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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Sep 08. 2020

IMF 세대의 기억

IMF세대가 코로나 세대에게

얼마 전, TV에서 자동차 광고를 보게 되었다. 이 광고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X, Y, Z세대가 어떻게 한 가족으로 만나고, 소통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누가 봐도 예쁜 가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광고가 싫다. 

이유는, X세대나 Y세대 이전에 존재했던, 그리고 내가 속했던 IMF 세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IMF세대까지 포함하여 모두를 가리켜 X세대라고 통칭해서 말하지만, 엄연히 우리는 X세대와는 구분되는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세대이다. X세대나 지금의 Y, Z세대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를 대표하고 트랜드 또는 문화 세대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큰 재난이나 고통과 함께한 세대로 일컫는 말로서 그 결을 달리한다. 비근한 예로, 해방둥이, 625 전쟁세대, 그리고 베이비 붐 세대 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더욱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에서 IMF 세대는 이미 광고 타깃층을 벗어난 세대가 되어버렸다. 현재 50 전후로부터 40대 후반(1969-77년)에 이르는 IMF 세대는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시기에도 주체적인 세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마치 언급되면 안 될 것 같은 잊혀진 세대일 뿐이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나에게 있어 IMF의 첫 기억은 늦은 대학 생활을 마치고 취업한 첫 직장생활 일주일만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현상에 회사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포스코라는 거대한 기업과 일하고 있던 나의 첫 직장은 상당한 금액의 어음을 일한 대가로 받았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어음을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사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인 현상을 벌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어음을 들고 은행에 간 그는 어두운 현실의 벽에 직면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회사의 어음이 10% 깡이 말이 되냐? 대체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평소 2~3% 할인을 해주던 포스코 어음이 IMF 이틀 만에 10% 할인율을 적용한다는 말에 그는 어음을 다시 들고 돌아왔다. 사장은 돌아오자마자 신문을 펼쳐놓고 국가를 상대로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일을 이 일로 고민하는 사장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찾아온 IMF 시기를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하게 되었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2년이란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그때는 경력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에 집에서 용돈을 받아 가면서 직장을 다녔다. 그사이 나는 한국의 모든 산업과 시스템이 붕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IMF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듯한 현상들을 보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IMF는 대한민국의 모든 기존 질서를 무너트린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우리 세대는 이 모든 기존 질서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 평생 고용에서 임시직 고용 형태로의 변화, 그리고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정부마저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존재임을 경험했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크게 다가왔던 개념의 변화는 전통적인 가정이란 개념의 변화였다. 1인 가정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었고, 더 나가서는 3무(연애, 결혼, 출산)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나 또한 이러한 유행에 발맞춰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또한 우리는 무언가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력서에 자신의 본적을 적어야만 했던 세대였고, 나이 제한이 있었던 세대였다. IMF 직후까지 공기업과 대기업이 신입을 뽑을 때 만 30이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을 나이로 배제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베이비 붐의 마지막 세대였다.     


사회적으로 더욱 경고해진 것도 많다. 

빈부의 차이는 더욱 또렷해졌다. 폐허가 된 한국 경제 속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그들의 부를 더욱 견고하게 쌓을 수 있었다. IMF가 시작된 근본 원인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역량보다 몇 배 많은 돈을 빌리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문제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기업들은 IMF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원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대한 이익이 남는 사업 위주로 기업을 확장해 갔다. IMF 초창기에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뚜렷해져서 거의 모든 회사에서는 인원을 뽑지 않거나 감축하기 시작했다. 일부 소수의 인원만이 이 아수라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에 다수의 인원은 생존을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세대의 빈부 차이만큼이나 같은 세대 간에도 빈부의 차와 사회적 지위의 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세대이다.      

이와 같은 IMF 세대의 한가지 예로, 대략 10년 전에 우연히 보았던 어느 신문의 신년 특별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IMF 이후 15년, 각 세대의 모습’과 비슷한 제목의 특별 기획 기사였을 것이다. IMF를 거쳐 간 6.25이후 ‘베이비 붐‘ 세대와 ’삼포세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각 세대를 대표하는 평균적인 삶의 궤적을 좇는 기획 기사로 기억된다.   

  

그중에서도 나와 같은 IMF 세대를 몸소 체험한 한 남성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의 삶은 내가 살아온 삶과 비슷한 모습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의 살아온 이력은, 전문대 졸업 후 2년간 무직, 간신히 얻은 첫 정규직 직장은 얼마 후 폐업하게 된다. 그 후, 계속되는 경제 위기마다 이어지는 이직이 그의 모든 이력이었다. 10년 전의 기사였지만 그의 모습에서 우리 세대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 당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삶이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 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최근에 이분이 운영하던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다.) 

http://blog.daum.net/jjooni73/3240     


기억을 더듬어 보면 IMF라는 국가적인 재난에 대한 기록들은 우리에게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석과 분석이 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로 전달되었다. 때로는 뉴스로 소설로 그리고 영화로.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우리 세대의 각 개인의 삶과 기억을 담은 글이나 매체는 그 어느 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이유는 그 삶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처음 말한 광고처럼 IMF 세대의 삶을 담아 보여주기에는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기록들을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우리와 같은 아픈 세대가 존재했다는 것과 못난 개인의 역사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래서 이곳에 한 페이지를 빌리고자 한다. 그냥 잊혀지는 세대가 아닌 먼저 아팠던 세대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코로나 세대(?)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한 그루의 나무가 숲 전체를 대변할 수 없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과 현재의 삶이 우리 세대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모습을 통해 그리고 나의 단편적인 과거를 통해 우리가 살아온 기록들을 스스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대문에 걸린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봄' 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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