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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제주도 겨울여행

제주의 겨울을 만끽하다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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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다. 특히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나에겐 더더욱 제주는 일생에 몇 번 갈 수 있는 곳이다. 60이 되도록 업무목적을 포함 10번이 넘지 않는 제주 여정 중 세 번은 겨울에 갔다. 그러고 보니 일부러 여행 목적으로 일정을 잡으면 으례 겨울이다. 비수기 이기도 하지만, 여유롭게 몇일을 비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한 일정인데, 하필 유독 추울 때를 잡았다. 그동안 이상 기온으로 연일 따뜻한가 싶더니, 전국이 꽁꽁 얼어 붙었다.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 현실을 말해주듯, 호남은 폭설로 아우성이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은 영하 10도 밑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다행히 제주는 심한 눈도, 거친 추위도 피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바람은 피할 수 없었다. 바람, 돌, 여자의 고장답게 해변가를 끼고 불어오는 바람은 가히 태풍급이다. 그래도 난 제주의 겨울이 좋다.


겨울의 제주는 모두가 여유롭고 한가하다. 관광지가 사람들로 북적여야 하는데, 나처럼 휴식을 목적으로 찾을 때는 한가로움이 너무 좋다. 지난 번 아들과 올 때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각 종 아트뮤지엄, 휴양림, 산굼부리, 올레길 체험, 오름, 한라산 등산까지 부지런하게 하나라도 놓칠새라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계획은 있으나, 서두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그렇게 쉬엄쉬엄 움직였다. 그래서 3박 4일 일정이지만, 제주도 서쪽을 중심으로 반만 탐험하기로 작성했다.


첫 날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 회사를 찾았다. 미리 예약한 렌트비는 3일 내내 쓰는데도 5만원이 되지 않는다. 기름값 3만원 포함 8만원으로 교통비를 충당했으니, 저렴한 셈이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옮겨 다니며 미리 예약한 곳에서 해결했다. 이 또한, 합리적인 비용과 편리한 숙박 환경 덕분에 현지 하나로 마트를 이용한 음식 요리가 도움이 되었다.


제주53.jpg [제주 먹거리 중 본말칼굴수와 고기국수는 먹을만 하다]


제주의 서쪽은 해변가를 끼고 유명한 카페가 즐비한 해안도로가 있어 좋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고 차서, 이호테우 해변의 말등대를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이어 찾은 애월 해안도로, 곽지 해수욕장, 협재해변 등은 차로 이동하는 내내 출렁이는 파도와 함께 최고의 해변 경치를 선물해 주었다. 한참을 달려온 해안도로에서 틈틈이 내려 바람과 파도와 화려한 경관을 담다보니, 눈은 호강하는데,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춘옥 고등어 쌈밥집'이다. 애월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이춘옥 쌈밥집'은 묵은지 고등어찜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다를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창가는 이미 빈 자리가 없다. 고등어 쌈밥은 쌈밥이라기 보다 찜에 가깝다.


해안도로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는 차 한잔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워낙 뷰가 화려한 곳에 유명한 카페들이 넘쳐나니, 어떤 곳을 찾아도, 다른 곳에 비할 수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찾아 들어가 차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를 즐기면 된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일부러 찾은 곳 중에 '더럭 초등학교'가 있다. 2009년 전교생 17명으로 폐교 직전까지 갔으나, 그 이후 얼룩달룩 무지개 빛으로 교정을 포장하고, 이주민들이 늘면서 현재는 전교생이 80명 가량 되어 아름다운 초등학교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해서 찾아 봤다.


첫 날 저녁은 숙소 근처 하나로 마트를 들려 요리거리를 사고, 숙소에서 간단하게 요리해 먹었다.


