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소 Sep 13. 2020

나도 꼰대일까?

내가 느낀 꼰대에 관한 보고서

‘꼰대’란 단어를 처음 듣게 된 건 15년이 조금 넘은 어느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드라마에서 대화를 주고받던 고등학생들이 선생님들을 가리켜 ‘꼰대’라고 지칭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어휴, 학주, 그 꼰대 너무한 거 아냐?”     


“그러게, 오늘은 뭐 때문에 교복 단속한다고 난리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 정도의 대화였던 걸로 생각된다.

신조어들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라 나는 TV 속 학생들의 대화를 별생각 없이 듣고 지나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실제 이 ‘꼰대’라는 단어가 실생활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꼰대 새끼”, “병신 꼰대”, “꼰대 짓” 등이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누군가를 비꼬는 말처럼 들리긴 했지만, 누구를 특정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랜 기간 다녔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가르쳐 보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나에겐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시키는 건 뭐든 해야 한다’라는 나름의 사명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를 내 기준에 놓고 가르치려고 했다. 어린 학생들부터 나이 어린 신입 교사들까지 나의 가르침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신입 교사일 때는 늦는 법이 없었다. 새벽 6시에 나와서 1부 예배 성가대하고, 주일학교 교사들 준비물 모두 파악해서 준비하고, 점심때는...”     


마치 주일마다 예배 시간에 외우는 ‘사도신경‘처럼 나는 게으른 교사나 어린 교사들을 상대로 열심히 나의 과거를 읊조렸다. 교회에서 선배 대우를 받고 있던 나에게 그 아이들은 아무런 대꾸도, 불만도 표현하지 못했다. 다만, “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일찍 나오겠습니다.”처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만을 나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고 나서야 어설픈 가르침이 끝났다.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실천을... 다음 주에 지켜보겠어.”   

  

그날도 나는 어린 교사들을 상대로 선배의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오랜 친구가 나를 향해 한마디 끼어들었다.      


“너 너무 꼰대 짓 하는 거 아냐?”     


“응? 꼰대? 그게 뭔데?”     


“몰라? 꼰대가 뭔지 모른다고?”     


유행에 민감하지 않던 나로서는 지금 많이 쓰이는 단어가 뭐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이것이 나를 향한다는 것에 조금은 묘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아마도 그 단어가 나타내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꼰대에게 꼰대 짓을 당하기 전까지는...




내가 꼰대들을 접했던 첫 기억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였다.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선배임을 몸소 가르치려 노력하는 분들이 많았다.      


“학교는 어디? 응... 실무 경험은 없겠네! 

그래 내가 잘 가르쳐 줄 테니까 나만 따라오면 돼.”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 가르침‘이란 자신의 업무를 대신하라는 것이었다. 일을 진행하고 경험을 쌓을수록 그들의 갑질과 책임 전가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꼰대 짓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있는 회사든, 조직이든 몇 명쯤은 존재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경험이 모든 업무의 기준이 되었고, 그들이 지금까지 처리했던 방식들이 최후의 해결 방안이었다. 이것은 회사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내 주변에 있는 꼰대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에 무한한 신뢰를 갖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의 기억들이 미래의 성공에도 적용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둘째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에겐 어떠한 피해도 없어야 한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이 말끝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네가 책임질 거야? “ 


이것은 자신이 책임지지 않겠다는 항변이면서도 그들이 갖는 힘을 보여주는 말이다. 

[내가 책임지지도 않겠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책임을 너에게 전가할 수 있는 힘이 있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말을 들은 후배나 직원들은 더는 반문하거나 의견을 이야기할 힘도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잘못된 사회적 관습과 그들의 기준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자의 마초적인 특성을 강조할 때 그러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짜슥, 남자네.], [남자가 밖에서 일하다 보면 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자들(여자들)이 이런 일들을 하겠냐?]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도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을 많이 봐왔다. 어느 정도 힘을 갖는 직급에 있는 그들은 자신의 말이 법과 같이 지켜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거나 자신이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그들의 태도는 너무도 급격하게 변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희생양을 찾기 시작한다.      


몇 년 전, 나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과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사업이 무산된 것에 대해 나는 너무도 다행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는 프로젝트 시작 전에 상견례 및 전체적인 방향성을 잡기 위한 첫 번째 미팅을 갖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미팅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 있을 한국의 대기업과 어떻게 소통하고 일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았던 나이 지긋한 임원(나중에 듣기로는 정년퇴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임원으로 알려졌다)은 미국 현지의 사정과는 너무도 다른 요청을 회의 시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는 회사의 명운이 걸린 매우 특별한 사업입니다. 미국에 생산공장을 처음으로 만드는 사업으로 얼마나 빨리 공장을 만들고 가동하느냐에 따라 첫 사업의 성패가 갈립니다. 따라서 여기 계신 한국인 기술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엔지니어분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     


한국 같으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통역이 프로젝트 매니저의 말을 미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동안 나는 유심히 미국 엔지니어들과 매니저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모두들 이러한 분위기를 알고 와서인지, 아니면 한국 기업의 일을 받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서 작은 표정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만족스럽게 회의를 마친 임원의 기대와는 달리, 그곳에 있던 어떤 미국인도 추수감사절 기간에 현장에 나와 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했던 한국인 기술자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모든 것들이 들어서 좋을 이야기들이 없다.  

    

다만, 이후에 나타난 프로젝트 매니저의 태도에서 한국인 아재들이 가지고 있는 꼰대 근성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말이 통하는 한국인들만을 상대로 자신의 불만과 회사가 줄 수 있는 불이익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미국 지역사회의 요청과 대기업의 내부 방침에 따라 함께하기로 했던 많은 한국인 기업들은 최종 계약에서 떨어져 나갔고,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이 그 빈자리들을 채웠다. 결국, 현지 사정을 잘 몰랐던 그 한국 대기업은 현지 미국인 기업들에게 엄청난 돈을 뜯겨야만 했다. 지금도 미국 현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꼰대’라는 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안에서 유지해왔던 남자들의 마초이즘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본다. 군대를 경험해야 하는 특수한 환경과 경쟁 사회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남자들 간의 암묵적인 규칙, 그리고 나이를 먹고 오랜 기간 경쟁 사회에서 살아온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특히나 왕년에 잘 나가던 사람들이 힘을 잃고 사회에서 밀려날 때 보이는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회에서 언제나 ‘을’의 입장에만 있었던 나로서는 이러한 꼰대들의 모습이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물리적인 나이가 차고, 사회에서 중년이란 영역 안에 들어온 이 시점에 나도 그들처럼 사회적 ‘꼰대’가 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젊은 친구들의 모습에 가끔은 혀를 차기도 하고, 무책임한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의 과거를 다시 기억해보고, 혼자서 ‘나 때는 말이지...”를 중얼거리는 모습에 가끔은 놀라기도 한다.      


요즘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하는 나만의 소원이 있다면, 젊게 늙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실현해 가면서 그 즐거움들을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누구 가는 말한다, 이 시대엔 어른도 스승도 없다고...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시대는 어른도 스승도 아닌 한 발 앞선 동료가 필요하다고...




[대문에 걸린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여름'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작가의 이전글 IMF 세대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