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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패배하셨습니다

T1와 페이커는 감동이다

by 이상옥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높은 산, 가장 긴 강"

"그렇지만 제겐 다음 상대일 뿐입니다." - Flandre -


"Flandre 선수... 우리를 단순한 상대라고 생각하신다면"

"이미 패배하셨습니다." - Faker -




2025년 10월 31일, 올 해도 어김없이 10월의 마지막 밤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에는 가수 '이용'의 노래를 생각하며 헤어진 애인을 생각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3년 전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영혼을 추모하며 할로윈 축제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현재 가장 핫한 게임인 '롤'의 축제인 '롤드컵' 8강 마지막 경기를 흥분과 희열로 관전하며 무한한 도파민의 도출을 만끽하였습니다.


이미 롤의 전설이 된 페이커(Faker)가 속해 있는 T1은 작년 우승팀이지만, 올해는 꾸역꾸역 막차를 타고 조건부 입성을 하였습니다. 전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들이 중국 베이징, 상하이, 청도를 돌며 올 해 최고의 팀을 선정하는 '2025 롤드컵'은 지난 10월 14일 한국의 T1과 중국의 IG(Invictus Gaming)의 '단두대 매치'를 시작으로 11월 9일 우승팀을 확정하고 대장정의 일정을 마치게 됩니다. T1은 올 해도 한국팀 4번째 시드로 겨우 참전권을 획득하여, 첫 경기에서 중국의 4번째 시드 IG를 어렵게 이기고, 본선 16개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본선에 참여한 16개 팀은 추첨을 통해 선정된 팀과 8강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펼쳤고, T1은 1승 2패로 벼랑끝까지 몰리는 극한 상황에서 연속 2승을 하고 또 다시 극적인 8강행 막차를 탑니다. 하지만, 8강의 상대는 3승으로 일치감치 올라와 있는 중국의 2번 시드 'AL(Anayone's Legend)'팀, 이미 세계 파워랭킹 1,2위 팀인 우리나라의 젠지와 한화생명을 이긴 무시무시한 팀,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T1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T1은 언제나 그렇듯, 도깨비같은 팀입니다. 정규시즌에서는 어이없는 게임을 하다가도 '롤드컵'같은 세계적인 무대에만 서면, 전설적인 게임을 펼치는 '인비져블 썸씽'이 있는 팀입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올해 한국에서 펼쳐진 정규시즌에서도 3등으로 마쳤고, 8강까지 올라오는 길목에서 형편없는 '폼'으로 팬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동안 롤드컵에서 5번의 우승과, 롤드컵에서 단 한 번도 중국팀에게는 진 적이 없는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진짜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습니다. 이번 롤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중국의 최강팀인 'AL'을 3:2로 이기고, 'T1은 절대 LPL에 지지 않는다'는 전설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이 경이롭습니다. 1세트는 예전의 T1처럼 놀라운 폼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이 때만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본래의 T1, 5번의 우승을 한 롤의 왕조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세트와 3세트 연이어 어이없이 패배하며, 암울한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심지어 3세트에서는 '벤픽'에 대한 책임 논방까지 펼쳐지고, 저같은 하수도 덩달아 열받아 했습니다. 하지만, 4세트에서는 또 다시 본래의 강팀으로 돌아와 2:2 동률을 기록하며, 마지막 5세트를 향해 '실버스크랩스'를 울려 펴지게 하였습니다.


실버스크랩스를 시작으로 출발한 5세트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트입니다. 선수들은 땀과 긴장감으로 게임에 집중하였고, 팬들은 업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혼미된 상태에서 관전을 하게 됩니다. 3전 전승으로 일치감치 8강에 오른 'AL'은 아무리 최강의 'T1'이라도 이번에는 이길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올라오는 과정이 그랬고, Flandre 선수가 말했듯이, 그저 상대할 만한 팀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T1과 페이커는 자신들이 여전히 롤의 전설이고, 최고의 팀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어제의 경기를 보며, 저는 또 다시 삶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세상은 암울하고, 절망적이며, 끝없는 실망과 패배를 안기지만, 끝까지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데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증명이 될 것입니다. 이번 중국에서 펼쳐지는 '롤드컵'의 캐치플레이즈 인 'Earn Your Legacy' 처럼, 자신감을 간직하고, 가지고 있는 유산을 꿋꿋하게 유지하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제의 감동이 영원히 살아남아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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