둘 째날은 신창등대를 중심으로 풍차 해안도로에서 시작하였다. 제주 바다의 바람을 이용한 풍차들이 즐비한 해안가는 장관이다. 가까이서 직접 풍차를 볼 수 있는 곳에서는 거대한 풍차의 위용에 한참이나 위축되어 있었다. 화산섬 제주도의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는 수월봉을 중심으로 해상 트래킹을 해보고 싶었으나, 바람과 추위가 너무 강해, 멀찍이 해변가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화산섬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전기 자전거를 이용해 2키로가 넘는 절벽가를 트래킹 해야 한다. 아쉬움과 함께 수월봉을 떠나 찾은 곳이 오셜록티뮤지엄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눈대신 비가 오는 데다, 주차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감귤 농장체험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애들마냥 무슨 감귤체험일까 하지만, 제주도에는 감귤을 직접 따보고, 시식까지 할 수 있는 체험장소가 많다. 동심으로 돌아가 바구니와 절단기를 하나씩 챙겨들고, 감귤농장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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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농장 속에는 감귤나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과 말을 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귤을 따는 동안 허기진 모습으로 애처롭게 다가오는 제주 망아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감귤을 한 바구니 가득 채우고 나온 다음 찾은 곳은 '곶자왈제주도립공원'이다. 나무와 돌을 상징하는 제주답게, 제주의 나무들과 다양한 돌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입장이 오후 3시까지라는 것을 몰랐다. 도착한 시간은 3시 10분이다. 불과 10분 차이로 입장을 못한 우리는 다시 '오설록티뮤지엄'을 찾았다. 여긴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제주가 자랑하는 녹차밭에서 직접 따서 제조하여 판매하는 곳이라, 의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일만 할까 싶었다. 우리나라에 녹차밭으로 유명한 곳은 세 곳이 있다고 들었다. 보성, 강진, 제주이고, 강진, 보성, 제주 순으로 크기가 정해진다고 한다. 오설록티뮤지엄에서는 직접 녹차를 맛 볼 수 있으며, 다양한 상품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좀 의외였다.


한가하게 차 한잔하려는 생각을 접고, 다시 다음 장소로 옮겼다. 좀 늦을 듯 찾은 곳은 '송악산'이다. 송악산은 제주 남서부 해안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절벽 위의 그림같은 산책로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산책로가 절벽위로 형성되어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는다는 송악산, 그러나 우리가 찾은 시간은 너무 늦은 시간이다. 밝은 대낮에도 불어노는 바닷바람으로 쉽지 않은 길일텐데, 4시 넘은 시간에 찾은 송악산 산책로는 무리였다. 나중에 하루일정 중 반나절을 할여해야할 명소로 남기고 숙소로 옮겼다.


둘째날 숙소는 산방산 자락에 위치한 '산방산 탄산온천 팬션'이다. 탄산온천이 유명하다 해서 일부러 잡은 곳이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탄산온천으로 씻어내리라. '산방산 탄산온천'은 넓은 탕과 수영복을 입고 즐길 수 있는 야외 노천탕으로 구분된다. 마침 눈이 오는 겨울에는 따뜻한 노천탕에서 즐길 요령이었지만,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눈은 오지 않고, 추위만 강하게 느껴져서, 짜릿짜릿한 탄산온천수에 피곤한 몸을 녹이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주52.jpg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


셋째날은 서귀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제주도는 윗쪽으로 제주도와 남쪽으로 서귀포시로 구분된다. 그리고 크게 해안도로와 카페로 유명한 서쪽과 섭지코지와 산굼부리 등 전통 관광지로 유명한 동쪽으로 구분되니, 4등분하여 여행지를 잡는 것이 관례라 한다. 이번에는 제주도를 반으로 나눠, 서쪽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으니, 이제 남은 곳은 남서쪽과 1100도로를 중심으로 겨울 제주를 만끽하는 것 뿐이다.


산방산에 있는 숙소에 나와 찾은 곳은 '방주교회'다. 해발 400미터 중산간에 지은 방주교회는 건축가 '이타미준'이 설계하였다. 방주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는데 사방으로 물을 배치하여 건물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연상시킨다. 반사 각도가 다른 3가지 재료이 금속판으로 덮은 지붕은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의 채도가 바뀐다. 마치 반짝이는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 같다. 실내는 따뜻한 나무 소재가 기둥과 지붕으로 이어져 오각형의 공간을 이룬다. 교회 내부는 양쪽 창으로 들어오는 수면 반사광 덕에 특별한 조명 없이도 빛이 가득하다. 교회 앞에는 넓은 찻집도 있으니, 편하게 차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선사한다.


