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UN] 스톱워치와 유엔 합의 1

추가 발언 요청

2016.12월 어느 추운 겨울 유엔 본부 지하 제5회의실(Conference Room 5).


“미스터 코디네이터, 추가 발언 요청입니다.”


“추가 발언?” 내가 되묻는다. 질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은 방 전체에 던지는 경고다. “방금 발언은 이미 종결된 것으로 이해했는데요.”


“아르헨티나입니다.” 대표가 마이크를 잡은 채로, 고개를 아주 조금 숙인다. “기록을 위해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I request the floor.”


옆에서 또 다른 마이크가 켜진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같은 요청입니다. Just for clarification.”


“지금은 한 분씩입니다.” 내가 단호하게 끊으며, 옆에 있는 사무국 직원에게 “대기자 명단을 관리해 주십시오.”


버튼을 누르는 소리는 늘 조용하다. 하지만 제5위원회 회의실에서는 그 조용함이 오히려 소리처럼 들린다. 빨간 마이크 불이 켜졌다 꺼지는 리듬, 통역 헤드셋에서 새어 나오는 얇은 화이트 노이즈,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펜 끝. 모두가 ‘공식적인 침묵’이라는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었고, 방금 그 언어의 문법을 바꿔 버린 단어가 있었다.


추가. 발언. 요청.


제5위원회 담당 사무국 직원은 진행자 테이블 위 명단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대기자 명단에 올리겠습니다.” 말은 단순했다. 단순해야 했다.


“시간 계획은 유지 가능합니까?” 내가 그녀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인다.


“현재까지는 가능합니다.” 그녀는 시계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시계를 보는 순간, ‘가능’이 아니라 ‘불가능’으로 바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런 요청이 반복되면 순서와 시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합의한 절차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선합의’한 절차가요.” 그녀는 그 단어를 일부러 꺼냈다. 절차는 누구의 것도 아니게 들려야 한다. 절차를 내 입에서 빼내어 방 전체의 입으로 돌려놓는 것이 내 일이다.


사무국 직원이 메모를 밀어 넣는다. “코디네이터님, 통역 채널에서 ‘추가 발언’이 ‘재발언’으로 번역되면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재발언이든 추가 발언이든,” 내가 낮게 말했다. “결국 누군가의 시간이 줄어듭니다.”


오늘 의제는 “Proposed programme budget outline for the biennium 2018–2019.” 서류 상단에는 ‘Agenda item 133’이 인쇄돼 있었다. 문서 기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군대의 계급장처럼 단정했지만, 그 아래에 숨은 숫자들은 사람들의 자존심과 지갑과 정치적 기억을 건드렸다. “이건 결산이 아니라 프레임입니다.” 어젯밤 내가 연습한 문장은 입속에서 여전히 낯설었다.


그 의제가 내 어깨 위에 얹힌 날을 나는 기억한다. 회의 준비 서류 묶음 사이에 끼워져 있던 한 장의 리스트(List of Coordinators/Facilitators). 거기 내 이름이 있었다. “Mr Sang Yeob Kim (Chile).” 글자들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게 “여기서 너는 국가다”라고 반복해 말하는 것 같았다.

회의실 뒤쪽, 내 속으로 ‘모굴’이라 부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대규모 분담국을 대표하는 대표. 그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원칙’이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느림은 오히려 예의처럼 보였다. 예의로 포장된 지배.


그가 나를 불렀다. “코디네이터.”


“말씀하십시오.” 나는 ‘말씀하십시오’라는 말이 이 방에서 가장 위험한 허가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했다.


“우리도 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켜지도 않고, 아무도 바라보지도 않는다. 내게만 말하는 척하면서 방 전체가 듣게 한다. “방금 발언에는 사실관계가 섞여 있습니다. 정정은 절차상 필요합니다.”


