은 크림 부분보다 먼저 맛보게 했을 때 과연 지금처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혹시 그냥 많이 먹으면 물리게 되는 그런 맛이 있는건가?




디자인 학계에서의 한 트렌드는, 시간이 갈수록 그 대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떠오른 '사용자 인터페이스- UI'는 화면에 어떻게 컨트롤들을 나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이후 인터페이스는 단지 버튼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처한 환경을 포함하는 '상호작용-Interaction'의 문제가 되었으며, 이는 다시 한 번 사용자의 총체적 '경험-UX' 문제로 관점의 폭이 넓어졌다. 경험은 공급자의 측면의 설계까지 고려한 '서비스-Service' 문제로 확대되었는데, 요즈음은 복합적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 디자인-System'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https://interactiondesign.wordpress.com/2011/05/18/service-design-for-a-bank-keep-the-change/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많이 회자되는 사례를 하나 들자면 IDEO가 Bank Of America에 제공한 Keep the change가 있다. 지금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2000년대만 하더라도 design agency가 금융 회사에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것은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문제는 이렇다. 여러 은행은 고객의 저축을 위해 경쟁한다. 계좌를 여는 데에 수백불을 제공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개인 계좌는 주로 두 가지인데 체킹계좌와 저축계좌로서 체킹은 마음대로 넣고 빼 쓸 수 있는 반면 저축계좌는 그것이 더 까다로우나 이율이 더 높다. 그러니까 은행은 돈 장사를 위해 저축계좌의 돈이 필요하다. IDEO는 사람들의 지출 관리 방법을 관찰하다가 수표책의 영수증을 모아 정산할 때 센트 단위를 절상하여 비용으로 넣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13.32를 썼다면 $14 를 썼다고 기록하는 식이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저축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상품이 "Keeep the Change"인데, 사람들이 계산을 할 때 돈을 달러단위로 지불을 한 다음 남는 센트들을 자동으로 저축계좌에 넣어주고 또 저축한만큼 동일한 금액을 은행에서 매칭해주는 것이다. 가입도 쉽고 별다르게 할 것도 없고 꽁돈으로 저축에다 이자까지 얻는거라 이 서비스는 대박을 터뜨렸다. 필자는 이 상품에 관해 식료품가게 계산원에게 들었었는데 영어로 설명을 들으니 도통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그냥 "No"라고 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ㅠㅠ) 사용자의 자세한 관찰과 통찰에서 비롯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솔루션이 큰 임팩트를 남긴, 꽤 전형적인 디자인 성공 사례이다. 그런데 이 사례를 UX 가 아닌 서비스 디자인 사례로 분류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인다. 고객의 행태 뿐만 아니라 특정 산업의 관행을 포함한 보다 큰 그림 속의 sweetspot 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서비스 디자인의 큰 특징 두 가지는 "무형성"과 "공급 라인을 포함한 디자인"이다. 무형성은 이제는 디자이너에게 그리 낯설지 않지만 제품디자인과의 비교할 때 더 드라마틱해진다. 올해 필자과 공동 작업을 한 스웨덴 IKEA 디자이너는 "In the end everything is service, not product" 라는 기치 아래 회사가 사운을 걸고 체질개선을 하고 있다 하였다. (IKEA가 말이다!) 이에 반해 공급 라인의 설계는 디자이너에게 훨씬 낯설고 어려운데 서비스 디자인 자체가 경영학의 Operations Research 에서 시발된 개념이라 포함된 듯 싶다. 따라서 서비스 디자이너는 고객이 서비스를 체감하는 접점 - touchpoint - 뒤의 공급 라인의 조직 보다는 그 경계 자체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이는 디자이너의 툴킷에 잘 드러나는데, 아래 그림은 Customer Journey Map으로서 고객이 각 touchpoint마다 시간에 따라 어떠한 상황인지를 파악하여 디자이너가 여러 개선/기회 요소를 도출하도록 도와준다.


http://iristongwu.com/travel-mate/

  

위 그림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바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꺾은선 그래프이다. 각종 touchpoint에서 고객이 느끼는 만족도의 오르내림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시각화의 주된 목적은 특히 low point를 발견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내시경의 '고통' 꺾은선 그래프와 어떤 닮은 점이 보이지 않은지? 만일 카네만의 속삭임과 같이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가 다르다면, 그리고 추천과 재방문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서비스에 대한 '기억'이라면, 경험의 꺾은선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로 변한다. 디자이너는 긍정적 피크를 높이고 부정적 피크를 누그러뜨리는 데에 리소스를 집중해야하고, 지속 시간이 아닌 그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무엇보다 감동적인 클라이막스를 준비해야 한다. 사실 마케팅 연구 하나가 그 증거를 전화 응대 서비스에서 찾아보려 하였는데 고객과 전화를 끊을 때 ending을 더 인상깊게 했던 처치는 그닥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Okay, thanks, bye bye" 라는 상투적인 절차에 무언가를 더 넣으려는 것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나보다.


위의 제기된 문제는 손쉽게 보다 복합적인 질문으로 옮겨간다.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기대치는 최종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장기 기억 속에서도 peak-end rule은 성립할지, +와 - 의 만족도는 같은 패턴을 보이는지, 고객의 여러 감정 중 총체적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다른지, 개인별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 이런 면에서 이 사실은 많은 디자인 툴킷의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시킨다. 도구의 자유롭고 사용하기 쉬운 성질은 그 결과의 신빙성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터치포인트는 어떻게 정의되는지, 감정의 기복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시나리오는 얼마나 대표성을 가지는지 등의 질문은 리소스를 재분배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전체 디자인의 뿌리를 흔든다. '창의적' 솔루션에 도움이 안 되고, 연구자체가 어려워 상반된 결과가 이어질지라도 그 필요성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온갖 학제들이 이합집산하는 요즈음, 인류 지식의 새로운 breakthrough와 산업 수요의 변화는 빠르게 인접 학문으로 전파된다. peak-end rule은 행정학, 의학, 마케팅, 교육학, 관광학, 경제학에 적용되었고 서비스디자인은 마케팅, 경제학, 산업공학, 금융, 컴퓨터공학의 관심사가 되었다. 디자인의 과학적 연구는 이러한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검증된 이론을 도출해준다. 이들은 창조라는 망망대해의 디자이너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The objective of Service Design, Design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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