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배우의 명복을 빌며
난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굳-바이, 굳-바이
꽃피는 봄도 일흔번 넘게 봐왔고,
함박눈도 일흔번이나 봤죠
자알 놀다 가요
굳-바이, 굳-바이
누군가가 내 잔디 이블 위에
나팔꽃씨를 뿌려주진다면
가을엔 살포시 눈을 떠 보랏빛 나팔꽃을 볼게요
굳바이, 굳바이
업무차 세종 종합청사를 다녀오는 길에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30대 초반에 70대 시골 할머니 역활이라는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수많은 작품 속에서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국민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었던 국민배우의 갑작스런 비보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누구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길이지만, 좀 더 남아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것이 많은 사람들의 떠남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10년 전 갑작스럽게 떠난, 신해철이 그랬다. 노회찬이 그랬고, 박원순이 그랬다.
김수미 배우는 평생을 일터에서 보내려했다. 나이 들고, 힘이 딸리면 좀 더 편하고, 안락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잠들지 모르는 불안감은 한 시도 쉬지 않게 만든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미리 죽음을 예견하고 유언을 남기고, 유언곡을 썼다고 한다.
평소에 돌아기신 어머니를 그리워 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나팔꽃에 연민을 느끼고 살아온 그녀가 몹시 그리운 어머니를 보고싶어, 한 겨울에 느닷없이 '괌'으로 떠난 일화는 경이롭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나팔꽃이 필 것이고, 그 나팔꽃을 바라보며 그리운 어머니를 회상하며 흘린 눈물은 연민의 정이다.
남을 즐겁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본인의 마음은 항상 기쁨으로 가득하지는 않았다. 사업을 하며, 연극을 하며, 영화를 하면서 마냥 좋은 일만 생기진 않을 것이고, 수많은 구설수와 사소한 오해에서 오는 비난, 그리고 가족사로 얽힌 비극과 슬픔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 아픔과 괴로움이다.
70평생 그 많은 희노애락을 뒤로 한 채, 그리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많은 고통없이 비교적 편하게 잠든 것도 복이다. 김수미 배우가 남긴 유언곡처럼 꽃피는 봄도, 함박눈도 일흔 번 넘게 봤으니, 더 이상 후회가 없이 영면하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