“정정은 가능합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다만 대기자 명단에 따라—”


“대기자 명단.” 그가 웃었다. 아주 짧게. “대기자 명단은 약자를 위한 장식일 때가 많더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쪽에서 마이크가 켜졌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point of order.”


“말씀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나의 목소리는 변화가 없는데도, 방의 공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 시간 계획에 동의했습니다.” 대표가 천천히 말한다. “추가 발언을 허용한다면, 그 합의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곧이어 G77 쪽에서 또 하나의 마이크가 켜진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린 시간이 있습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발언권이 줄어드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럼 오늘 밤까지 하자는 겁니까?” 누군가가 작게 말한다. 하지만 통역 헤드셋을 통해 그 ‘작게’가 크게 전달된다.


그 사이, 작은 도서국 대표가 내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는 마이크를 켜지 않았다. 대신, 회의실의 ‘비공식적인 음량’으로 말했다.


“코디네이터, 저희는 오늘 한 번만 발언하면 됩니다. 그런데 대기자 명단이 계속 밀리면… 아예 못하게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답했다. “그래서 시간을 재는 겁니다. 오늘은 누구도 ‘사라지게’ 두지 않겠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가 즉시 받는다. “동의는 했지만, 발언권은 동등해야 합니다. 동등함이 훼손될 때 절차를 바로잡는 것도 우리의 권리입니다.”


“동등.” 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동등함은 시간을 재는 사람이 정의하죠.”


대표단의 시선이 다시 내게 꽂혔다. 질문이 아니라 결과를 요구하는 시선. 나는 손목시계를 흘끗 봤다. 초침이 너무 성실하게 움직여서 오히려 불쾌했다. 사람들은 문장을 늘린다. 의미를 늘리고, 책임을 늘리고, 때로는 시간을 늘린다. 하지만 초침은 늘어나지 않는다.


내 재킷 안쪽 주머니엔 작은 금속 덩어리가 있었다. 스톱워치. 회의 전에 ‘혹시’라는 마음으로 챙겨 둔 물건. 나는 아직 꺼내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느낌’에서 ‘측정’으로 옮겨 가는 순간, 누군가는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는 그 모욕을 기다린다.


사무국 직원이 다시 속삭인다. “회의실 예약은 18시까지입니다. 연장 요청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연장하면,” 내가 말했다. “누군가는 다음 회의를 잃고, 통역사 없이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절차로 싸우겠죠.” 직원이 씁쓸하게 웃는다. “항상 그렇듯.”


내가 정리한다. “좋습니다. 추가 발언은 대기자 명단에 포함하되, 시간은 기존 계획을 준수합니다. 사무국 직원께서 관리해 주시죠.”


“감사합니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그녀는 펜으로 이름 옆에 작은 점을 찍었다. 점 하나가 한 나라의 시간을 뜻하고, 그 시간이 다른 나라의 시간을 깎아먹는다는 걸, 그녀는 너무 오래 봐 왔다.


그때였다. 내 주머니에서 미세한 ‘삑’ 소리가 났다. 내가 손가락으로 잘못 눌렀는지, 아니면 사전에 맞춰 둔 알람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히 있었다.


“타이머 소리였나요?” 가까운 자리의 대표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 장비입니다. 곧 필요해질 수도 있고요.”


“장비라…” 그가 조용히 말한다. “그 장비가 오늘의 공정함을 결정하겠군요.”


마이크의 불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누군가 또 버튼을 눌렀다. 추가 발언 요청. 회의에서 고함은 잠깐이다. 그러나 이 버튼 소리는 회의를 끝까지 따라다닌다. 고함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추가’는 구조를 무너뜨린다. 나는 주머니 속 금속의 차가움을 더 깊이 느끼며, 결국 꺼내야 할 순간이 가까워졌음을 안다.


나는 노트 한 귀퉁이에, 오늘의 공포가 어떤 형태로 자라날지 세 줄로 적어 내려갔다.


(사진 출처: 개인소장, 유엔사무국홈페이지)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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