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bag for urban cyclists - Hövding
ㅣ 들어가며 ㅣ
<북유럽 디자이너 토크>는 다양한 분야의 북유럽 디자이너들과 직접 마주 앉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토크 세션입니다. 북유럽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비롯한 패션, 건축, 뮤지엄, 놀이터, 카페,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북유럽이 선진 복지국가의 이미지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의 나라’ 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침 출근길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자전거 행렬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각 도시의 중앙역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 주차된 자전거의 수를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그만큼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와 각종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자전거에 대해 전문가인 북유럽에서 참신한 (혹은 신기한) 제품을 보게 되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목에 무언가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스카프 같기도 하고 목도리 같기도 한.. 알고 보니 바로 헬브딩 (Hövding)이라는 스웨덴 브랜드에서 내놓은 자전거 에어백 (Bicycle air bag)이었다. 전세계 어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제품이었기에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번 토크는 여러 차례의 이메일과 전화가 오간 뒤에 수 개월만에 성사되었다.
헬브딩의 본사는 스웨덴 남부도시 말뫼(Malmö)에 위치하고 있다. 오피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돌아나올 뻔했다. 첨단 테크 기업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너무나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분위기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알고 보니 원래는 초콜릿 공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리모델링해 오피스로 쓰고 있었다.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토크 세션에 온 것을 환영한다. 브랜드와 각자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반갑다. 헬브딩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안나 카타리나 라고 한다. 2015년 입사해 지금까지 헬 베딩의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명인 헬브딩(Hövding)은 리더 (leader)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자전거 에어백’으로 시장을 리드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70,000 개 이상이 판매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곧 아시아 지역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자전거 에어백은 생소하다. 처음 개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2005년 스웨덴 남부의 룬드 대학 (Lund university),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던 안나 할프트(Anna Haupt)와 테레스 알스틴(Terese Alstin)은 자전거 안전에 대한 석사논문 쓰다가 지금의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다. '미래의 헬멧(helmet of the future)'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과제를 통해 탄생한 것이 지금의 헬브딩이다.
자전거 탑승자의 목을 보호하는 에어백 형태의 헬멧도 제작된 이 제품은 이후 약 7년간의 연구개발 기간을 거쳐 2011년 첫 제품을 론칭하게 된다. 에어백에 내장된 센서는 일상적인 자전거의 움직임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움직임 차이를 구별하여 에어백을 컨트롤하게 된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에어백이 0.1초 안에 펴지며 주행자의 머리 부분을 완전히 감싸주어 부상의 위험을 줄여주는 원리이다. 자체 분석 결과 기존의 자전거 헬멧보다 약 8배 정도 뛰어난 보호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례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사용자의 피드백을 데이 타화 시키고 있다. 실제로 주행자 보호 성공 케이스는 현재까지 누적 3000 건이 넘고 있다.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헬멧 착용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전거 타기가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귀찮기도 하고 헤어스타일이 망가지는 것도 싫고. 정말 크고 작은 다양한 이유로 (혹은 핑계로) 자전거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제품 자체의 기능과 동시에 바로 이 점에도 주목했다. 바로 디자인이다.
외부에 착용되기에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너무 투박하거나 거추장스럽다면 제품을 개발한 우리부터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때문에 이 크리에이티브 영역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헬브딩 제품이 최초로 공개된 곳이 스톡홀름 패션쇼 (Stockholm fashion fair)라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디자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우리는 헬브딩의 제품이 라이프 스타일 아이템이 되길 바란다. 때문에 사용자 개인의 적인 패션 성향을 존중하려 한다. 어떤 사용자는 보이길 꺼려하고, 어떤 이는 패션의 포인트 요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같은 리서치 결과로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부터, 다양한 패턴과 텍스쳐 등이 적용된 버전까지 지속적으로 개발하였으며, 향후에는 패션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계획 중이다.
‘북유럽에서 온 보이지 않은 에어백’ , ‘숨겨진 헬멧 (invisible bike helmet)’ 등의 수식어로도 알려져 있다
출시 당시에는 워낙 생소한 제품이었고, 시장에 처음 등장하는 제품군이었기에 다양한 명칭이 따라다녔다. 덕분에 사용자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군을 내놓는다는 것은 늘 모험이고 한편으로는 설렌다.
제품은 에어백은 특성상 한번 사용하면 재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헬브딩 제품 역시 사고 시에 에어백이 펴져서 활용되었다면 다시 재사용은 불가하다. 안전상의 이유다. 그러므로 다양한 자전거 보험 상품과 연계하여 패키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보험상품에 가입하면 조건에 따라 (에어백이 사용되었을 시) 무제한으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웹사이트에서는 다양한 테스트 영상과 소비자의 후기 영상이 인상적이다.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있는지
다양한 사고 상황에서 헬브딩이 활용되는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물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알리고 있으며 이러한 채널들은 상당히 파워풀하다. 영상을 기본 포맷으로 제작하여 확실하게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전달하려 한다. 제품의 기능에 반신반의했던 사용자들의 신뢰는 물론, 광고의 효과까지 있다.
사고의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헬멧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보다 많은 잠재고객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실제 사고 상황에서 헬브딩의 도움을 받은 사용자들이 직접 제보해주기도 하는데, 이를 사무실 벽에 포스팅하며 현재까지 몇 명의 생명을 구했는지 기록하고 마케팅 자료로 활용한다. 마케터로서
상당히 뿌듯한 순간이며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전 직원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웃음)
자전거 에어백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활용도가 높아 보인다
그렇다. 우리도 현재 연구 중인 분야이다. 스노보드나 스키, 스케이트보드, 오토바이, 승마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기술이라 생각하여 진행 중이다. 사고의 상황인지, 사용자의 의도 (묘기나 트릭 등의) 인지를 인지하는 알고리즘 개발이 관건이다. 에어백이 필요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별해야 하니까.
잠재된 시장에 대한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일환으로 일본 니혼 플라스트 (Nihon Plast) 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차세대 자전거 에어백 개발에 착수한 상태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신속한 시장 대응과 리드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자전거의 보급률은 상승세에 있으며, 더 이상 단순 레저의 개념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본다. 특히 앞서가는 첨단기술이 집약된 한국은 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때문에 한국 역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잠재시장 중의 한 곳이다. 헬브딩이 한국의 건강한 자전거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필자가 경험한 스웨덴은 상당히 열린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전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와 비즈니스를 하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유럽 국가들과의 시너지로 새로운 산업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혹은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보는 것 같다. 특히 테크 관련의 스타트업 활성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헬브딩 역시 소규모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현재까지 꾸준한 성장세로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바로 사회 인식의 차이이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 이 일련의 과정에는 엄청난 걸림돌은 없어 보인다. 북유럽의 실리콘 벨리라 할 수 있겠다. 전세계 혁신적인 나라의 순위에서 스웨덴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스타트업이 가치 있는 아이디어로 비즈니스에 뛰어들 수 있고, 실패한다 해도 다시 재생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이번에 실패하거나 낙오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 의 부정적 인식보다 ‘그 실패에서 배우고 한 단계 성장해 다시 도전할 수 있다’라는 건강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호기심과 설렘이 우리에게도 먼저이길 바라본다.
ㅣ END ㅣ
글쓴이 : 조상우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사진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향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 시공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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