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름살기 17 : #맹인마사지 #카페추천 #깸보 #비건식당
오늘도 구름이 끝내준다. 달랏의 오전은 뜨거워서 그랩바이크의 바람을 즐기기로 한다. 열심히 그랩이 잡히는 지점까지 걸어갔다. 잘 웃는 그랩바이크 남자 기사가 왔다. 처음에 주소를 잘못 찾아가서 2분 정도 더 타고 가야 했다. 그래도 손해 본 건 없으니 16,000동 나온 거 팁 포함해서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20,000동 줬는데 애초부터 거스름돈 남겨줄 생각조차 안 해서 기분이 좀 그랬다.
마지막 날 똑같은 장소에서 다른 그랩바이크 잡았을 때는 똑같은 곳에서 한 번 멈추고, 똑같은 거리를 더 데려다주더니 2만 동 줬는데 정확하게 바로 4,000동 남겨주셨다. 역시나 그냥 양심의 문제였다. 동남아라고 팁을 흔하게 줘야겠다 싶은 생각일랑 말고 상대방 잘 살피면서 해야 할 듯하다. 이런 분들한테 팁을 더 주고 싶지 나를 본인 신용카드 취급하는 사람들한테 돈 뺏기고 싶지 않다. 내 돈은 내 돈이고 당신 돈은 당신 돈이죠. 돈으로 만난 사이니까 정확하게 합시다. 게다가 여행자에게 한두푼은 언젠가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요.
세상에! 사진 상으로는 크기 표현이 잘 안 됐는데 주먹 만한 게 먼지처럼 살랑살랑 걸어다닌다. 너무나도 귀엽고 또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본 아기고양이 중에 제일 못생겨서 신기했다. 저때는 꼬리모양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기분이 아주 좋은 녀석이었구나?
목적지는 맹인마사지샵Blind Massage Thanh Huyen Da lat이다. 입구로 들어설 때 벨 울리는 소리가 난다. 선불로 결제하고 사물함에 짐 맡기고 열쇠 갖고 카운터에 있던 남성 맹인직원분을 따라 올라간다. 팬티만 입고 엎드려 있자니 아무런 고지가 없었는데 남자 마사지사가 왔다. 죄송한데 여자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바로 여자분이 오긴 했는데, 카운터에 있던 남직원도 여자분이랑 같이 와서 나보고 엎드리지 말고 누우라며 몸 위로 담요를 덮으려고 해서 "제가 할게요.(I will do it.)" 이라고 했다.
성폭력이 빈번히 일어나는 사회이기 때문에 성별이 다르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터치일지언정 받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다. 어쨌든 안경 쓰신 단발 여자분, 맹인이 아닌 분이 2시간 마사지 해주셨는데 처음엔 약간 방정맞다고 느낄 정도의 비전문적인 손길이라고 생각했으나 다 끝나니까 새 몸을 얻었다. 팁으로 2만 동 드리고 나왔다.
잠깐잠깐 해가 들어오는 게 감은 눈 위로 느껴졌다. 곰팡이 햇살에 말리는 냄새도 같이 났다. 꼭 중고등학교, 특히 고등학생 때 교실에서 커튼 흩날리는 사이로 창밖을 내다보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양호실에서 쉬는 것 같기도 했다. 편안한 느낌이었다.
달랏 카페 Thong Dalat Space에 들렀다. 페퍼민트 초코스무디를 시켰다. 거스름돈이 없으시다고 1,000동을 더 주셨다. 심지어 친절하셨고 음료도 맛있었다. 딱 하나, 오늘도 역시나 더운데 사이드로 뜨거운 물이 나왔으나 이제는 적응이 다 된터라 후루룩 마셨다.
의자는 조금 불편하지만 선풍기 하나 없이도 건물 아래라 시원해서 몇 시간 동안 독서할 수 있었다. 사진상 왼쪽으로 가면 공간이 또 나오는데 거기는 공사 중인 부분도 있어서 약간 시끄러웠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카페라 추천한다.
작게 보이는 Kembo Thanh Thao에서는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인 깸보를 판다. 현지인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정도의 맛집이다. 처음 새치기 당했을 때, 인상 팍 쓰고 주인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까 손가락으로 2 만드셨다. 2분을 기다리라는 건지 두 잔 더 만들 때까지 기다리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또 다른 현지인이 새치기 하려 해서 나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니까 할아버지가 현지인 컷 하고 나한테서 주문 받았다.
안에서 먹을 수도 있는데 나는 합석하기 싫어서 테이크아웃했다. 처음엔 홍시맛이 난다. 먹다 보면 겉에 있는 밀가루 부분이 얇고 전체적인 크기가 작아서 입안에 넣자마자 파사삭 부서지면서 안에 있는 크림이 느껴지는 빵! 맛이 난다.
첫날 월경대 구하러 피곤한 몸 끌고 엄청나게 걸었던 이곳에 여유를 되찾고 오니까 좋았다. 달랏이 은근히 먹을 곳이 없어서 구글맵 레스토랑 검색으로 근처 아무데나 들어왔다. 채식주의자 식당인 Quan com chay Au Lac 2라는 곳인데 결론적으로 추천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서 구글맵 리뷰에 올라와있던 사진을 보여주고 두 개의 메뉴를 얻었다. 나중에 계산할 때 물어보니까 좌는 Bun Bo Hue로 25,000동이고 우는 매뉴판엔 없는 건데 8,000동이었다. 둘 다 진짜 깔끔한 맛이다.
식당은 스님들이 운영하셨다. 영어가 안 통해도 미소로 마음 편해지는 곳이었다. 영어 잘하는 분 계시는데 내가 베트남 메뉴판을 못 읽어서 의사소통이 느렸다. 계산할 때 실수로 1000동 더 드렸는데 당연한 거지만 돌려주셨다. 눈 뜨고 코 베일까봐 긴장하던 참에 이런 양심이라니, 오랜만에 누군가를 멋지다고 느꼈다. 음료수 뭐 먹을 거냐고 급하게 영업하시긴 했지만 그거야 뭐 장사하는 곳이라 당연하니 됐다.
쑤언흐엉 호수로 간다. 하노이 호수에 비해서 평화롭기만 하지 낭만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호수는 노을 이후에 와야 좀 두근거리는 것 같다. 요거트 맛은 애매했다. 저 과일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달지도 시지도 않고 그냥 식감만 있었다.
다 먹고 그랩바이크 불러서 숙소에 갔다.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이라니까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South?" 소리를 들어봤다. 북한인 본 적 있냐니까 있다고 했다. 25살이라고 했으니 꽤 어린 나이다. 암튼 달랏은 낮에 바이크를 타야 시원하고 밤엔 좀 쌀쌀하다. 이런 날씨엔 걸어야 하는데 몸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