방주교회 근처에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카멜리야힐'도 있고, 단아한 한국미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현대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본태 미술관'이 있다. '본태'란 본래의 형태, 즉 인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의미다.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조각보와 9개 층의 타워형으로 전시된 다양한 소반 등 전통 수공예품의 전시가 돋보인다. '카멜리야힐'은 역시 그 유명세로 비수기임에도 찾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마침 제주를 찾은 다른 지인과 점심 약속으로 카멜리아힐은 다음을 기약했다.


점심은 뼈없는 갈치조림으로 유명한 서귀포의 '대기정'을 찾았다. 제주에서 맛보야할 음식 중에 하나인 갈치조림, 근처에 주상절리도 있어, 점심을 하고 산책겸 '대포 주상절리'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우린 날씨 탓으로 점심 식사 후, 근처에 있는 '마노 커피하우스'를 찾았다. 무심코 커피 먹을 생각으로 찾은 곳이 커피로 유명한 '마노 커피하우스'이다. 차 한잔에 15,000원, 최고급 커피 재료와 직접 손으로 내린 드랍커피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비싸다. 모처럼 만나기 어려운 지인을 멀리 제주에서 만났으니, 이런 호사를 누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멋진 커피타임을 마치고, 또다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가려한 곳은 '서귀포 자연휴양림'이다. 1100도로에 있는 '서귀포 휴양림'은 해발 700미터에 자리해, 해안에 비해 10도 낮아 여름철에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단다. 휴양림 내에 속박시설, 캠핑장, 다양한 탐방로 등이 마련되어 있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장관이라는 그 곳은 이미 휘날리는 눈발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아니 1100도로 전체가 통행 통제가 되어, '서귀포 휴양림'을 비롯하여 1100고지, 어승생악 등을 방문하여, 제주의 겨울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남은 길은 안전한 길을 통해 제주공항 근처로 이동해 렌터카를 반납하고, 제주시내로 들어가 '동문시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방송에는 이미 제주도에도 눈과 바람으로 통제되는 도로가 늘었고, 비행기도 결항과 지연이 늘어,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제주47.jpg [젊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동문시장의 야시장]


걱정된 마음으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다시 찾은 공항은 방송 그대로, 4시 이후 대부분의 항공 스케쥴이 결항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시내로 이동해 '동문시장'을 찾았다. 마지막 저녁을 '흙돼지 바베큐'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저녁 7시에 찾은 동문시장은 어느덧, 파장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흙돼지 바베큐' 대신 동문시장의 흥행을 주도하는 젊은 청년들의 불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들은 요란한 음악소리와 경쾌한 리듬 속에서 직화 오겹살 바베큐를 실시간으로 구워내고 있었고, 직화구이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나도 당초 식당에서 먹으려던 '흙돼지 요리' 대신 그들이 파는 '오겹살 바베큐'와 '흑돼지 오겹말이'를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전통적인 동문시장의 흥행은 청년들이 이끄는 '야시장'이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마지막날 숙소는 제주공항에 가까운 해변가에 잡았다. 동문시장에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주도에서 동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춥고, 메서운 겨울 제주 밤바람이었다. 다행히 밤새 예견되었던 눈은 오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제주도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3박 4일의 짧은 제주도 겨울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일정의 반도 소화하지 않았지만, 애당초 기대하던 대로 뜻을 이룬 셈이다. 계획은 세우데,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제주도 겨울을 만끽하데, 무리하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다닌다. 그리고 충분히 음미한다. 아마도 다음에 찾을 때도 똑같은 심정으로 움짉일 것이다. 여행은 낯선곳에서 우연을 체험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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