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하여
“인생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두 번째를 이루었다.” - 로건 피어설 스미스 / 뒤늦은 생각 -
듀드이즘(dudeism), 듀드주의를 아는가? 1984년 코언 형제가 만든 컬트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 나온 주인공 이름이 듀드(DUDE)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듀드가 만들어낸 삶의 철학이 종교가 되고 사상이 되어 미국과 영국에서 축제로까지 승화된 게으름에 대한 찬양적 신드롬이다. 듀드주의 핵심강령은 ‘흐름을 타라’, ‘항상 침착해라’, ‘마음 편히 살아라’로 요약할 수 있고, 영화 내내 끊임없이 좌절을 맛보는 듀드지만,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고 힘든 와중에도 삶을 즐기는 모습에서 듀드이즘이란 새로운 사상이 나온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작은 일에 아주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것도 괜찮다는 곰돌이 푸의 말처럼 듀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한다. 때로는 생각한다. ‘위대한 레보스키’의 듀드처럼 끝없이 피어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작금의 치열한 삶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벗어나 온종일 친구들과 볼링을 치고,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강진의 작은 마을이나, 제주도의 해변에서 나만의 안식년을 즐기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지루함이 일종의 고통이라고 믿었다. 솔직히 현대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무수히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기에 지루해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실로 우리에게는 즐길 만한 오락의 선택권이 무궁무진하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은 고사하고, 유튜브니 넥플릭스니 심심할 틈이 없이 즐길 꺼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목록에서 지루함은 빼야 하나?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지루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뿐 아니라 외롭다는 생각도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겉보기엔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한 세대 전체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것도 어쩌면 그런 불안 때문이다. 가짜 친구들과 가상의 팔로워들로 가득한 소셜 네트워크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다. 실제로는 외롭고 혼자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또 손에 넣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가지지 못하면 욕망과 고통이 계속된다. 하지만 바라던 것을 손에 넣어도 기쁨의 순간은 그리 지속적이지 않으며 머지않아 지루함이 찾아오고 더 큰 것을 욕망하게 된다. 그는 우리의 마음 상태가 끝없는 불만과 추구로 좌우된다고 했다. 그는 지루함의 고뇌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으로, 다시 말해서 새로운 고뇌로 바뀐다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아주 짧게나마 즐거움이 찾아올 수 있지만 역시나 또다시 지루함이 뒤따른다. 악순한의 연속이다. 욕망, 성취, 잠깐의 즐거움, 새로운 욕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더 안 좋은 것은 욕망의 주기에는 쾌락보다 고통이 더 많다.
위대한 레보스키의 듀드는 게으르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지루하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다 할 욕망이 없다. 욕망이 마음의 평화를 해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를 발간하였다. 그의 에세이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남자가 나폴리 여행 길에 길거리에서 열두 명의 거지가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누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가장 게으른 사람에게 금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열한 명이 벌떡 일어나 저마다 자기가 동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 남자는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던 열 두 번째 남자에게 금화를 주었다.
과거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가트너 심포지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50개씩 200여 세미나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각각 다른 방에서 여러 개가 열리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한다. 하루는 1개를 듣고 나머지 19개를 포기하나, 하나도 안듣고 모두 포기하는 것이 특별히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모든 세미나를 포기하고,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긴 적이 있다.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수많은 강의를 듣는 대신 자유와 휴식을 선물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