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교 현장에서 처음 협상문서를 접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약어와 생소한 표현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서 국제정치의 함의를 담고 있음을 실감했다. 외교는 단순히 국가 간의 대화를 넘어서, 세심한 언어 선택과 문장 구성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공식화하는 복합적인 작업이었으며, 문서 속 용어 하나하나는 때론 수개월 간의 협상 결과를 담기도 하고, 혹은 의도적인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 글은 내가 실무 속에서 익히고 마주해 온 외교 합의 용어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실제 회의에서의 경험과 유엔 문서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외교 문서의 주요 용어 35개를 선택하여 해설과 실제 사용 예시를 함께 정리했으니, 이 글이 외교 현장에 계신 분들뿐 아니라 국제정세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
Accession (가입)
이미 다른 국가들 간에 발효된 협정에 새롭게 참여하는 것
예: 대한민국은 1995년 WTO 출범 이후, 기존 회원국의 합의에 따라 WTO 협정에 가입하였다.
Ad referendum (재가 조건부 합의)
정부의 최종 승인(재가)을 조건으로 한 잠정적 합의
예: 유엔 해양법 협약 협상에서 몇몇 국가들은 조문에 대해 “ad referendum”으로 동의하고 본국 정부에 최종 판단을 맡겼다.
Alternat (교대서명)
각 당사국이 자국의 서명을 가장 위에 두고 개별 사본에 서명하는 방식
예: 양자 협정의 경우 각국 대표는 자국어 버전 협정문에 가장 먼저 서명한다.
By acclamation (만장일치 채택)
표결 없이 합의(consensus)로 결정을 채택하는 방식
예: 유엔 총회는 매년 핵군축 결의안을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경우가 있다.
Caveat (유보/조건 조항)
조약 해석에 제한 또는 명확성을 부여하는 조건
예: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 규정에 대해 특정 조항은 자국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caveat을 명시하였다.
Chair’s / President’s text (의장 초안)
의장이 참가국들이 수용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초안
예: 파리기후변화협정 채택 전, COP21 의장이 제출한 초안이 최종 채택안의 기초가 되었다.
Chapeau (서문/머리말 조항)
문서 또는 절의 서두에 위치하며 전체 맥락을 제시하는 문단
예: 유엔 결의안의 전제 부분은 종종 “Recalling...”, “Acknowledging...” 등으로 시작하는 chapeau로 구성된다.
Chausette (말미 조항)
문서 또는 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단
예: “Decides to remain seized of the matter.”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대표적인 chausette 표현이다.
Communiqué (공동성명)
회의 종료 후 참가국들이 합의하여 발표하는 공식 성명
예: G7 정상회의 후 발표되는 Leaders’ Communiqué는 회의의 핵심 합의사항을 담는다.
Depository government or organisation (기탁 정부 또는 기구)
공식 문서, 서명, 비준서 등을 보관·관리하는 주체
예: 유엔 헌장의 기탁자는 미국 정부이며, 조약 비준서는 워싱턴 D.C.에 보관된다.
Draft in blue (청색 초안)
채택 직전의 최종 초안
예: 유엔 회의에서 회람되는 “blue draft”는 위원회 심의를 마친 채택 준비 완료 문서를 의미한다.
En clair (평문)
암호 없이 일반 언어로 작성되거나 전송된 문서
예: 냉전 시기에도 중요한 외교 전문은 “en clair” 형식으로 송신되어 직접 해독이 필요하지 않았다.
Final act (최종의정서)
회의의 전체 경과 및 도출된 합의를 요약한 문서
예: 헬싱키 회의의 “Final Act”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시작을 알렸다.
Final provisions (최종 조항)
발효, 유효 기간, 개정, 종료 등의 절차를 규정한 조항
예: 파리기후협정 제20~21조는 조약의 발효 및 비준 절차를 상세히 규정한 final provisions이다.
Formals (공식 회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결정 및 발언이 이루어지는 공식 회의
예: 유엔 총회 본회의는 공식 회의로서 의제, 발언 순서, 투표 절차가 엄격히 적용된다.
Informals (비공식 회의)
보다 유연한 협상을 위한 덜 구조화된 회의
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비공식 협의실(informal consultations)에서 민감한 사안을 조율한다.
Informal informals (비공식 내 비공식 회의)
세부 사항 조율을 위한 소규모 비공식 논의
예: 기후 협상에서는 ‘green room’ 회의처럼 소수국가 간의 informal informal 회의가 핵심 합의의 전초 단계가 된다.
