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커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S대학교의 가장 높은 곳이자 정문에서 가장 먼 곳까지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신랑 오** 군은 바로 이곳에서 자유전공학부를 마친 재원으로서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C사에서 기술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신부 어** 양은 디자인 명문 S대학을 졸업하고 Y대학교에서 디자인 석사를 마친 후 현재 H자동차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신부는 매해 스승의 날이면 찾아와 인사를 하던 정말 고맙고 특별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신부는 어느 날 미래를 기약한 사람이 생겼다고 저에게 주례를 부탁했고 신랑을 본 순간 정말 신부가 여생을 같이하고 싶은 멋진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 가정을 시작하는 모습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스승의 마음도 점차 부모의 그것을 닮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대학 연구실 11번째 결혼 커플이기도 합니다. 제 일생 최대의 업적은 단연 대한민국의 2세 탄생에 기여한 것입니다.
주례를 맡다보면 참 영광된 자리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자리임을 느낍니다. 결혼식에서 제일 재미없는 순서이기도 하고, 한창인 커플에게 산통깨는 이야기를 해야 하며, 무엇보다 결혼생활을 잘 알고 완벽하게 하고 있는 양 조언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 두 커플의 지혜로운 결혼 생활을 위해 두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서로를 향한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젊은 부부가 콩깍지가 서서히 떨어지면서 처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올라간 변기 뚜껑이나 뭉쳐진 양말, 가득 쌓인 설거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해해보려 하고, 설득도 했다가, 결국은 체념하고 맙니다. 아마도 그래서 중노년의 부부들이 '그냥 참고 살지'라고 하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다 큰 머리 굳은 어른들이 만나서 같이 산다는 것이 그렇게 어색한 것입니다. 저는 '구조된 입양견을 돌보는 마음'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구조된 개를 가족으로 맞이하려면, 신체적 정신적 아픔까지도 모두 보듬을 단단한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 관계를 살펴보니 그 비결은 성격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바로 존중하고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가짐이 바로 천국도, 지옥도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는 멀리 바라보는 눈입니다. 저는 테니스 경기를 보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정말 신기한 경험 중 하나는 포인트를 잃었을 때 극도로 화내는 선수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기한 이유는 결과가 너무나 당연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발이 느리거나, 자세가 높거나, 공의 속도가 차이가 나면 랠리가 지나면서 한 편이 점차 밀리게 되고 결국 예상대로 실수가 나오게 됩니다. 초고수들간의 경기는 다릅니다. 점수를 잃은 선수는 마지막까지 오기 전 몇 수 앞에서 다른 전략을 실행합니다. 물론 상대는 다시 그걸 예측하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모두 나로 인한 인과관계일 뿐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결혼생활의 만만찮은 어려움에 마주칠 때 혹시 더 큰 관계나 선택의 일부가 아닌지 살펴보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완벽한 이 커플도 본인들의 커리어 앞에 결혼이 커다란 기쁨이자 도전입니다. 저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이 커플에게 끝까지 버티고 성장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들이 행복한 가족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 많이 축하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