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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Jul 26. 2024

넴느엉이라는 베트남 음식 먹기

베트남 보름살기 18 : #달랏꽃정원 #곡하탄 #깸보 #맹인마사지


오늘은 몸이 무겁고 나른해서 달랏에 온 뒤 처음으로 숙소에서 정오 넘어서 늦게 나갔다. 물을 평소보다 두 배나 마셨는데 목이 말랐다. 나가 보니 날씨도 평소와 달랐다. 달랏은 보통 선선한 편인데 어제 밤부터 계속 습한 기운이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쨍하지 않은 연한 하늘색이었다. 



그랩바이크 불렀는데 18,000동이 나왔다. 5만 동을 드렸는데 거스름돈 없다고 주변 현지인 둘이랑 지폐를 바꾸더니 남겨줘야 할 2,000동을 자연스럽게 먹고 3만 동만 돌려주었다. 지갑이 너무 낡은 아저씨라 약간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화가 났다. 그래서 돈 털린 사람은 누구? 나! 내 돈 털어가는 건 누구? 그놈! 불쌍한 건 결국 나이므로 돈 뜯어간 사람을 불쌍해할 필요가 없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돈에 양심 있는 사람은 다 여자분이었다. 나트랑 떠이 66, 달랏 Thong Dalat Space, 채식주의 식당까지 말이다. 근데 그랩 남성기사들은 사기꾼 하나에, 거스름돈을 당연히 팁으로 받아가던 둘까지 양심이 엉망진창이다. 베트남 문화가 원래 적은 돈은 한국처럼 칼같이 안 거슬러주고 주는 식이라던데 그래도 안 그러는 분들이 계신다.



호스트가 추천해준 달랏꽃정원 건너편 풍경이 예쁜 카페, Cafe Bich Cau에 왔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나를 보면서 직원분도 슬그머니 마스크를 쓰셨다. 아무래도 코비드19 유행 극초기였을 때니까 나한테서 옮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조심하시는 것 같았다. '저도 그렇답니다. 이해해요.'라고 생각하며 주문을 했다.



yogurt HU tea를 주문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커피색인데 요구르트맛이 나고 버블이 상큼하게 톡톡 터졌다. 이 카페는 실내석과 야외석이 둘 다 있다. 바람은 시원하고 풍경 평화로우니 야외석을 택했다. 한참을 숙소 고양이를 그리며 보냈다. 양쪽으로 베트남 아저씨들 데시벨 높은 수다소리만 덜 들렸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화장실은 깔끔한 편인데 세면대 물이 안 나와서 직원분께 물어보고 저 수도꼭지에서 손 씻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다가, 남의 그림에 관심이 조금 생겼다가, 붓으로 그리기엔 준비할 게 너무 많고 연필로 그리기엔 멋진 작품이 안 나오니까 아이패드로라도 사진을 따라 그리는 데에 흥미가 생겼다. 그림이라는 건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일이며,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건 안다. 하지만 나에게 미술은 실력이 없으니 재미도 없어서 연습하기 싫은 분야 최고봉인 것 같다. 언젠가는 초등학생 수준으로라도 재미있게 그려보고 싶다.



음료를 다 마시고 카페 바로 건너편에 있는 달랏꽃정원으로 가는 중이다. 달랏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신투어리스트에서 그랩택시 타고 숙소 가던 길에 이 풍경을 봤었다. 그나저나 저 갈색 점박이 말이 풀에 자꾸 몸을 문질러서 눈길이 갔다. 뭐하는 걸까? 강아지들처럼 바깥 세상이 좋아서 몸에 냄새를 묻히려는 걸까? 아님 그냥 목욕이려나.



달랏꽃정원 입장료는 2020년 기준으로 5만 동이다. 입장권은 카드 형태인데, 꽃정원에 입장할 때 기계에 삽입하면 된다. 달랏꽃정원은 놀이기구 없는 에버랜드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았다. 향기가 쏟아지는 꽃덤불을 기대했는데 후각에도 딱히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달랏 하늘은 천국과 같다


달랏꽃정원 꽃들은 딱히 볼 게 없었고 많이 걷고 싶지 않아서 대충 쓱 둘러보고 말았다. 계단 위라든가 한참 뒤쪽은 아예 가지 않았다. 가벼운 산책 후 꽃정원을 나가서 그랩바이크를 불렀다. 목적지까지는 2km가 안 돼서 원래는 걸어갈 만한 거린데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다.


또 18,000동 나왔고 나는 '잔돈이 없으니 또 2만 동 주면 2,000동 뜯기겠구만.'하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는데 처음으로 잔돈 2,000동 거슬러주는 남성 기사님을 만났다. 와, 이럴 수 있는 거였다니! 당연하고 정상적인 건데 다른 남성 기사들이 죄다 비양심적이라 놀라웠다.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 식당인 곡하탄Goc ha thanh에 도착했다. 비아시안들이 많았고 직원들이 프렌들리 했다. 우선은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이번에 먹어보고자 한 베트남 음식은 '넴느엉'이라는 것이다. 넴느엉은 넴누이라고도 불리며 고기, 채소 등을 얇은 라이스페이퍼에 싸먹는 음식이다.