Instrument (문서/협정문)
조약 등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공식 문서
예: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국제법상 가장 중요한 arms control instrument 중 하나로 평가된다.
MoU (양해각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양측 간의 협의를 문서화한 합의
예: 한국과 EU 간 사이버보안 협력을 위한 MoU는 정책 협의의 기초가 되었다.
Non-paper (비공식 문서)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비공식 문서, 법적 구속 없음
예: 중재국이 제출한 non-paper는 어느 쪽에도 구속력을 주지 않으면서 협상의 방향을 제시한다.
Operative clauses (실행 조항)
결정, 요청, 확인, 선언 등 실제 조치를 규정하는 조항들
예: 유엔 결의안에서 “Decides to...”, “Urges...” 등은 모두 operative clauses에 해당한다.
Paraphe (초서명)
최종 서명 전 당사국의 대표가 문서에 이니셜을 기입하는 절차
예: 협정문이 각료에게 올라가기 전, 실무 대표들이 paraphe를 함으로써 합의된 초안을 확인한다.
Party, State Party (당사국)
조약 또는 협정에 가입한 국가
예: NPT 당사국은 현재 190개국 이상으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Pen holder (초안 조정국)
초안 작성, 협의, 수정 과정을 조율하는 국가
예: 유엔 안보리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주요 pen holder로 특정 이슈에 대한 결의안 초안을 주도한다.
Preamble (전문)
문서의 목적, 배경, 원칙 등을 서술하는 서론부
예: UN 헌장의 preamble은 “We the peoples of the United Nations...”로 시작하여 그 정신을 요약한다.
Protocol (의정서)
별도의 합의문이거나 기존 협정에 추가되는 문서
예: 교토의정서는 UNFCCC에 부속된 별도의 국제법적 문서이다.
Reservations & declarations (유보 및 선언)
국가가 자국의 이익에 맞게 협정을 조정하기 위해 명시하는 조건
예: 이스라엘은 일부 인권조약의 조항에 대해 reservation을 달고 가입하였다.
Side letter (부속 서한)
본 협정과는 별도로 작성되는 부속적 서면 약속
예: 무역협정에서 민감한 사안은 side letter 형식으로 별도 합의를 하기도 한다.
Skeleton (스켈레톤 초안)
정식 초안(Zero Draft) 이전 단계에서, 문서의 구조와 주요 논점만을 제시한 최소한의 틀
예: 지속가능발전목표(SDG) 협상 초기, 대표단 간의 비공식 협의에서 skeleton 문서가 회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 zero draft가 작성되었다.
Square brackets (대괄호 처리)
아직 모든 당사국 간 합의되지 않은 문구임을 표시
예: 협상 문서 초안에서 “[X country proposes Y]” 식으로 표기된다.
Sunset clause (일몰 조항)
특정 조항이 갱신되지 않으면 자동 종료되는 날짜를 명시
예: JCPOA(이란 핵합의)에는 일부 제재 해제 조항에 대해 sunset clause가 포함되어 있었다.
Travaux préparatoires (준비 문서)
협정의 협상 과정을 기록한 공식 문서
예: 빈 협약(VCLT)의 해석에 있어 travaux préparatoires는 보충적 해석 자료로 활용된다.
Treaty (조약)
국가 간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공식 합의
예: NPT, 파리협정, 제네바협약 등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treaty로 간주된다.
Working paper (작업 문서)
초기 개념, 아이디어, 제안을 담은 논의용 문서
예: 제1위원회에서 제출되는 disarmament working paper는 각국의 입장을 반영한 토의자료이다.
Zero draft (정식 초안)
합의문 또는 결의문의 최초 완성형 초안
예: SDG(지속가능발전목표) 협상 초기, zero draft는 17개 목표를 담은 최초의 협상 텍스트였다.
내가 외교 협상 현장에서 체감한 것은, 문서 한 줄을 완성하는 데에도 수많은 전략과 배려가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겉으로는 평범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문맥 안에서 어떤 법적 구속력과 정치적 신호를 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외교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에서 다룬 35개의 용어는 단지 암기해야 할 개념이 아니라, 실제 회의장에서 매일 부딪히고 고민하게 되는 생생한 도구이며, 나 역시 이러한 용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협상장에서 더 명확하게 내 입장을 전달하고, 타국과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외교 용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후배들에게 그 경험을 공유하는 데 힘쓰려고 하며, 이러한 용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곧 국제무대에서 설득력 있고 신뢰받는 외교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임을 나는 믿는다.
사진 출처: 개인 소장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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