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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May 04. 2024

전념,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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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오랜 시간이 걸린다.

저자인 피트 데이비스는 버지니아주 폴스 처치에서 여러 시민 활동에 참여하면서, 주로 미국 민주주의와 연대의 심화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들을 다루고 있다. 데이비스가 하버드 법학 대학원 졸업식에서 했던 졸업 연설 '전념하기의 반문화'는 이책이 나올 때 3천만 뷰를 넘게 기록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세상의 문화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무한 탐색모드이고, 또 하나는 전념모드이다. '무한 탐색모드'는  현대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을 말한다. 폴란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현상을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로 표현한다.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기를 원치 않으며, 그래서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역시 액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사람들이 어느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 생각이나 신념, 집단이나 기관에 매달려서 오랫동안 같은 형태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도 우리를 진득하게 품어주지 않는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액체 근대다.


반면, '전념모드'는 현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전념하기’라는 반문화(Counterculture of Commitment)를 공유하며 특정한 장소나 공동체, 특정한 이상이나 기술, 특정한 기관이나 사람 등 특정한 무언가에 몰입하는 문화를 말한다. 오늘날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분위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문화로 저자는 이를 반문화로 표현한다. 


전념모드를 방해하는 것들은 일상이 주는 지루함, 다른 방도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이다. 겉으로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엄청난 모험을 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익숙한 동네에서 그냥 편안하고 소소하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도 많다. 깊이보다는 새로움을, 공동체보다는 개성을, 목표보다는 융통성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문화는 여전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행위를 신성하게 여긴다. 헌신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마지막 남은 멸종 위기의 동물처럼 말이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전념하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이나 죽음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과 함께 있어도 좀 더 편안할 뿐이다.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무한 탐색모드에서는 세 가지 장점과 세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의 첫 번째는 '융통성'이다. 융통성, 즉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을 때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능력은 탐색의 가장 분명한 장점이다. 젊을 때는 무언가에 부담을 덜 느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진짜 자아찾기'이다. 탐색은 진짜 자신을 반영하지 않은 채, 단지 내가 어떤 위치에서 태어났는 지 만으로 정해지는 ‘물려받은 전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무한 자아찾기의 합리화를 하기에 충분하다.

세번째는 '새로움'이다. 탐색의 가장 단순한 장점은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우리는 짜릿한 흥분과 설렘을 경험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은 새로움을 누리고 산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쉬워졌다.


단점의 첫 번째는 '결정 마비'다. 무한 탐색모드의 융통성은 곧 결정마비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여기저기 탐색만 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전념할 자신이 없어진다. 

두번째는 '아노미'다. 무한 탐색 모드는 고립을 낳을 수도 있다. 누구와도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와 맞지 않는 방에 갇혀있는 것도 우울하지만, 계속 복도에만 머무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아노미의 학문적 설명은 지나치게 쿨한 상태이다. 아노미의 해독제는 진짜 공동체다. 

세번째는 '피상적인 삶'이다. 무한 탐색 모드는 비용을 치른다. 새로운 경험에 집착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가지에 오랫동안 몰두할 때만 겪을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경험을 놓친다. 어느 하나에 전념하다 보면 새로운 경험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념하지 않으면, 10년 동안 모든 집중력을 한 가지 경험에 쏟아부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을 놏칠 것이 분명하다. 전념하기는 우리 세계에 형태를 가져오고, 주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념이 필요하다. 전념은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다.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 선택지 열어두기도 예외는 아니다. 때로는 멈추고 달아나는 것이 낫다. "나도 너를 귀찮게 하지 않고, 너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 각자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 라는 규칙이 필요할 때도 있다. 돈, 무관심, 발전 이러한 것들은 내가 내 일을 하고, 내 진로를 정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가 모든 것을 지배함으로써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들도 고려해봐야 한다. 한때 내가 좋아하고 아꼈던 모든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상업화되고, 일반화되고, 관료화되면 어떨까? 더는 사명과 영웅을 논하지 않고, 의식과 전통이 의미를 잃으며,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도 나를 꾸짖지 않고, 반대로 내가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아무도 나를 칭찬하지 않는다면? 


탐색도 물론 좋은 선택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탐색으로 시작해서 탐색으로 끝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가 지배하는 곳을 둘러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정답은? 많은 것들이 잘못 될 수 있다. 


IT기술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과 여유를 선물했다. 덕분에 과거에 비해 엄청난 선택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정장애와 무의미한 시간 낭비도 늘어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시간이 증가하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보고싶은 드라마를 보기위해 30여분을 서칭해도 마땅한 볼거리가 없다. 어렵게 선택한 드라마도 막상 보기 시작하면 금방 후회하고 또 다시 다른 것을 찾게 된다. 운송수단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여행시간이 급격하게 줄었다. 하지만, 그만큼 여행 대상의 선택지가 많아져서, 과거보다 여행에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선택지가 많아지고, 시간이 여유가 생겨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되고, 나의 정체성과 행복의 지수는 높아지고 있는가?


그런 와중에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여 위대한 결과를 이룬 사람들을 동경하며, 존경하게 된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 그랬고, 골프의 타이거우즈가 그렇고, 축구의 손흥민이 그렇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역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분야에 전념할 때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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