우선 333 beer를 시켰다. 맥주는 음료수라고 여기는 편인데 피곤한 상태에서 마시니까 술은 술이라고 체온이 올라갔다. 맥주 자체는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음식과는 무척 궁합이 좋았던 것 같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더니 메인음식들이 나왔다.



넴느엉은 베트남식 나무 접시 받침대에 담겨 나온다. 예쁘고 정갈한 아이템이라 그냥 철판이나 플라스틱보다는 분위기도 기분도 좋다.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서 이것저것 올리고 돌돌 말아서 저 소스에 찍어먹으면 꿀맛이다. 땅콩소스인가?



짜조는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스프링롤을 이렇게 얇게 튀길 수도 있는 거였어? 아무래도 튀긴 음식이니 기름맛이 당연히 나긴 하는데 내용물 실하고 나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맨 상태로 한 입 먹고 나서, 소스 찍어서 두 입 먹으면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소스랑 잘 어울렸다. 배부르게 먹고 나가면서 "깜언.(감사합니다.)" 했더니 동시에 직원분께서 땡큐라고 답해오셨다.


이제 익숙한 이 거리


체온을 식히기 위해서 얼마 전 방문했던 Thanh Thao에 다시 들렀다. 베트남식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인 깸보를 테이크 어웨이 했다. 한 번 먹은 걸로는 아쉬우니 한국 가서 생각날 맛이기도 하고, 먹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는 시간이니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이 사진을 보면 괜히 감동적이다. 정말 예쁘고 참 잘 찍었다. 중학생 때부터 사진기랑 한 몸이었던 터라 누굴 만났을 때 사진 잘 찍는다는 칭찬은 당연히 들어왔고 이제는 막 찍어도 예술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어차피 직업도 아니고 취미인데 자만이라는 생각 않고 내 작품을 즐기련다. 크으, 아름다운 순간을 잘 포착했다!


달랏 풍경
내가 좋니


하루의 마무리는 맹인마사지샵으로 정했다. 오늘은 처음부터 "여자분으로 부탁드려요. (Woman, please."하니까 어제 나 해주신 분을 또 만났다. 똑같이 2시간 핫스톤 마사지였고 어제도 느낀 건데 두피장인이시다. 당연히 디테일은 어제와 달랐지만 믿고 맡겼고 두 시간 후 또 다시 내 몸은 새로 태어났다. 다 끝나고 사물함에서 가방 꺼내서 뒤돌아봤을 때 어제처럼 계실 줄 알았는데 사라지셔서 팁을 못 드렸다.


마사지를 한참 받고 있는 중에 카운터를 보던 남자 직원이 룸에 들어왔다. 뭔가 했는데 백인여자분이 따라 들어오더니 내 옆에 누웠다. Man or woman 묻는 거에 "상관없어요. (I don’t mind.)"라고 하셔서 남자마사지사가 들어왔다. 그분은 90분 마사지였는지 나랑 거의 비슷한 시간에 끝났다. 다른 방에서 그분의 일행인 남자가 나와서 합류하는 걸 보았다. 마사지사랑 손님 성별을 맞추지는 않지만 손님은 성별 따라 나눠 받는구나 싶었다.


그냥 예뻐서


새로 태어난 김에 50분 정도는 그냥 걷는다. 달랏의 저녁은 5월 아님 9월 날씨라서 산책하면서 사색에 잠기거나 공상에 빠지기 좋다. 길가에 사람이 아예 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토바이 소리가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치안도 좋은 편이다.



베트남 전통주인 넵모이(nep moi)를 사러 숙소 근처 빈마트에 갔는데 없다고 했다. 대신에 9,500동짜리 음료수를 하나 사면서 1만 동을 냈다. 500동은 베트남에서 돈 취급을 거의 안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직원분께서 열심히 포스기 밑을 찾으면서 곤란해하셔서 괜찮다고 하고 나왔다. 이렇게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참, 아닌 사람도 많다니. 새삼스레 기분이 이상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호스트가 건네주는 베트남 과일 ‘나(na)’를 두 개 먹어봤다. 이름이 '나'여서 좀 웃겼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과일이었는데 달콤했다. 방에 올라가서는 빈마트에서 구입한 음료를 마셔보았다. 제품명은 COMPACT인데 마셔보니까 체리맛이 굉장히 인공적이라 취향은 아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봤다는 거에 의의를 두고 쉼을 위해 따뜻한 물로 푹 씻었다.


나를 반겨주는 숙소의 강아지와 고양이
노는 거니 싸우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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