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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Oct 24. 2024

그냥 뛰어 내릴 뿐이다

레밍의 딜레마


레밍들은 왜 자신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지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뛰어내릴 뿐입니다. - 데이비드 허친스/레밍 딜레마 -     




레밍은 쥐과에 속하는 포유류로 레밍무리가 일정 이상 불어나면 집단을 이루어 일직선으로 이동하여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레밍의 습성에 아이디어를 얻은 조직학습과 조직변화 이론의 전문가 데이비드 허친스가 창작우화를 만들었다.     

 

북유럽의 춥고 척박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툰드라지대에 살고 있는 설치류(쥐)인 레밍은 몸길이는 7~15센치 정동에 몸무게는 30~100그램 정도로 작은 동물이다.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주기적으로 이동한다. 번식력이 엄청 강한 레밍은 숫자가 늘어난 만큼 먹을 게 떨어지면 먹을 곳을 찾아 어쩔 수없이 이동해야 한다.      


집단 이동을 밥먹듯하는 레밍은 그래서 '나그네 쥐'라는 별명을 가진다. 이동할 때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레밍은 우두머리 레밍이 앞장을 서고 일렬로 죽 늘어서서 맨 앞줄에 있는 우두머리 레밍만 보며 따라서 움직인다. 뒤따라 달리는 레밍은 그저 앞에 우두머리 레밍만 따라갈 뿐이다. 이런 맹목적으로 이동하는 습성으로 강이나 호수에 빠져 죽은 경우들이 허다하다.    

  

레밍의 이런 특징과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레밍효과’라 부르며,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주장을 따라 하는 집단적 편승효과를 설명한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따르고 자신의 선택과 결심의 기준으로 삼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절벽을 향해 가고 있어도, 아무런 비판과 변화에 대한 의지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선택으로 후회했던 적, 단호한 마음으로 결정했다고 믿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돼 버려서 자신을 스스로 탓해본 경험들이 쌓여, 스스로 결정하는데 어려워 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내가 내리는 선택이나 결정에는 정답과 오답만 있다고 생각해서 안전한 선택과 결정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이도 저도 아니면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남이 결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사실 레밍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맹목적으로 우두머리 레밍의 뒤를 쫓아 결국 절벽이나 호수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을 위해 이동 중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론이 정설로 나온다. 태생적으로 어느 정도의 호수를 건널 수 있는 신체적 구조를 가지고 물에 뛰어들지만, 예측을 잘 못해 너무 긴 호수일 경우 중간에 힘이 빠져 죽는 경우는 있어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무모하게 집단자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선택과 결정을 하기에 겁이 난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의료대란으로 아프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고, 총체적 경제 침체로 대기업부터 소상공인까지 존속과 생계에 위협을 느끼며 대량 해고 및 어쩔 수없는 폐업을 강요받고 있으며, 치솟는 물가로 먹는 것과 여가생활을 줄이는 국민들의 고통까지 생각하면, 맹목적 추종에 따른 절망적 선택이 아닌, 위협을 무릅쓴 무리한 결단이거나, 용기가 없어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타당할 지 모른다.



2017년 자한당의 김학철 도의원이 국민을 '레밍'에 비유해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었다. 당시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던 충청북도 도의원이던 그는 마침 그 때 일행과 함께 외유성 유럽 유행 중이었는데, 즉시 귀국하라는 국민적 원성을 '설치류인 레밍'에 비유하며, 국민의 집단행동을 비난하는 막말로 나락에 빠진 적이 있었다.  평상시의 국회의원, 도의원 들의 외유성 해외여행에는 침묵하다가, 사회적 이슈가 발생될 때마다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사회적 개념과 정무적 감각이 없는 '김학철 도의원'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사회적 안정장치나 선택적 자유도가 현저하게 낮아진 현실에서 절벽에 내 몰린 대다수의 서민들이 실질적인 '레밍'이 아닐까 싶다. 5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던 식당마저 문을 닫아야 하고, 북적이던 먹거리 시장이 한산해 졌으며, 실적 압박으로 직원들을 정리 해고해야 하는 기업까지 총체적인 경제적 어려움 속에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조금 더 결단력 있는 누군가의 비슷한 문제를 막힘없이 풀어낸 어떤 이의 결정과 선택을 따르는 게 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해서, 나보다는 조금 더 좋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 믿으며 결정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 폭이 좁아지고, 결정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때 인간의 본성은 나태해진다. 지금의 사회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태함을 강요하는 모순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판단과 권위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했을 때,
권위 있는 타인의 판단에 따르면서도
마치 스스로의 선택인 양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이 착각이야말로 나태한 인간의 본성이다.
- 쇼펜하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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